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은 촉진자이자 통역가”…민관이 함께 짜는 사회혁신의 판

[경기도사회적경제원 x 더나은미래 공동기획] 협력의 힘, 임팩트를 더하다 <3·끝>경기도사회적경제원 남양호 원장·전유진 사업본부장 특별 대담 “정부는 단순한 시장 조력자가 아니라 사회문제 해결을 주도하는 ‘미션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 혁신경제학자 마리아나 마추카토(Mariana Mazzucato)는 저서 ‘미션 이코노미(Mission Economy)’에서 정부의 역할을 이렇게 규정했다. 시장의 결함을 메우는 ‘조력자’가 아니라, 위험을 감수하며 방향을 설계하는 ‘주체’로 나서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문제의식은 경기도사회적경제원이 추진 중인 ‘사회환경 문제해결 지원사업’에도 녹아 있다. 공공이 협력의 무대를 만들고, 민간과 사회적경제조직이 그 위에서 해법을 실험하는 구조다. 이 사업은 단순한 공모사업이 아니다. 현장에서 문제를 포착한 조직이 과제를 제시하면, 기업과 기관이 뜻을 모아 실행에 옮긴다. 경기도사회적경제원은 ‘백본(backbone)’ 역할을 맡아 전문가를 매칭하고 협력의 균형을 잡는다. 이런 구조 속에서 안성의 ‘일죽목욕탕’과 ‘청년 그린 편의점’ 같은 실험이 나왔다. 돌봄 공간이 안전 복지 플랫폼으로, 편의점 점포가 청년 자립의 출발점으로 변한 것이다. 이와 같은 공공·기업·사회적경제가 맞물린 이 협력 모델은 ‘콜렉티브 임팩트(Collective Impact)’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더나은미래>는 지난 28일 경기도 수원에서 남양호 원장과 전유진 사업본부장을 만나 이 실험의 성과와 과제, 그리고 앞으로의 비전을 들어봤다. ◇ 협력 구조를 설계하고, 사회적 가치를 ‘보이게’ 만들다 ―이 사업은 어떤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나. 전유진(이하 전)=2022년, 경기도가 사회적경제조직과 함께 ‘100대 사회문제 의제’를 도출한 것이 시작이었다. 문제를 찾아내는 데서 멈추지 않고, 실제 해결로 이어지려면 ‘구조’가 필요했다. 그래서 2023년 신설된 경기도사회적경제원이 직접 나섰다. 환경·돌봄·고용·주거처럼 얽히고설킨 문제는 어느 한 조직만으로는 풀 수 없다. 공공·기업·사회적경제조직이

아르바이트생이 점주로…‘편의점’에서 시작된 자립의 선순환

[경기도사회적경제원 x 더나은미래 공동기획] 협력의 힘, 임팩트를 더하다 <2>  청년 자립부터 장애인 스포츠팀까지, 공공·민간·사회적경제가 만든 협력형 사회혁신 모델 “매장 위치나 고객층에 따라 잘 팔리는 상품이 다르더라고요. 요즘 러닝족이 많아 에너지 음료를 늘렸어요.” 경기도 고양 라페스타에 위치한 ‘청년 그린 편의점’에서 일하는 김은비(24)씨는 이제 ‘점주 후보’로 불린다. 계산과 진열, 발주와 프로모션 기획까지 전 과정을 스스로 관리한다. 매장에 들어서면 일반 편의점과 다를 바 없지만, 특별한 서사가 있다. 자립준비청년들이 일터를 통해 삶을 다시 세우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청년 그린 편의점’은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사회적기업 브라더스키퍼, 세븐일레븐이 손잡고 만든 협력형 일자리 모델이다. 자립준비청년에게 직업훈련과 점포 운영 경험을 제공하고, 수익 일부를 다시 청년 인건비와 일자리 창출에 재투입한다. 기업은 ‘자립준비청년 일자리 제공’이라는 사회공헌 목표를 달성하고, 사회적경제 조직은 현장의 실행력을 담당한다. 공공·민간·사회적경제가 연결된 협력의 구조 속에서 청년 자립의 새로운 해법이 만들어지고 있다. ◇ 일경험 넘어 창업까지, ‘청년 그린 편의점’ 자립준비청년의 실업률은 전체 청년 평균의 약 3배에 달한다. 보건복지부 ‘2024 자립지원실태조사’에 따르면 자립준비청년의 실업률은 15.8%로, 같은 연령대 전체 청년(5.3%)보다 높았다. 취업률은 52.4%로, 20대 평균(61.3%)보다 낮았다. 세븐일레븐을 운영하는 코리아세븐에서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진슬기 PMO운영개발담당팀 대리는 “자립준비청년에게 일회성 지원이 아닌 지속 가능한 기회를 주고 싶었다”며 “편의점 점주는 평생 직업으로 이어질 수 있어, 이들이 직접 매장을 운영하며 성장할 수 있는 모델을 구상했다”고 말했다. 이어 “처음에는 ‘이 방식이 과연 맞을까’ 하는 의구심도 있었지만, 경기도사회적경제원이 중간에서 조율하며 사업

