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자가 아이들의 삶을 바꿀 수 있을까?”
최근 글로벌 임팩트 투자 시장에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개념이 있다. 바로 아동관점투자(이하 CLI, Child-Lens Investing)다. 단순히 아동을 위한 복지를 넘어, 아동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해로운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자본을 배분하는 전략이다. 유니세프가 개념을 제안했고, 유럽과 북미의 주요 임팩트 투자기관들이 관심을 보이며 관련 지표 개발과 사례 발굴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국내에선 임팩트스퀘어가 이 흐름에 발맞춰 ‘아동’을 임팩트의 중심 축으로 삼았다.
많은 투자자들이 고령화 대응에 집중하며 시니어 시장을 주목하고 있지만, 이 시장은 소비 중심 구조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반면, 아동은 시간이 흐르면 생산자이자 소비자로 전환되는 존재다. 아동의 삶에 투자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시장의 순환 구조를 유지하고, 사회 전체의 기반을 다지는 전략이 될 수 있다.
임팩트스퀘어는 바로 이 가능성에 주목했다. 아동이 건강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성장하는 것이 미래 사회를 지탱하는 핵심 조건이라는 판단이다. 아동에게 투자하는 것은 미래 사회의 기반을 다지는 동시에 건강한 수요와 공급의 균형 속에서 지속 가능한 시장을 만드는, 임팩트와 수익의 교차점에 선 투자다.
◇ CLI, 아동을 바라보는 네 개의 창
CLI는 유니세프가 처음 제안한 개념이다. 아동의 생존, 발달, 보호, 참여를 기준으로 투자 전략을 세우는 방식이다. 유니세프는 여기에 ‘Child-Lens Metrics Bank’라는 자료를 더해, 총 150여 개의 지표를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CLI가 낯선 이들에게 이 프레임은 너무 방대하다. 임팩트스퀘어는 이를 보다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핵심을 재구성했다. CLI의 주요 요소를 ‘개인–사회’, ‘생존–성장’이라는 두 축으로 분류해 2X2 매트릭스를 도출한 것이다.

단순히 ‘교육’이나 ‘의료’처럼 분야별로 나누는 접근을 넘어서, 아동의 삶이 개인의 조건과 사회적 환경에 동시에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 주목한 결과다. CLI는 기후 변화, 도시 설계, 노동 정책 등 아동의 미래에 영향을 미치는 광범위한 영역에서 적용 가능하다. 이처럼 구조적인 접근은 장기적으로 사회 전체에 긍정적인 파급 효과를 낳는 투자 전략으로도 평가받는다.
임팩트스퀘어의 팀 IBR은 이 매트릭스를 바탕으로, 아동 개인의 삶을 실질적으로 바꾸면서도 사회 시스템 전반에 선순환을 만드는 투자 기회를 발굴하고 있다. 지금부터는 이 매트릭스 네 영역을 대표하는 CLI 사례 4가지를 살펴본다.
◇ 기후 대응이 곧 아동 생존 전략, 카본 뉴트럴
기후 변화는 아동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구조적 요인이다. 폭염, 가뭄, 대기오염, 수인성 질병은 식수와 보건 인프라가 취약한 지역 아동에게 특히 치명적이다. 유니세프와 WHO에 따르면, 전 세계 5세 미만 아동 사망자의 80%가 기후 재난과 기아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매년 50만 명 이상이 수인성 질병과 말라리아로 목숨을 잃고 있다. 약 3700만 명은 기후 재해로 교육 기회를 빼앗긴다.
‘카본 뉴트럴(Carbon Neutral)’은 글로벌 기업의 탄소 감축을 지원하는 기후 솔루션 기업이다. 과학 기반 감축 목표 수립, 온실가스 측정·상쇄 시스템, 재조림과 생태계 복원 등 자연 기반 해법을 제공한다. 이들이 구축하는 시스템은 곧 아동의 생존과 건강, 미래를 지키는 사회 인프라로, CLI의 대표 사례로 평가된다.
현재 Microsoft, PwC, ING 등 300여 개 글로벌 기업과 협력해 민간의 기후 대응 역량을 끌어올리는 중이다. 카본 뉴트럴은 아동을 직접 대상으로 삼지는 않지만, 그들이 살아갈 환경을 구조적으로 바꾸는 방식으로 CLI의 가치를 실현하고 있다. 기후 대응은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다. 탄소를 줄이는 일은 아이들의 삶을 지키는 일이다.
◇ “생리대는 생존의 문제”, 업드림코리아
업드림코리아는 저소득층 여성 청소년의 월경권 보장을 위해 기초 여성용품을 제공하는 사회적기업이다. 임팩트스퀘어가 선정한 CLI(아동관점투자) 사례 중 하나다.
생리대를 살 수 없어 신발 깔창으로 생리를 버텨야 했던 현실. 업드림코리아는 이를 단순한 복지가 아니라, 아동의 생존과 존엄을 위협하는 구조적 문제로 봤다. 그리고 시장 기반의 해법을 제시했다.
이들이 채택한 전략은 ‘1+1 기부 모델’이다. 소비자가 생리대 한 팩을 구매하면, 동일한 제품이 저소득층 청소년에게 전달된다. 일회성 기부를 넘어, 생리대를 생존 필수재로 인식하고 지속 가능한 공급 구조를 만든 것이다.
