2024년 4월 28일(일)

“음악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하나되는 세상 만듭니다”

[인터뷰] 이원숙 뷰티플마인드 지휘자

“자, 박자를 맞추면서! 하나, 둘, 셋….”

지난달 25일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에서 만난 이원숙(56) 뷰티플마인드 지휘자가 지휘봉을 휘둘렀다. 현악기(바이올린·비올러·첼로)와 관악기(플루트·오보에·트럼펫), 클래식 기타 소리가 조화로운 화음을 이뤘다. 오는 9월 ‘뷰티플마인드와 함께하는 가을 음악회’를 앞둔 터라 연습에 분주한 모습이었다.

뷰티플마인드는 지난 2010년 외교부 산하 문화외교자선단체로 창단한 오케스트라다. 시각장애 학생 8명, 발달장애 학생 25명, 비장애 저소득층 학생 10명으로 구성됐다. 국내 최초 장애·비장애 통합 오케스트라로, 장애인과 취약계층 학생을 전문 연주자로 양성해 국내외 대사관, NGO와 함께 음악회를 개최한다. 지금까지 총 77개국 112개 지역에서 435회의 공연을 열었다. 현재 뷰티플마인드 소속 학생 43명, 교사 40명이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다.

이원숙 지휘자는 뷰티플마인드 창단 이래로 13년간 상임지휘자를 맡고 있다. 그는 “10~30세, 천재부터 노력파까지 다양한 뮤지션들이 앙상블을 맞춰 나간다”며 “시작은 조촐했지만 지금은 졸업생만 150명이 넘는 대가족”이라고 말했다. 이어 “뷰티플마인드 오케스트라의 핵심 가치는 장애인을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바라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5일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에서 이원숙(56) 뷰티플마인드 오케스트라 지휘자를 만났다. 이 지휘자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음악과 예술로 하나가 되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김어진 청년기자(청세담14기)
지난달 25일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에서 이원숙(56) 뷰티플마인드 오케스트라 지휘자를 만났다. 이 지휘자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음악과 예술로 하나가 되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김어진 청년기자(청세담14기)

-오케스트라 창단 멤버에 합류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장애 학생들은 시혜의 대상이 아닌 주체적인 존재라는 인식이 퍼지길 바랐어요. 장애가 있다고 무대에 오르지 말란 법 없죠. 실제로 단원들은 자신이 배운 악기로 무대에서 연주를 마치고 박수받을 때 큰 자신감을 얻어요. 그래서 장애·비장애 구분 없이 잠재력이 있는 아동을 전문 음악인으로 양성하는 뷰티플마인드 오케스트라에 합류하게 됐습니다.”

-단원은 어떤 과정을 거쳐 선발하나요?

“매년 두 차례 신입생을 모집해요. 7~8세 아동을 위주로 선발합니다. 어린 나이부터 배워야 잠재력을 빨리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죠. 최근에는 유치원생과 초등학생들이 뷰티플마인드 오케스트라에 많이 합류했습니다. 주로 추천서를 받거나 부모 면담, 음악 교사와의 면접 등을 통해 선발하는데, 실력만이 선발 기준은 아니에요. 유치원생이었던 시각장애인 김건호 단원은 피아노 연주에 능숙하지는 않았지만, 음감과 박자 감각이 좋아서 선발했어요. 김 단원은 올해 장애인 최초로 금호문화재단의 영재 아티스트 ‘금호영재’로 뽑히기도 했답니다.”

-장애 유형별로 악보를 익히는 속도나 실력이 다를 것 같습니다. 특별한 교육 방식이 있나요?

“단원들을 교육하는 ‘뮤직 아카데미’는 총 4학기로 구성되고, 행복반(발달장애인), 사랑반(시각장애인), 희망반(저소득층 비장애인)으로 나뉩니다. 학기당 10회 레슨을 받을 수 있고, 피아노·현악·관악·성악·작곡·국악을 배울 수 있습니다. 뮤직 아카데미를 수강하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은 입시 준비도 병행할 수 있죠. 형편이 어려운 단원에게 악기를 지원해주기도 합니다. 전문 음악 선생님들은 전원 무보수로 재능기부를 하고, 모든 교육은 일대일 맞춤으로 진행됩니다.”