28년 된 낡은 목욕탕, 어르신 지키는 ‘안전 공간’이 된 비결은?

[경기도사회적경제원 x 더나은미래 공동기획] 협력의 힘, 임팩트를 더하다 <1>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목욕탕의 탄생 “혈압이 124 나왔네요. 오늘은 전신욕보다 반신욕이 좋겠어요.”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일죽목욕탕’ 입구에서는 어르신들이 순서대로 서서 키오스크로 혈압을 잰다. 수치에 따라 적절한 목욕법이 안내되고, 탈의실 한편엔 온수를 마실 수 있는 온수대가 마련돼 있다. 욕탕 안에서는 10분마다 ‘안전벨’이 울리고, 낮은 벽체 너머로 서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28년 된 노후 공중목욕탕이 이렇게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목욕탕’으로 다시 태어난 것은 어느 한 기업의 힘으로 된 일이 아니다. 경기도사회적경제원을 중심으로 안성시, 안성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안성의료사협), 광고회사 이노션, 월드비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등 6개 기관이 손을 맞잡은 결과다. 이와 같이 다양한 주체가 공동의 목표를 두고 협력하는 사회문제 해결 구조를 ‘콜렉티브 임팩트(Collective Impact)’라고 부른다. 2011년 존 카니아(John Kania)와 마크 크레이머(Mark Kramer)가 스탠퍼드 소셜 이노베이션 리뷰(SSIR)에 처음 제시한 이 개념은, 복잡한 사회문제는 단일 조직으로 해결할 수 없으며 공통의 목표와 이해관계자 간 협력이 필요하다는 데서 출발했다. 이 모델은 ▲공통 목표 설정 ▲성과 공유 ▲상호보완적 활동 ▲지속적 소통 ▲협력을 조정하는 ‘백본 조직(Backbone Organization)’이라는 다섯 원칙을 중심으로 작동한다. 경기도사회적경제원은 2023년, 이러한 구조를 바탕으로 한 ‘사회환경 문제해결 지원사업’을 시작했다. 참여 기관에는 최대 2년간 1억2000만원의 사업비를 지원하며, 사경원은 단순 행정지원이 아닌 ‘조율자’ 역할을 맡는다. 사회문제를 제안한 조직이 적합한 기업·기관을 찾을 수 있도록 연결하고, ESG·디자인·기술 등 전문 파트너를 매칭한다. 올해까지 총 177개 기관이 참여해

‘목적에서 실천으로’…글로벌 기업이 사회공헌을 설계하는 법 [AVPN 2025]

