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팩트비즈니스 인사이트] ‘거제 야호’에서 시작된 로컬의 파트너 되기

“로컬은 결핍이었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거제에서 보낸 내가 고향을 떠나며 가졌던 생각이다. 1시간 동안 버스를 타야 영화관에 갈 수 있고, 논술 수업을 듣기 위해 방학마다 서울로 향해야 했던 그 시절, 로컬은 내게서 빨리 벗어나야 할 공간이었다.

그러던 내가 최근 ‘거제 야호’라는 밈 앞에서 멈췄다. 걸그룹 리센느의 일본인 멤버 미나미가 거제 출신 멤버 원이의 유튜브 채널에서 즉흥적으로 외친 이 한마디는 숏폼 알고리즘을 타고 대히트를 쳤다. 리센느는 올해 5월 거제시 공식 홍보대사로 위촉되기까지 했다. 나에게 이 장면은 단순한 밈이 아니었다. “거제도 이젠 힙(hip)해”, “여기 이야기를 함께 해보자”고 말을 거는 일종의 환대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이 가벼운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지역과의 관계를 시작하는 첫 문장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 숫자로 셀 수 없는 관계, 지역을 살리는 새로운 단위

과거 지자체들의 지상 과제는 ‘정주인구’ 늘리기였다. 하지만 수도권 집중 현상 속에서 이는 이웃 지자체와 인구를 뺏고 빼앗기는 제로섬 게임에 불과했다. 이에 정부는 2023년 주민등록인구뿐 아니라 통근·통학·관광 등으로 지역에 머무는 사람까지 포함하는 ‘생활인구’ 개념을 법률에 도입했다. 2025년 8월에는 인구감소지역 89곳을 대상으로, 자주 머무는 지역에 등록하면 주민에 준하는 혜택을 제공하는 ‘생활인구 등록제’도 시행했다. 이와 함께 정주하지 않더라도 지속적인 방문과 교류를 통해 지역에 활력을 더하는 ‘관계인구’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정책의 무게중심이 ‘사는 사람의 수’에서 ‘지역과 관계 맺는 사람’으로 옮겨가기 시작한 것이다.

임팩트스퀘어는 이러한 흐름 속에서 ‘스타트업의 솔루션이 지역의 구조적 문제를 실제로 해결할 수 있는가’를 현장에서 실증하는 실험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해부터 한국관광공사의 후원으로 운영 중인 ‘배터리(BETTER里) 인구감소지역 관광인구 충전 사업’은 관광벤처·스타트업의 아이디어를 인구감소지역에 접목해 체류형 생활인구를 유입하는 프로젝트다. 2025년 안동·봉화 실증사업에 이어 올해는 봉화의 고유 자원을 활용해 밀도 높은 관광 콘텐츠를 만드는 팀들을 액셀러레이팅하고 있다. 사업 담당자인 안혜림 매니저는 이렇게 말했다.

“금강소나무숲에서 요가를 하며 리트릿을 즐기는 경험, 태백산맥의 능선을 바라보며 사과와 송이를 곁들인 다이닝을 즐기는 경험. ‘반드시 봉화여야만 하는 이유’를 만들어주는 것, 그것이 스타트업을 통한 접근이 가진 힘입니다.”

◇ 가벼운 호감에서 출발하는 로컬과의 관계 맺기

‘오래 보아야 예쁘다’라는 나태주 시인의 시구처럼, 지역도 깊이 경험해야 비로소 애착이 생긴다. 그 애착은 어디서부터 시작될까. 주변을 살펴보면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실마리가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빵지순례’다. 지역 빵집을 다녀온 청년들이 SNS에 ‘빵지순례 지도’를 공유하면서 방문객이 늘고, 그 효과가 주변 식당·카페·숙박업소로 번지는 ‘베이커노믹스’ 현상이 나타났다. 대전은 성심당의 인기에 힘입어 ‘빵시투어’라는 전용 관광 코스를 만들기까지 했다. 가벼운 호감이 지역 경제의 새로운 회로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러한 호감이 창업으로 이어진 사례도 있다. 웰피쉬의 정여울 대표는 통영 출신도, 수산업 전공자도 아니다. 코로나 대유행과 일본의 수입 규제로 쌓여가던 통영 바다장어 재고를 발견하고, 일본 편의점의 수산물 간편식에서 힌트를 얻어 직접 통영으로 내려갔다. 2020년 창업한 웰피쉬의 ‘통영 바다장어포’는 미국·캐나다 수출과 국내 편의점 입점으로 이어졌다. 사업이 자리를 잡자 그는 아예 통영으로 이사했고, 행정안전부 ‘청년마을 만들기 공모사업’을 통해 ‘섬바다음식학교’를 열었다. “나 같은 사람을 더 많이 만들고 싶어서”가 그 이유였다. 지역의 문제를 발견한 외지인이 스스로 지역의 파트너가 된 셈이다.