-지도 과정이 마냥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 같은데요.

“우선 음악을 편곡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단원들의 특성을 고려해 악보를 수정하다 보니 한 곡을 완성하기까지 수개월이 필요합니다. 또 어떤 단원에게는 정확한 규칙과 일관된 방향성을 알려주는 게 효과적이지만, 어떤 단원은 딱딱한 교육방식을 두려워하더라고요. 그래서 ‘학생 개개인에게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라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지금은 각 학생의 관점에서 소통하면서 부모님과도 충분한 대화를 나눕니다.”

-자선단체라 운영 비용에 대한 고민도 있을 것 같습니다.

“뷰티플마인드는 이사진 30여명이 내는 회비와 개인·기업 후원금으로 운영됩니다. 매해 약 6~7억원의 후원금이 모입니다. 많은 분께서 관심을 가져주고 계시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뷰티플마인드 오케스트라에는 피아노가 없었는데, 최근 개인 후원을 많이 받으면서 피아노를 마련했어요.”

이원숙 지휘자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뷰티플마인드 오케스트라 단원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정예림 청년기자(청세담14기)
이원숙 지휘자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뷰티플마인드 오케스트라 단원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정예림 청년기자(청세담14기)

-무대에서 선보일 음악은 어떤 기준으로 선정하나요?

“보통은 빠른 클래식 곡을 선호합니다. 리듬이 명확하다 보니 학생들의 연주 완성도가 높거든요. 조용하고 곡조가 섬세한 음악은 익히는 데 오래 걸립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연주곡은 학생들의 만족도가 높은 속도감 있는 곡으로 선정하지만, 최근에는 감성이 다양하게 드러나는 곡들도 도전하고 있습니다. 뷰티플마인드 오케스트라가 그간 선보인 곡으로는 로시니의 ‘윌리엄 텔’ 서곡, 번스타인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중 ‘맘보’, 비제의 ‘카르멘 환상곡’ 등이 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이 있다면요?

“항상 가장 최근에 한 공연이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근래 독립극장에서 클래식 공연을 했는데, 이 공연에서 단원들이 조용하고 섬세한 곡으로 연주했거든요. 단원들이 곡을 완전히 이해하고 아주 감성적으로 표현해냈어요. 관중 반응도 아주 좋았답니다.”

-뷰티플마인드 졸업생은 어디로 취업하나요?

“경제적 형편이 넉넉지 않은 경우나 장애 학생은 음대를 졸업하고도 사회인으로 자리 잡는 데 어려움을 겪어요. 이에 뷰티플마인드는 2020년부터 장애인 취업연계프로그램 ‘뷰앙상블’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기업이 채용 인원을 선제시하면 고등학교·대학교를 졸업한 뷰티플마인드 출신 단원을 연결하는 식인데요, 현재 22명의 연주자가 동국제약·메리츠캐피탈 등 7개 기업에서 꿈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들은 기업 소속 아티스트로서 각종 사회공헌 연주 활동과 사내행사에 참여합니다.”

-앞으로의 목표가 궁금합니다.

“장애 학생과 취약계층 아동이 음악적 역량을 마음껏 펼치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할 예정이에요. 오는 9월 15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배리어프리 공연을 잘 마무리하는 것도 한가지 목표입니다. 배리어프리 공연은 점자 서비스, 수어 해설을 비롯해 보조휠체어 등을 지원합니다. 다 같이 즐기는 공연이 되도록 우리 단원들도 정말 열심히 연습하고 있어요. 앞서 8월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에스와티니 학생을 대상으로 오케스트라 레슨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정예림 청년기자(청세담14기)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

제261호 2024.3.19.

저출생은 '우리 아이가 행복하지 않다'는 마지막 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