노보 노디스크·맥쿼리·마스터카드, 사회적 가치 내재화 전략 공유 존슨앤드존슨·씨티재단, 신뢰 기반 협력으로 임팩트 확장 기업이 전통적인 기부 방식을 넘어 지속 가능한 사회적 임팩트를 창출할 수 있을까. 지난달 11일 홍콩에서 열린 ‘AVPN 글로벌 콘퍼런스 2025’ 마지막 날 세션에서는 이에 대한 해답이 제시됐다. 연사들은 한목소리로 말했다. “협력과 신뢰가 지속 가능한 임팩트의 핵심이다.” 이날 진행된 두 세션 ‘혁신적인 기업 파트너십의 힘(The Power of Innovative Corporate Partnerships: Driving Health Impact)’과 ‘목적에서 실천으로(From Purpose to Practice: Corporates as Catalysts for Good)’에서는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어떻게 조직의 제도와 생태계 안에 내재화할 수 있을지를 놓고 논의가 이어졌다. ◇ 사회적 책임, 조직의 중심으로…‘가치를 설계하는 기업들’ 덴마크의 노보 노디스크 재단(Novo Nordisk Foundation)은 공공성을 기업의 지배구조 속에 심은 대표 사례로 꼽힌다. 제약회사 노보 노디스크의 최대 주주이자 지배주주로서, 재단은 ‘엔터프라이즈 재단(enterprise foundation)’ 모델로 운영된다. 기업의 배당금을 사회에 재투자해 경제활동과 공익활동이 하나의 가치 체계 안에서 작동하도록 설계한 구조다. 다니엘 케머(Danielle Kemmer) 시니어 네트워크 리드는 “문제 해결 과정에서 특정 파트너에 머무르지 않고, 커뮤니티 리더, 기업, 학계, 정부 등 다양한 주체를 연결해 함께 문제를 정의하고 해법을 설계한다”며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진 해법이야말로 현지에 뿌리내릴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변화”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어떤 조직도 혼자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시대”라며 “협력의 출발점은 자신이 생태계 안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인식하는 데 있다”고 덧붙였다. 호주의 맥쿼리 그룹 재단(Macquarie

코로나19·전쟁·인종차별…위기가 바꾼 기부 지도

변화하는 미국의 기부 생태계 <3·끝>사회적 격변이 만든 새로운 자선의 지형도 세상이 흔들릴 때, 사람들의 지갑이 향한 곳도 달라졌다. 코로나19 병상과 우크라이나 국경, 인종차별 시위의 거리마다 자선의 물줄기가 흘렀다. 위기 속에서 ‘누구를 도울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한 단체들이 미국 기부 지도를 다시 그렸다. 미국 비영리 전문매체 ‘크로니클 오브 필란트로피(Chronicle of Philanthropy)’가 발표한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자선단체(America’s Favorite Charities)’에 따르면, 지난 몇 년 사이 사회적 격변과 함께 급성장한 단체들이 눈에 띈다. 2018~2020년 평균 기부금 대비 2021~2023년 평균 기부금 증가폭이 가장 컸던 10개 단체는 ▲터널 투 타워스(504%) ▲UNCF(275%) ▲월드 센트럴 키친(209%) ▲마겐 다비드 아돔 미국 후원회(201%) ▲밀컨 연구소(155%) ▲반 안델 연구소(155%) ▲기브웰(143%) ▲마이클 제이 폭스 파킨슨병 연구재단(111%) ▲국제 기독교·유대인 협력기금(83%) ▲힐즈데일 대학(68%)이다. 9·11 테러 희생자와 군인·경찰 가족을 지원하는 ‘터널 투 타워스(Tunnel to Towers)’ 재단은 3년 사이 평균 기부금이 500% 넘게 늘며 1위를 차지했다. 2021년 9·11 테러 20주년을 계기로 “매달 11달러를 기부하자”는 메시지를 내건 대규모 캠페인을 벌였다. 배우 마크 월버그, UFC 챔피언 코너 맥그리거 등이 출연한 광고가 TV·유튜브·라디오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송출되며 인지도가 급상승했다. 국가를 위해 희생한 영웅의 가족에게 무담보 주택을 제공하겠다는 약속이 대중의 공감을 얻었다. 2018년 1684만 달러였던 기부금은 2021년 2억560만 달러로 치솟았고, 이후 정기기부 모델이 자리 잡았다.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에는 인종차별 해소와 교육 기회 확대를 위한 기부가 늘었다. 흑인대학과 소수인종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는