인천 강화도의 협동조합 청풍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같은 질문에 답한다. 유명상 이사는 전국을 돌다 우연히 강화도에 들렀고, 좋은 사람들과의 인연으로 10년 넘게 살게 됐다. 그 경험을 나누고 싶어 2017년 시작한 ‘잠시섬’은 맛집 대신 동네 사람·골목·풍경을 천천히 경험하는 1박∼5박 체류 프로그램이다. 청풍이 일관되게 추구한 것은 지역 주민을 콘텐츠 제공자가 아닌 ‘관계의 주체’로 세우는 것이었다. 현재 매년 약 1500명이 참여하며, 재방문하거나 지인의 추천으로 찾아오는 비율이 70∼75%에 달한다. 최근에는 LLM 기반 AI 안내자 ‘순무’를 결합한 플랫폼 ‘로컬유니버스’를 구축해 방문 이후에도 지역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는 관계인구로의 확장을 꾀하고 있다.

◇ 환대받은 사람이 파트너가 된다

일본 홋카이도의 작은 마을 히가시카와에는 ‘너의 의자(君の椅子)’ 프로젝트가 있다. 마을에서 태어난 모든 신생아에게 지역 목공 장인이 만든 세상에 하나뿐인 나무 의자를 선물하는 프로젝트다. 2006년 시작해 20년 가까이 이어지며 홋카이도 내 11개 지자체로 확산됐다. 의자가 전하는 메시지는 단 하나다. “커서 다른 곳에 가더라도, 여기에 네 자리가 있다는 걸 기억하렴.” 이 프로젝트가 20년 가까이 이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지역이 한 사람의 존재를 환대하고 그 연결을 기억하게 만드는 ‘마음의 구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한국 지자체의 현실은 어떤가. 좋은 이야기도 분명 있지만 텃세가 심하고 적응하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여전하다. 생활인구나 관계인구도 왕래하는 인구수로만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냉정하게 말해 주말에 로컬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떠나는 관광객 몇 명이 당장의 지역 소멸을 막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관계인구가 중요한 이유는 정주하지 않더라도 지속적으로 지역을 방문하고 애착을 가지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숫자로 증명하기 전에 먼저 이 사람들을 ‘잠재적 파트너’로 바라보는 관점이 필요하다.

필자 역시 관계인구의 한 사람이다. 서울에 살고 있지만 정기적으로 거제를 찾는다. 몽돌해수욕장에서 멍하니 듣는 물소리, 바람의 언덕에서 맞는 세찬 바람, 폐조선소를 개조한 복합문화공간에서 마시는 커피 등 거제만이 가진 매력적인 바이브가 좋다. 빨리 거제를 탈출하고 싶었던 과거를 뒤로하고, 요즘의 나는 지인들이 물어볼 때마다 지역의 매력을 안내하는 가이드가 되어준다. 정주하지 않지만 나는 스스로 거제의 파트너라고 생각한다.

우리를 부르는 로컬의 초대는 이미 도처에 있다. 개인의 행복과 만족을 위해 관계를 맺고 싶은 지역이 있는가? 도시의 경쟁에서 벗어나 나다움을 찾고 싶은가? 지역의 유산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보고 싶은가? 지역이 겪는 문제가 눈에 밟히는가? 그렇다면 어쩌면 지금이 바로 로컬의 파트너가 될 타이밍일지 모른다.

김민주 임팩트스퀘어 매니저

필진 소개 

임팩트스퀘어 ‘Team IBR’은 자체 발간 미디어 ‘Impact Business Review’를 기획·발행하고 있습니다. Team IBR은 커뮤니케이션, 액셀러레이팅, 로컬, 투자 등 임팩트스퀘어 각 사업 부문에 소속된 구성원들이 필진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임팩트비즈니스 인사이트] 시리즈에서는 국내외 임팩트 비즈니스의 혁신적인 사례를 심층적으로 탐구하고,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접근 방식을 독자들에게 제시할 것입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임팩트 비즈니스를 소비’하고, 장기적으로 산업·생태계의 관점이 확장되는 마중물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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