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아카데미’ 수료식 현장
병원 접근성 지도·치매 예방·우울증 가이드북 등 6개 프로젝트 발표
“눈으로 남을 볼 줄 아는 사람은 훌륭한 사람이다. 그러나 귀로는 남의 이야기를 들을 줄 알고, 머리로는 남의 행복에 대해서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은 더욱 훌륭한 사람이다.”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 박사의 말이다. 지난 12일 서울 동작구 유한양행 본사에서는 이 말의 의미를 온몸으로 실천한 청년들이 모였다. 지난달 8일부터 5주간 매주 두 차례씩 수업과 현장을 오가며 사회문제의 해법을 찾아온 이들이다. 6개 팀, 30명의 청년들은 자료 조사, 전문가 및 당사자 인터뷰, 현장 방문 등을 통해 문제의 근본 원인을 파고들었다.

‘유일한 아카데미’는 유한양행이 희망친구 기아대책, 진저티프로젝트, 더나은미래와 함께 올해 처음 선보인 청년 사회혁신 교육·사회공헌 프로그램이다. 제약·바이오 산업과 사회문제 해결에 뜻을 둔 전국 대학생·취업준비생이 프로젝트 기반 학습(PBL) 방식으로 보건·복지 사각지대를 직접 탐구하고 해결책을 설계했다.
◇ 정보 장벽 허문 ‘병원 지도’…아동·영유아 건강까지
이날 최우수상은 병원 접근성 지도 제작 프로젝트를 발표한 장애인팀이 차지했다. 이들은 성동구청에서 휠체어를 빌려 약 70개 병원을 직접 돌았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된 건, 물리적 장벽보다 더 높은 ‘정보의 장벽’이었다. 이를 깨기 위해 뚝섬역 근처 병원 접근성 지도를 제작하고, 카카오톡 플러스 친구 등으로 공유하는 서비스를 만들었다. 향후에는 노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지류 지도’도 제작해 노인복지관에도 배포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이호인(22·차의과대 간호학 2년) 씨는 “정책의 벽에 부딪히기도 했지만, 현장이 진짜 답을 알려줬다”며 “이 지도가 모든 이동 약자를 위한 길잡이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다문화팀은 미등록 이주아동 건강 문제의 원인을 ‘연결 부재’에서 찾았다. “제도는 있고 봉사 의지를 가진 의료진도 많았지만, 서로 만날 접점이 없었다”는 것이다. 의료진과 아동을 잇는 플랫폼 ‘힐링크(HeaLink)’를 구상하며, 의료뿐 아니라 통번역, 건강 교육, 행정 등 다양한 분야의 봉사자들과도 연결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했다.
영유아팀은 아픈 아이 앞에서 양육자가 당황하는 부모의 심리와 정보 부족 문제에 집중했다. 아동의 기침 횟수와 소리를 데이터화하는 ‘우리 아이 청진기’ 앱과 ‘스마트 기침 패치’를 제안하며, 양육자의 불안을 덜고 정확한 진료를 돕는 디지털 솔루션을 제안했다.
◇ 노인·청년·청소년…각 세대별 맞춤 해법 제시
“실종 후 추적보다, 실종 자체를 줄여야 합니다.” 우수상을 받은 노인팀은 치매 노인 실종 문제의 초점을 사후 추적에서 사전 예방으로 옮겼다. 생성형 AI로 CCTV 화질을 개선하고 지도와 같은 일상 플랫폼에 실종자 정보를 연동, 시민들의 자발적 관심을 유도하는 참여형 안전망을 제시했다.
황수진(22·경희대 약과학과 3년) 씨는 “모든 사회문제 해결은 당사자의 입장에서 문제를 정의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함을 깨달았다”며 “우리 사회에 치매 노인을 함께 찾는 문화가 만들어지길 바란다”고 전했다.
장려상을 수상한 청년팀은 청년들의 우울증 해법을 당사자가 아닌 ‘주변인’에서 찾았다. 만 20세~39세 청년 중 10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92.9%의 청년들이 ‘우울증은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라는 인식에 동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바탕으로 친구를 돕는 구체적인 방법을 담은 공감 가이드북과, 우울감을 간접 체험하는 오프라인 전시를 기획했다. 실제 가이드북을 프로토타입으로 제작하고, 전시 기획 도면을 함께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백한별(23·국민대 바이오의학 3년) 씨는 “제약 전공자로서 약의 제형과 개발에만 집중했었는데, 사회문제와 약자의 필요를 정의하면 이를 바탕으로 더 나은 약을 개발하고 더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청소년팀은 청소년 흡연 예방 교육이 일방적이고 추상적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학생이 직접 흡연의 유해성을 조사하고, 역할극을 기획하는 등 축제형 예방 교육 ‘스모킹 해빗 헌터스(Smoking Habit Hunters)’를 제안했다.
한편, 수료식에 앞서 열린 ‘유일한 아카데미’ 오픈 이노베이션 특강에서 오세웅 유한양행 중앙연구소 부사장은 국산 항암제 최초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렉라자’의 개발 과정과 함께, 고가 약가로 초기 환자 접근성이 제한된 상황에서 진행한 무상 공급 사례를 전했다. 그는 “보험이 적용되지 않으면 1년에 약 6000만 원이 드는 약을, 보험 등재 전이라도 환자들이 쓸 수 있도록 무상 공급했다”고 설명했다. 유한양행은 2023년 7월부터 2024년 1월까지 ‘동정적 사용 프로그램(EAP)’을 통해 전국 2·3차 의료기관의 폐암 환자 895명에게 렉라자를 무상 제공했으며, 이는 약가 기준 약 311억 원의 경제적 지원 효과를 낸 것으로 추산된다.
조유현 더나은미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