귤은 즐기고, 배는 마신다…‘요즘 로컬’의 방식 

애그테크, 농업의 미래를 짓다<4> 기술과 디자인으로 ‘농식품 스타트업’ 새 모델 개척하는 귤메달·랩투보틀  한때 농업은 ‘생산’의 영역으로만 불렸다. 그러나 지금, 지역의 농산물은 디자인과 기술을 만나 새로운 문화로 진화하고 있다. ‘로컬’이라는 단어가 단순한 지리적 개념이 아닌, 브랜드의 출발점이 되고 있는 것이다. 젊은 창업가들은 땅에서 나는 재료로 실험을 거듭하며, 농업을 ‘산업’을 넘어 ‘경험’의 언어로 바꾸고 있다. ◇ 귤메달, 시트러스에 ‘취향’을 입히다 제주의 감귤 농장에서 출발한 ‘귤메달(GYULMEDAL)’은 감귤을 단순한 농산물이 아닌 ‘취향 콘텐츠’로 바꾼 스타트업이다. 창업자 양제현 대표는 조부 때부터 3대째 이어온 농장을 이어받아, 감귤을 포함한 20여 종의 시트러스를 직접 유통하며 착즙주스 등으로 확장했다. 그는 “‘Happy Moment With Citrus’라는 브랜드 미션처럼, 귤로부터 시작되는 즐거운 순간을 디자인하고 싶다”고 말했다. 귤메달의 혁신은 ‘생산자 중심’이 아닌 ‘고객 중심’의 전환에서 비롯됐다. 소비자들이 수십 종의 귤 중 취향을 고르기 어렵다는 점에 착안해, 당도·산미·바디감 3가지 요소로 귤을 분류한 ‘테이스트 노트(Taste Note)’ 시스템을 도입했다. 현재 귤메달이 판매하는 모든 시트러스에는 이 세 가지 요소가 단계별로 표시돼 있다. 이후 ‘귤 MBTI 테스트’ 등 놀이형 콘텐츠를 통해 소비자 참여를 유도했다. 당도·식감 등 질문에 답하면 맞춤형 귤을 추천받는 방식으로, 도입 후 자사몰의 평균 체류 시간이 3배 이상 늘었다. 양 대표는 “이 데이터는 향후 품종 선호도 분석과 농가 유통 전략 수립에도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고객 중심 브랜딩은 디자인 혁신으로 이어졌다. 계절별 시트러스 4종을 담은

“임팩트는 보고서가 아니라 관계”…투자의 언어가 바뀌고 있다 [AVPN 2025]

UOB·테마섹·제라야·NDB, 임팩트 관리 통해 ‘투자자→동반자’로 진화 숫자보다 현장의 변화, 이해관계자 간 신뢰를 새 기준으로 세우다 싱가포르의 UOB벤처매니지먼트(UOB Venture Management·이하 UOBVM) 임직원들은 투자처뿐만 아니라 대출을 받은 사람들까지 ‘직접’ 찾아간다. 포용금융(금융 접근성이 낮은 사람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활동)을 위한 투자를 진행할 때, 현장에서 계획과 실행이 일치하는지를 확인하고 대출자가 어떤 변화를 경험하는지를 직접 듣기 위해서다. 예컨대 인도네시아의 핀테크 기업 ‘아마르타(Amartha)’에 투자한 뒤에는 본사뿐 아니라 지사 곳곳을 돌며 여성 사업가들을 만났다. 대출자의 절반 이상이 초등학교 학력 이하의 여성임을 확인한 UOBVM은 현장 관찰을 바탕으로 ‘금융 문해력(Financial Literacy)’ 교육을 투자 서약서에 새롭게 추가했다. 단순한 자금 지원이 아니라, 현장의 맥락을 이해하고 지속가능한 변화를 설계하기 위해서다. 1992년 설립된 UOBVM은 UOB(United Overseas Bank) 그룹의 사모투자 및 벤처캐피털 운용사로, 약 20억 싱가포르 달러(한화 약 2조2000억원) 규모의 자산을 관리하고 있다. 이들의 임팩트 관리(Impact Management)는 ▲사전 검토 ▲임팩트 실사 ▲서약서 작성 ▲사후 모니터링의 네 단계로 구성된다. 실사 이후에는 IRIS에서 발췌한 표준 지표와 기업 맞춤형(customized) 지표를 함께 활용해 핵심 지표(metrics)를 설정한다. 현장 점검 결과는 투자 계약 시 작성하는 ‘임팩트 서약서(Impact Commitment Letter)’에 반영되며, 인력 교육이나 피투자기업 역량 강화를 주요 항목으로 포함한다. 투자 이후(Post-investment) 단계에서는 정량적·정성적 데이터를 꾸준히 추적하며, 단순한 평가를 넘어 “투자자가 기업에 어떤 가치를 더할 수 있는가”를 함께 고민한다. UOBVM은 아마르타의 대출자 300만 명을 대상으로 마이크로보험(Micro-Insurance)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현지 보험 전문가와 데이터 기관을