생리대 부족은 단순한 불편이 아니다. 학업 중단, 건강 악화, 자존감 손상으로 이어지고, 결국 아동의 삶의 기회를 제약하는 요인이 된다. 업드림코리아는 이 문제를 민감하지만 실질적인 ‘생존 조건’으로 보고, 이를 비즈니스 모델 안으로 끌어들였다. 2024년 말 기준, 누적 공급된 생리대는 500만 장을 넘는다. 모든 물량은 판매 기반의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조달됐다.
이 사례는 CLI가 거대한 기술이나 시스템 변화에서만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작은 필요에서도 출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누구도 생리 때문에 학교에 가지 못하게 해서는 안 된다.” 이 문장은 CLI의 핵심 가치를 가장 분명하게 드러낸다.
◇ 통신망이 곧 생존 기반, 사파리콤
사파리콤(Safaricom)은 케냐 최대의 통신사이자, 세계 최대 규모의 모바일 금융 플랫폼 ‘M-페사(M-Pesa)’를 운영하는 디지털 인프라 기업이다. 2022년에는 CLI 기준에 따라 트리오도스 투자관리(Triodos Investment Management)로부터 임팩트 투자를 유치했다. 기업의 규모나 업종보다, 아동의 삶에 구조적 변화를 일으키는지 여부를 중심에 두는 CLI 접근방식과 부합한 결과다.
사파리콤은 아동을 직접 지원하지는 않지만, 교육·보건·금융 접근성 같은 사회 기반 인프라를 바꾸며 아동의 삶에 간접적이지만 핵심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케냐 인구의 약 70%가 농촌에 거주하는 상황에서, 모바일 네트워크는 곧 생존 기반이 된다.
팬데믹 기간에는 스마트폰이 케냐 아동의 유일한 학습 수단이 되기도 했다. 은행 계좌가 없는 보호자도 M-페사를 통해 송금·결제·저축이 가능해졌고, 이는 가계 안정성과 아동의 학업 지속성에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M-페사 고(M-Pesa Go)’는 10세 이상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금융 서비스로, 부모와 연결된 계좌를 통해 실질적인 금융교육과 자산 관리 훈련을 제공한다.
사파리콤 재단은 지역 보건 프로그램, 청소년 오케스트라, 스포츠 활동 등도 후원하며 아동과 청년의 자립 기반을 장기적으로 조성하고 있다. 사회적 인프라를 바꾸는 것이 곧 아동의 삶을 바꾸는 일이라는 점에서, 사파리콤은 CLI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 “누구나, 어디서나, 무료로”…칸 아카데미가 만든 교육의 평등
칸 아카데미(Khan Academy)는 “누구나, 어디서나, 고품질의 교육을 무료로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비전으로 만들어진 비영리 교육 플랫폼이다. 2008년 설립자 살만 칸이 조카에게 수학을 가르치기 위해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 하나에서 시작됐다. 이 작은 실험은 전 세계 1억 명 이상이 사용하는 글로벌 학습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칸 아카데미는 수학·과학·역사·경제 등 다양한 과목의 온라인 강의와 실습 콘텐츠를 제공하며, AI 기반 맞춤형 학습 경로와 실력 분석 기능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콘텐츠는 38개 언어로 번역돼 있으며, 교사와 보호자를 위한 학습 모니터링 도구도 제공된다.
소득, 지역, 언어, 인프라 등 다양한 제약을 넘어서 교육 기회를 연결하고 있다는 점에서, 칸 아카데미는 단순한 온라인 플랫폼을 넘어 디지털 기반 공공 교육 인프라로 기능한다. 특히 팬데믹처럼 교육의 연속성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아동의 학습권을 안정적으로 보장하며, 교육 기회의 공백을 최소화하는 구조적 역할을 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칸 아카데미는 교육 격차를 줄이고, 학습권을 보편적 권리로 확장하려는 기술 기반의 시도다. 단순한 개인의 성취를 넘어서, 교육의 형평성과 지속 가능성이라는 CLI의 방향성과 맞닿아 있는 대표 사례로 꼽힌다.
◇ 아동의 삶을 바꾸는 투자, 결국 모두의 내일을 바꾼다
이번에 살펴본 네 가지 CLI 사례는 하나의 사실을 말해준다. 아동의 삶을 중심에 둔 투자는 한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미래를 위한 전략이라는 점이다. CLI는 착한 투자나, ESG 부속 개념에 머무르지 않는다.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시스템을 바꾸며, 장기적 관점에서는 미래 세대의 역량을 준비하는 방식이자 사회의 회복력을 높이는 투자 모델이다.
이미 글로벌 투자자들과 기업들은 아동 관점에서 임팩트를 설계하고 있다. 이제는 한국에서도 더 많은 투자자와 창업자, 파트너들이 이 생태계에 참여할 때다. 아이의 삶을 바꾸는 투자가 결국 모두의 내일을 바꾼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CLI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김민주 임팩트스퀘어 매니저(Team IBR)
필진 소개 임팩트스퀘어 ‘Team IBR’은 자체 발간 미디어 ‘Impact Business Review’를 기획·발행하고 있습니다. Team IBR은 커뮤니케이션, 액셀러레이팅, 로컬 등 임팩트스퀘어 각 사업 부문에 소속된 구성원들이 필진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임팩트비즈니스 인사이트] 시리즈에서는 국내외 임팩트 비즈니스의 혁신적인 사례를 심층적으로 탐구하고,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접근 방식을 독자들에게 제시할 것입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임팩트 비즈니스를 소비’하고, 장기적으로 산업·생태계의 관점이 확장되는 마중물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