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운임·환율 동반 상승…호르무즈 의존 높은 한국 에너지 구조 드러나
기후솔루션 “수입선 다변화만으론 한계…공적금융, 전력망·재생에너지 투자 필요”
중동 지역 긴장이 고조되며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에너지 공급망 리스크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수입선을 늘리는 방식만으로는 에너지 안보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전력망과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에너지 조달 방식을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이 보고서를 통해 제기됐다.

기후솔루션은 10일 발간한 이슈 브리프 ‘반복되는 위기, 미뤄진 전환: 화석연료 의존에서 에너지 자립으로’에서 최근 중동 정세가 한국 에너지 공급 구조의 취약성을 다시 드러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최근 유가 상승과 시장 불안을 단순한 일회성 지정학적 사건으로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 수입에 크게 기대온 한국의 에너지 조달 방식이 외부 충격에 취약한 현실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원유 수입의 약 70%, LNG 수입의 약 18%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경로에 의존하고 있다. 이 해협은 전 세계 LNG 물동량의 약 20%가 지나가는 핵심 에너지 통로로, 공급 차질 우려가 제기될 때마다 국제 에너지 시장이 크게 흔들리는 지역이다.
금융시장도 바로 흔들렸다. 물리적 봉쇄가 장기화되지 않았음에도 해협 인근에는 선박 150척 이상이 대기 중이고, 코스피 지수는 3월 초 기준 12% 넘게 하락했으며 원·달러 환율도 1500원을 돌파했다.
해상 운송 비용도 급등했다. LNG 운반선 운임은 2월 말 대비 약 650% 상승해 하루 약 30만 달러(한화 약 4억4000만 원) 수준을 기록했고,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운임 역시 일일 약 43만6000 달러(한화 약 6억4000만 원)로 역대 최고치를 나타냈다. 원자재 가격이 오르는 동시에 운임·보험료·환율까지 흔들리면 비용 충격은 더 커진다. 보고서는 정유·석유화학·발전 등 산업 전반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 공급망 충격 반복…LNG ‘가교 에너지’ 역할 의문

에너지 공급망 충격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73년 1차 오일쇼크와 1979년 2차 오일쇼크, 1990년 걸프전, 2019년 사우디 유전 공격,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2023년 홍해 사태에 이어 최근 호르무즈 긴장까지 유사한 사건이 반복돼 왔다. 보고서는 이를 두고 “리스크가 반복된다면 이는 일시적 불운이 아니라 구조적 취약성”이라고 꼬집었다.
보고서는 수입선 다변화만으로는 에너지 안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미국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 등 대체 공급 논의도 연료 조달 국가만 바뀔 뿐 국제 운송망과 가격 변동성에 대한 외부 의존은 그대로 유지된다는 것이다. 특히 천연가스(LNG)를 탄소중립으로 가는 ‘가교(Bridge)’ 에너지로 삼아온 기존 정책 방향의 한계도 짚었다.
보고서 저자이자 HD한국조선해양(현대중공업)에서 ESG 기획 및 기후변화 전략을 총괄했던 김준호 기후솔루션 수석자문위원은 “LNG가 탄소중립의 가교라는 논리는 공급망이 안정적으로 작동할 때에만 성립한다”라며 “최근 5년 사이 세 차례나 공급망 충격이 반복됐다면, 그것은 더 이상 안정적인 가교라기보다 취약한 경로에 가깝다”라고 말했다.
해외에서는 이미 에너지 위기를 산업 전환의 계기로 활용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을 줄이기 위해 2022년 추진한 REPowerEU 계획을 통해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를 45%에서 19%로 낮췄다. 동시에 가스 소비를 줄이고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면서 전쟁 직후 약 7개월 동안 약 168조 원 규모의 화석연료 수입 비용을 절감한 것으로 분석됐다.
◇ 에너지 안보 해법으로 재생에너지·전력망 투자 강조
보고서는 한국 역시 에너지 조달 방식과 투자 방향을 함께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현재 국내 전력 생산의 약 60%가 화석연료에 기반한 가운데 한국전력 부채는 205조 원 규모까지 누적됐고, 산업용 전기요금은 2022년부터 2024년까지 7차례 인상되며 약 70% 상승했다.
공적 금융의 투자 흐름이 화석연료 중심으로 쏠려 있다는 점도 문제로 언급됐다. 지난 11년 동안 화석연료 관련 인프라에 투입된 공적 금융은 141조 원으로, 재생에너지 지원 규모(11조 원)의 약 13배에 달한다. 보고서는 이러한 투자 흐름이 LNG 의존을 강화하고 외부 리스크가 국내 산업과 소비자 비용으로 전가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LNG 운반선 중심의 산업 구조와 금융 리스크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영국 UCL 에너지 연구소는 한국 수출입은행 해운 금융의 절반 이상이 화석연료 운반선에 묶여 있어 향후 좌초자산, 즉 더 이상 활용하기 어려운 자산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이번 위기를 단지 비용 부담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산업 전환의 기회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한국은 세계 LNG 운반선의 약 74%를 건조하는 조선 강국으로, 대형 선박과 해양 구조물·기자재 분야에서 축적한 제조 역량을 갖고 있다. 보고서는 이러한 역량이 LNG 의존 확대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해상풍력 설치선과 청정연료 추진 선박, 전력망 연계 인프라 등 차세대 에너지 산업으로 확장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후솔루션은 에너지 안보 강화를 위해 단순한 수입 다변화를 넘어 에너지 믹스 자체를 바꾸는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LNG 운반선과 화석연료 인프라 중심으로 배분돼 온 자본을 장기적으로 산업 경쟁력과 에너지 안보를 함께 높일 수 있는 전력망·재생에너지·청정산업 분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보고서는 ▲에너지 금융 포트폴리오의 지정학적 리스크 평가 의무화 ▲LNG 인프라 신규 공적 금융 지원 재검토 ▲재생에너지와 청정선박 금융 확대 ▲에너지 자립도 제고를 위한 장기 로드맵 마련 등을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김 수석자문위원은 “이제 공적금융은 ‘남의 나라 연료’를 실어 올 배와 인프라보다 국내 전력망과 재생에너지 기반을 안정적으로 확충할 기회에 더 우선적으로 투입돼야 한다”라고 전했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