‘SF 영화 속 장면’이 된 농장, AI가 일하는 시대가 열렸다

애그테크, 농업의 미래를 짓다<3> AI 로봇으로 농업의 자동화 혁신 이끄는 ‘아이오크롭스’ 농촌 인력 부족과 기후변화가 심화되면서 농가의 지속가능성이 위협받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체 농가의 78%가 인력 부족을 가장 큰 경영 애로로 꼽았다. 국회입법조사처의 ‘2024년 국정감사 이슈 분석’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국내 농업 분야의 기후피해 복구 비용은 약 5295억 원으로, 2022년(2056억 원)과 2021년(2346억 원)을 합친 금액보다 많았다. 이러한 농촌의 현실에 기술로 해법을 제시하는 스타트업이 있다. 바로 아이오크롭스다. 이 회사는 자동화 로봇과 인력 관리 솔루션 등 통합형 스마트팜 시스템을 개발해 농작업 효율을 높이고 있다. 아이오크롭스를 설립한 조진형 대표는 포항공대 기계공학과에서 학부와 석사를 마친 공학도 출신이다. 2016년 대학원 시절, 기숙사 화분이 시들자 직접 수분 센서와 LED 조명을 결합한 ‘스마트 화분’을 만든 것이 출발점이었다. 이후 각종 창업 공모전에 도전하던 그는 “농업을 직접 배워야 제대로 된 기술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으로 대학원을 자퇴하고 충남 천안의 토마토 농장에서 3개월간 재배 기술을 익혔다. 이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2년간 인턴 연구원으로 근무하며 농업의 현실을 몸소 체감했다. 그는 “공학적 시각에서 벗어나 작물 재배와 소비자 심리까지 이해하게 된 경험이 아이오크롭스의 기술 철학이 됐다”고 말했다. ◇ 자율주행 로봇 ‘헤르마이’로 예찰·방제 자동화 그렇게 조 대표는 2018년 아이오크롭스를 창업했다. 회사의 대표 기술은 자율주행 농업 로봇 ‘헤르마이(HERMAI)’다. 숙련된 농부처럼 작물의 생육 상태를 관찰하고 예찰 및 방제 작업을 수행한다. 농장 레일을 따라 이동하며 작물의 색·크기·형태를

