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농업의 공백, 벨기에·네덜란드에서 답을 찾다

강영수 희망토마을 사회적협동조합 이사

농촌에는 여전히 비옥한 땅이 남아 있다. 그러나 그 위에 설 청년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2022년 기준 국내 농가 인구 중 65세 이상 비율은 49.8%에 달한다. 농업은 고령화 문제를 넘어, 다음 세대가 부재한 산업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도시 청년에게 농업은 점점 더 ‘선택하기 어려운 진로’가 됐고, 기존 정책은 높은 진입 장벽만을 부각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해 왔다.

아산 프론티어 아카데미 14기 사회혁신 프로젝트 팀 ‘K-파밍브릿지’는 이 지점에서 질문을 바꿨다. “어떻게 청년을 농업으로 끌어들일 것인가”가 아니라, “왜 청년은 처음부터 농업을 진로로 고려하지 않는가”라는 물음이었다. 답을 찾기 위해 팀은 지난해 9월 12일부터 21일까지 벨기에와 네덜란드의 농업 현장을 9박 10일간 찾았다. 이곳은 첨단 기술뿐 아니라, 청년이 농업을 선택하고 지속할 수 있는 조건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지역이었다.

◇ 신뢰로 시작하는 청년 농업

첫 번째 방문지는 벨기에 겐트 인근의 그루엔겜 농장(Groentegem)이었다. 대중교통을 타고 도착한 마을은 한국의 읍내와 비슷해 보였지만, 정돈된 도로와 주택이 어우러진 풍경은 유럽 농촌 특유의 안정감을 보여주고 있었다. 벤트 헨드릭스(Bengt Hendrickx)와 로라 에스카우지에(Laura Eschauzier) 부부가 운영하는 이 농장은 예상보다 규모가 컸다. 대형 하우스 한 동과 함께, 목재 팔레트를 재활용해 만든 교육 공간, 수확물을 판매하는 작은 매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루엔겜 농장은 지역사회지원농업(CSA, 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 방식으로 운영된다. 250명의 회원이 연회비를 선결제하고, 필요한 농산물을 직접 수확하는 구조다. 농장 설립에 필요한 초기 자본 대부분은 이 선결제 방식으로 충당됐다. 부채 없이 출발할 수 있었고, 생산과 소비는 시작 단계부터 연결돼 있었다. 이들 역시 토지와 자본이라는 청년 농업인의 공통된 장벽 앞에 서 있었지만, 선택한 해법은 금융 대출이 아니라 지역사회에 대한 신뢰였다.

‘K-파밍브릿지’ 팀이 벨기에 청년농업인 부부가 운영하는 그루엔겜농장(Groentegem)을 만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강영수 희망토마을 사회적협동조합 이사

이 모델은 청년 농업 진입의 기반이 반드시 자본일 필요는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공동체의 신뢰가 곧 안정적인 출발선이 될 수 있고, 이는 재정적 부담과 심리적 불안을 동시에 완화하는 구조로 작동하고 있었다.

다음 날 찾은 곳은 브뤼셀에 위치한 유럽청년농업인연합회(CEJA, European Council of Young Farmers)였다. 이곳은 청년 농업인의 현실을 정책 언어로 정리해 유럽연합(EU)에 전달하는 중간 조직이다. 세바스티앙 페렐(Sébastien Pérel) 시니어 정책 자문관에 따르면, 유럽 농장주의 평균 연령은 약 57세, 35세 미만 농부는 전체의 6.5%에 불과하다. 겉보기에는 안정적으로 보이는 유럽 농업 역시 ‘청년 부족’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한국과 공유하고 있었다.

CEJA는 유럽 전역 200만 명에 달하는 청년 농업인의 의견을 체계적으로 모아 공동농업정책(CAP, Common Agricultural Policy)에 반영한다. 개별 농부의 요구는 정책으로 이어지기 어렵지만, 조직화된 단일 목소리는 제도 변화를 이끌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 경험은 한국 농업 정책에도 같은 과제가 남아 있음을 시사한다. 청년 농업인의 현실과 요구를 정책으로 연결할 중간 조직의 부재는 여전히 국내 농업 정책의 약한 고리다.

◇ ‘기술’보다 ‘동기’를 만드는 창업 생태계

탐방 마지막 날 찾은 네덜란드 월드호티센터(World Horti Center)에서 만난 퍽 반 홀스테인(Puck van Holsteijn) 대표는 청년이 농업을 선택하지 않는 이유를 ‘동기의 부재’로 설명했다. 기술이나 정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 분야에서 자신의 미래를 상상할 계기가 없다는 것이다.

청년 농업 멘토링 프로그램 ‘호티히어로즈’를 설명하는 월드호티센터 퍽 반 홀스테인(Puck van Holsteijn) 대표의 모습. /강영수 희망토마을 사회적협동조합 이사

월드호티센터의 ‘호티히어로즈(Horti Heroes)’ 프로그램은 기술 교육보다 경험을 앞세운다. 청년들이 농업 현장을 직접 보고, 시도해 보며, 가능성을 스스로 판단하도록 돕는 방식이다. 센터 안에는 이미 매출을 내는 기업과 예비 창업 단계의 학생들이 함께 모여 있고, 호티히어로즈는 이들을 연결하는 허브 역할을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점은 청소년에게도 이 프로그램이 열려 있다는 점이었다.

‘K-파밍브릿지’ 팀이 바헤닝언대학교 스타트허브(StartHub) 관계자들과 만나 청년 농업창업 진입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다. /강영수  희망토마을 사회적협동조합 이장

바헤닝언 대학교(WUR)의 농업 창업 허브인 스타트허브와 스타트라이프 역시 같은 방향을 지향한다. 이들은 농업 분야에 특화된 엑셀러레이터로, 기술 이전보다 ‘사람이 시작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춘다. 코디네이터 로빈 레이넌(Robbin Reijnen)은 “우리는 벤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시작하도록 돕는다”고 말했다. 실패 이후 재도전이 가능한 구조를 갖춘 이 생태계는 청년 농업 진입의 출발점이 기술 습득이 아니라 환경 설계에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9박 10일의 여정에서 만난 세 현장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같은 질문에 답하고 있었다. 벨기에의 공동체 기반 농장은 자본 부담을 낮추는 출발선을, CEJA는 개인의 목소리가 정책으로 이어지는 통로를, 네덜란드의 창업 생태계는 청년이 농업에 진입할 동기를 만드는 조건을 보여주었다.

청년 농업을 둘러싼 논의는 이제 ‘지원 규모’를 넘어 ‘진입 조건’을 묻는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청년에게 농업은 과연 시작해 볼 수 있는 선택지인가. 유럽의 현장은, 그 질문에 대한 단서를 비교적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강영수 희망토마을 사회적협동조합 이사

필자 소개

대구광역시에서 도심 농장을 운영하며 농장 체험 프로그램과 도시농업을 통해 청년 농업인을 육성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14년의 농업 경험을 바탕으로 청년들에게 농업의 매력과 가능성을 전달하는 활동은 국내를 넘어 해외 개도국으로 확대하면서 지속가능한 농업과 식량 안보의 중요성을 알리고 있다.
※ 본 기고문 시리즈는 아산나눔재단이 운영하는 사회혁신가 양성 프로그램 ‘아산 프론티어 아카데미’의 수강생들이 해외 선진기관 탐방에서 얻은 통찰과 우리나라 소셜섹터로의 시사점을 나누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본 기고문은 아산 프론티어 아카데미의 14기 수강생이 각 사회혁신 프로젝트 팀을 대표해 작성한 것으로, 아산나눔재단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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