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3일(화)

“농인이 농인으로서 존중받는 사회, 교육으로 만들어갑니다”

[인터뷰] 김주희 소리를보여주는사람들 대표

김주희 소리를보여주는사람들 대표는 “농아동·청소년들이 농공동체 속에서 내가 나로서 살아도 문제없는 삶을 경험해야 사회에서도 바로 설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한나 청년기자

코로나19가 발생한 지 어느덧 2년, ‘비대면 교육’은 필수가 됐다. 하지만 발생 초기부터 요구됐던 청각장애 학생의 학습권 보장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지난달 16일 서울 강북구에 있는 대안학교 소리를보여주는사람들(이하 소보사)에서 만난 김주희 대표는 “그동안 숨겨왔던 문제가 단지 코로나 19로 가시화됐을 뿐”이라며 “단순한 수단의 정비가 아닌 장애 학생을 위한 교육의 본질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했다.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수업 콘텐츠가 대폭 늘었는데 수어 통역을 지원하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어요. 자막도 없는 게 대부분이었죠. 중요한 건 단지 말을 그대로 옮겨 놓은 자막만으로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애초에 ‘수어를 사용하는 농학생들이 어떻게 학습할까?’에 대한 고민이 없었거든요.”

소보사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수어로 모든 교육이 이뤄지는 대안학교다. 농아동∙청소년들이 ‘나의 언어’인 수어로 공부하며 농정체성과 꿈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는 철학을 갖고 지난 2006년 공부방으로 출발해 2017년 대안학교로 전환했다.

김주희 대표가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건 우연히 만난 농인 친구들 때문이다. “고등학생 때 동아리에서 수어를 배우면서 농인 친구들을 만나게 됐어요. 그런데 어떤 친구들은 수어를 쓰는 걸 부끄러워하고, 장애를 비관적으로 바라보는데 어떤 친구들은 정반대인 거예요. 왜 이런 차이가 나타날까 계속 고민하다가 ‘정체성’에 집중하게 됐어요. 우리가 청소년기에 해야 하는 정체성에 관한 질문들을 농인 아이들은 하지 못해서 꽤 오래 방황하는 거예요. 내가 겪는 부당한 일의 원인이 나의 장애인지, 준비되지 못한 사회인지 구분하는 힘은 정체성에서 시작된다는 거죠.”

인공와우(달팽이관) 이식술의 등장으로 농학생들은 수어가 아닌 구화를 쓰도록 권유받으면서 장애를 ‘극복’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구화도 완전하지 않고, 수어도 쓸 수 없어 무엇으로도 자기의 마음과 생각을 표현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에 김 대표는 농학생들이 자기 언어로 자연스럽게 성장할 수 있고, 농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게 됐다.

“농학생들이 자기 언어로 제대로 공부해 본 적이 없다 보니 자연스럽게 공부에 대한 흥미가 많이 떨어지게 돼요. 그런데 수어로 공부를 하니까 재미를 느끼는 거예요. ‘내가 공부를 못하는 이유는 장애 때문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그런데 왜 학교에서 하는 공부는 그렇게 힘들었지?’라는 질문을 통해 농정체성을 고민하게 되는 거죠. 자연스럽게 농공동체를 경험하면서 나답게 살아가는 방식을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게 과업이에요.”

소보사의 아이들은 교과목 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배움을 얻는다. 고학년 아이들이 어린이집 아이들에게 매주 수어로 책을 읽어주고, 소보사의 모든 일은 아이들과 함께 공동체 회의로 결정한다. 아이들의 주도하에 시작되어 매년 농학생들이 모여 교류하는 ‘전국 농학생 모여라 파티’는 벌써 10년을 바라보고 있다. 아이들이 모든 계획을 직접 세우는 여행 프로그램인 ‘여름 프로젝트’도 매년 진행하고 있다. 김 대표는 “삶에는 국·영·수로 배우지 못하는 많은 것이 있다”라며 “이런 프로젝트 활동을 하면서 아이들은 사회에서 내가 나로서 소통하고 책임과 권리를 취하는 방법을 실천적으로 배우게 된다”고 했다.

“수어로 공부하고, 농인 역사와 문화, 정체성, 수어 문학을 배우는 것 그리고 농공동체를 경험하는 건 소보사에만 있는 거예요. 이런 교육이 공교육 안에 생긴다면 소보사는 언제든지 없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목적이 정체성 확립이지, 좋은 성적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아직은 이 문제가 한 번에 바뀌기엔 무리가 있죠. 그래서 아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폭을 제공하기 위해서라도 이런 작은 학교가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코로나19로 소보사도 위기감을 느꼈다. 언어 습득이 가장 중요한 시기에 온라인 수업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김 대표는 수어기술 전문 소셜벤처인 ‘이큐포올’과 함께 ‘수어기반 유아동 교육서비스 개발사업’을 진행하는 중이다. 또 ‘누리학교’를 모집해 다른 학교에 다닐지라도 소보사의 교육 콘텐츠를 보고 수어로 학습할 수 있도록 공유하고 있다.

김주희 대표는 소보사가 하고자 하는 일은 ‘행복에는 다양한 모양이 있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냥 이렇게 잘 살아가는 게 소보사의 목표예요. 이 작은 학교가 얼마나 영향력을 미칠 수 있겠느냐고 묻지만, 우리가 수어를 사용하며 사는 삶을 유지한다면 결국 농교육도 사회도 바꿀 수 있다고 믿거든요. 이대로 편하게 살아도 행복하다는 걸 누군가는 보여줘야 하니까요. 그래서 이곳에서 아이들과 수어로 울고 웃으며 성장하는 공동체가 되고 싶어요.”

김한나 청년기자(청세담1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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