불확실성의 시대, 기부는 ‘사명’으로 답했다

변화하는 미국의 기부 생태계 <2> 불경기 속 혼합기부 증가…사명 뚜렷한 단체에 기부 몰린다 팬데믹과 경기 침체, 정부의 예산 삭감이 겹치며 미국 비영리단체들은 혹독한 시험대에 올랐다. 그러나 후원자들의 선택은 달랐다. 규모나 오래된 전통보다, 위기 속에서도 방향을 분명히 지키는 단체를 찾아 기부했다. 미국 비영리 전문 매체 ‘크로니클 오브 필란트로피(Chronicle of Philanthropy)’가 2021~2023년 개인·재단·기업의 기부 데이터를 바탕으로 발표한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자선단체(America’s Favorite Charities)’ 100대 순위에서도 이러한 흐름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이 매체는 “불확실성의 시대일수록 사명에 충실하고, 후원자에게 우리가 어떤 변화를 만들 수 있는지 설득하는 황금률이 강조된다”고 분석했다. ◇ “사명에 충실한 단체가 살아남는다” 기빙USA에 따르면 같은 기간 미국 개인 기부는 23% 늘었지만, 상위 기관들의 증가율은 이에 미치지 못했다. 상위 100곳 중 절반 이하인 46곳만이 23%보다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고, 18곳은 오히려 감소했다. 전문가들은 “조직의 연혁이 아니라, 사명의 일관성이 생존을 좌우했다”고 분석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플랜드페어런트후드(Planned Parenthood·29위)다. 트럼프 행정부 2기에서 낙태 관련 법이 강화되고 공공의료보험 환급 대상에서 제외되는 등 정치적 압박이 이어졌지만, “여성의 생식권과 건강권은 타협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유지했다. 정부 보조금 지급이 중단됐음에도 같은 시기 개인 후원은 오히려 급증했다. 레오라 한서 모금 최고책임자는 “이런 시기에 침묵은 통하지 않는다”며 “사명을 회피하는 단체는 결국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고 말했다. 세인트주드 어린이연구병원(St. Jude Children’s Research Hospital·2위)도 마찬가지다. ‘모든 아동에게 무상치료를 제공한다’는 단일 사명 아래, 치료 과정과 가족 이야기를

사회적 금융 확산 속, 공익법인의 새 역할은 [공익법인 NEXT]

투자로 다시 쓰는 공익의 미래 <下> 1조 500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한 글로벌 시장 속, 한국도 공익투자 실험 본격화 “이제 공익법인도 돈을 쓰는 기관이 아니라, 자본의 선순환을 설계하는 기관이 돼야 합니다.” 김양우 수원대 특임교수는 지난달 25일, 서울 강남구 소재 마루 180에서 열린 ‘공익법인의 다음 10년, ‘임팩트 투자’로 답하다’ 세미나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최근 자산운용사와 벤처캐피탈은 물론, 자선재단·패밀리오피스·연기금·보험사·정부 등 다양한 주체가 임팩트 투자 시장에 참여하면서 ‘사회적 금융(social finance)’의 경계가 확장되고 있다”고 짚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공익법인 역시 새로운 역할을 모색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사회적 금융은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면서도 일정한 재무적 수익을 창출하는 투자 방식을 말한다. 글로벌 시장 규모는 1조5000억 달러를 넘어섰고, 금융 수단도 마이크로파이낸스·지역개발금융기관(CDFI)·사회성과연계채권(SIB) 등으로 다변화되고 있다. 김 교수는 “한국의 공익법인도 이런 구조를 이해하고, 새로운 길을 고민해야 사회문제 해결이 지속가능해진다”고 말했다. 김경하 더나은미래 편집국장은 미디어의 시선에서 본 사회적금융 확산 흐름을 짚었다. 그는 “임팩트투자 관련 보도는 2010년대 초반에 비해 현재 약 30배 이상 늘었다”며 “과거 ‘사회적기업’과 ‘CSR’ 중심에서 2018년 이후 ‘임팩트투자’와 ‘ESG’가 주요 담론으로 자리 잡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해외에서는 민간 재단의 88%가 기관 차원에서 임팩트 투자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절반 이상이 이미 실행 단계에 있다”며 “공익법인도 담론의 확산을 실제 실행으로 옮길 때”라고 덧붙였다. 이어 “국내 임팩트투자 생태계도 여전히 단기 수익률의 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며 “사회문제를 풀기 위해선 더 긴 호흡의 ‘인내자본(patient capital)’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기부에서 투자로” 공익법인의 다음 10년이 달라지려면 [공익법인 NEXT]

투자로 다시 쓰는 공익의 미래 <上> 공익법인, 사회혁신의 주체로 서기 위한 제도 개편 시급 “우리나라의 공익활동은 기업의 기부와 자원봉사에서 출발했다. 지난 10년은 사회적기업과 소셜벤처 등 혁신가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사회문제를 풀어온 시간이었다. 이제 다음 10년은 ‘공익적 투자’와 ‘협력’이 주도할 차례다.” 이종익 한국사회투자 이사장은 지난달 25일, 서울 강남구 소재 마루 180에서 열린 ‘공익법인의 다음 10년, ‘임팩트 투자’로 답하다’ 세미나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한국의 공익법인은 기부와 보조금 중심으로 운영돼 왔지만, 복합화된 사회문제 앞에서 단발성 지원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제 공익법인에도 자본이 선순환되는 ‘투자’ 구조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공익법인이 사회문제를 지속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본을 ‘운용’하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손원익 한국비영리학회 회장은 “공익법인이 여전히 기부금 중심의 제도 틀 안에 묶여 있다”며 “세제 개편과 제도 혁신 없이는 사회혁신 자본이 선순환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현행 세법상 대기업이 공익법인에 주식을 출연할 때 증여세 면세 한도는 5%에 불과하다. 손 회장은 “이 한도를 10% 이상으로 확대해야 기업들이 기부와 투자를 병행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또한 “공익법인이 출연받은 기업의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한 규제도 지나치게 경직돼 있다”며 “투명성을 담보하면서 사회적 목적이 명확한 경우에는 제한적 의결권을 허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익법인이 보유한 자산을 단순히 ‘운영 수익’이 아닌 ‘사회문제 해결의 도구’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손 회장은 “이제는 공익법인도 자본을 굴려 사회적 가치와 재정적 수익을 결합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법적

365일 딸기 키우는 스마트팜, 버려질 작물까지 살린 비결은 

애그테크, 농업의 미래를 짓다<2> 딸기 수직농장으로 재배·유통 혁신하는 ‘아그로솔루션코리아’ 세종시 나성동 거리를 걷다 보면, 강렬한 핑크색 간판이 시선을 끄는 카페가 있다. 이름은 ‘포시즌베리(Four Seasons Berry)’. 유리창 너머로는 층층이 자라는 초록 식물이 보이고, 문을 열면 싱그러운 딸기향이 퍼진다. 포시즌베리는 2023년 세종 나성동 본점을 시작으로 부산·대전으로 확장한 프랜차이즈 카페다. 이곳을 운영하는 주체는 스마트팜 전문기업 아그로솔루션코리아(대표 이상훈)다. 2020년 설립된 이 회사는 국내외 약 10곳에 딸기 수직농장을 구축하며 재배·유통·체험 프로그램·기술 컨설팅까지 아우른다. 이상훈 대표는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에서 18년간 근무하며 전 세계 스마트팜 구축 사업을 담당했다. 그는 “해외에서 K-스마트팜에 대한 수요가 많지만 정부 주도의 소규모 프로젝트로는 한계가 있었다”며 “대규모 유통이 가능한 민간 모델을 만들기 위해 창업했다”고 말했다. 이어 “해외에서는 토마토나 오이보다 한국산 딸기의 인기가 훨씬 높다”며 “딸기는 10도 이하의 저온에서만 자라기 때문에 어떤 기후에서도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수직농장 모델을 직접 고안했다”고 설명했다. ◇ LED와 다층 재배로 연중 수확…“온실 대비 생산성 8배” 아그로솔루션코리아의 핵심은 LED 기반 수직농장 시스템이다. 이 회사는 국내 LED 전문기업과 협력해 딸기 생육에 최적화된 조명을 자체 제작한다. 오전에는 일부 LED만 켜 자연광을 보완하고, 정오에는 전면 조명을 가동해 광합성을 극대화한다. 밤에는 온도를 낮춰 영양분을 집중시킨다. 자연재배 딸기는 햇빛을 그대로 받기 때문에 당도가 높고 과일이 크지만, 최근에는 기후변화로 일조량이 불규칙해지면서 일반 온실에서는 당도 편차나 품질 저하가 발생하기 쉽다. 반면 수직농장은 광의 세기와 시간을 인위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