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팩트비즈니스 인사이트] 전기만으로는 넷제로가 오지 않는다

국내 최종 에너지 소비량의 48%는 열에너지다. 이 가운데 96.4%는 화석연료를 연소해 생산되며, 태양열·수열·폐열 등을 활용한 재생열은 3.6%에 불과하다. 글로벌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글로벌 기후테크 논의는 여전히 태양광, 풍력 등 전기 부문에 집중돼 있다. 진정한 넷제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화려한 전동화 전환 이면에 가려진 열에너지의 탈탄소화와 효율화 문제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 버려지는 데이터센터 열, 왜 당장 활용하지 못할까?

열에너지 탈탄소화는 크게 무탄소 에너지원을 활용한 열 생산과 폐열 재활용으로 나눌 수 있다. 생산된 열에너지의 절반은 실제 사용처까지 전달되지 못한 채 버려진다(Wasted Energy). 특히 전체 폐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100℃ 미만의 중저온 폐열 가운데, 40℃ 미만의 저온 폐열은 회수가 까다롭고 승온 장치인 히트펌프가 필수적이다.

이러한 저온 폐열 활용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는 사례가 데이터센터다.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는 수천 세대에 열을 공급할 수 있는 수준의 에너지를 24시간 발생시키는 잠재적 열원이며, 북유럽을 중심으로 이미 상용화 사례도 존재한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데이터센터 폐열이 상업적으로 대규모 활용되는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최근 임팩트스퀘어 투자팀은 국내외 전문가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 배경을 확인했다.

전문가들은 데이터센터가 훌륭한 열원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었다. “데이터센터는 24시간 가동되기 때문에 열 발생의 불확실성이 낮고, 막대한 열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 또한 온도를 높이기 위한 히트펌프 기술도 이미 상용화 단계에 있다”는 평가다.

그럼에도 현장에서 마주하는 결정적 장벽은 인프라 비용이다. 특히 전문가들은 “핵심은 열을 수송하는 열수송관”이라며 “지하 열수송관 매설 비용은 1km당 수십억 원에 달해 대규모 주거단지가 인접해 있지 않은 이상 초기 투자비 회수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정책 및 구조적 한계도 존재한다. 해외와 달리 국내에는 아직 초기 설비 투자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 체계가 부족하다. 또한 여러 고객사가 입주한 데이터센터의 특성상 이해관계자 간 합의 도출도 쉽지 않다. 기업 입장에서는 폐열을 제공할 경제적 유인이 크지 않은 데다, 폐열 회수 시스템을 연동할 경우 본연의 냉각 시스템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운영 리스크도 우려한다.

결국 거대 자본과 정부 주도의 인프라 계획 없이는 민간 차원의 확장에 한계가 분명한 상황이다.

◇ 열에너지 탈탄소화의 두 가지 경로: 재활용과 전환

앞서 언급한 것처럼 열수송관망의 부재는 현장이 직면한 명확한 장벽이다. 임팩트스퀘어는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분석하기 위해 열에너지 탈탄소화 시장을 열원 조달 방식(폐열 회수 vs 무탄소 열 전환)과 물리적 인프라 의존도(망 연결형 vs 현장 독립형)라는 두 축으로 구분해 2×2 매트릭스로 살펴봤다.

첫째, 망 연결형 폐열 재활용이다. 반도체 공장이나 데이터센터 등의 폐열을 도시 난방망에 연결하는 방식이다. 가장 근본적인 해법이지만 1km당 수십억 원에 달하는 열수송관 투자비(CAPEX)와 장기적인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

둘째, 망 연결형 무탄소 열 전환이다. 핀란드 헬싱키 사례처럼 대규모 재생에너지를 고온의 모래나 물 형태로 저장하는 유틸리티 규모 열저장소(Utility-scale Thermal Energy Storage) 모델이 대표적이다. 화석연료 사용을 줄일 수 있지만 전력망과 난방망 구축 등 대규모 인프라 투자가 선행돼야 한다.

셋째, 현장 독립형 폐열 재활용이다. 수십 킬로미터의 배관을 설치하는 대신 폐열 발생지 인근에 스마트팜 등 수요처를 배치하는 코로케이션(Co-location) 모델이다. 공간 재배치를 통해 인프라 제약을 극복할 수 있지만 초기 단계부터 다수 이해관계자의 협력이 필요하며 충분한 수요처 확보가 관건이다.

넷째, 현장 독립형 무탄소 열 전환이다. 외부 인프라 없이 개별 현장에 모듈형 열저장 설비를 설치해 재생전기를 열로 전환하고 즉시 활용하는 방식이다. 기존 제조 공정이나 설비의 운영 안정성을 훼손하지 않아 인프라 비용과 이해관계자 병목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또한 화석연료를 즉각 대체해 비용 절감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다만 실질적인 탄소 감축 효과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분산된 모듈을 하나의 플랫폼으로 연결하는 전략과 초기 시장 확산을 견인할 임팩트 자본의 역할이 필요하다.

임팩트스퀘어는 특정 사분면만을 정답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모든 사분면에 가능성이 존재한다. 다만 거대 인프라 투자의 시계열이 불확실하고 다자간 합의의 병목이 존재하는 현재 상황에서는 외부 제약을 우회하면서 비용 절감과 탄소 감축 효과를 입증할 수 있는 제4사분면의 분산형 모델이 벤처 자본의 유연성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일 가능성이 높다.

◇ 투자 사례로 본 분산형 열에너지의 가능성

이러한 분산형 열관리 기술이 현장에서 어떻게 가치를 창출하는지 보여주는 대표 사례가 임팩트스퀘어가 투자한 베트남 기업 Alterno다. Alterno는 거대 배관망이라는 인프라 제약을 벗어나 제4사분면 모델의 재무적·환경적 임팩트를 실제로 증명하고 있다. 이러한 현장 독립형 모듈은 동남아시아를 넘어 국내에서도 열 인프라가 부족한 지방 산업단지나 대규모 스마트팜의 화석연료 보일러를 대체하는 방식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있다.

  • 비용 구조의 혁신: Alterno는 태양광 전기로 모래를 600℃까지 가열해 열을 저장한다. 희소 광물이 아닌 모래를 활용하기 때문에 배터리 원자재 공급망 리스크가 없고 원가 상승에 대한 불확실성도 상대적으로 낮다.
  • 단위 경제성과 현장 적용성: 수천억 원 규모의 배관 인프라 없이 동남아시아 농업·제조업 현장에 모듈 형태로 즉시 적용할 수 있다. 특히 베트남은 커피와 쌀 수출이 활발한 국가로, 수확 후 건조 과정에서 많은 탄소가 배출된다. Alterno는 농작물 건조에 사용되던 디젤 연료 비용을 절반 수준까지 절감하며 고객에게 효과적인 비용 절감 수단을 제공한다.
  • 구조적 임팩트 창출: 산업·농업용 열에너지의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춰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한다. 동시에 전력망이 취약한 지역에도 안정적인 고온 열을 공급해 농산물 건조 품질을 개선하고, 농민의 실질적인 소득 증대로 이어지는 생산적 에너지 복지를 실현한다.

◇ 현장에서 작동하는 기후테크를 향해

에너지 생산 중심의 친환경 전환은 분명한 진전을 보이고 있지만, 에너지 소비 측면의 탈탄소화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특히 최종 에너지 소비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열에너지는 낮은 시장성과 막대한 인프라 투자 비용 때문에 오랫동안 논의의 중심에서 비켜나 있었다. 그러나 화석연료 의존도가 절대적인 이 영역의 탈탄소화 없이는 넷제로 달성도 어렵다.

대규모 열수송관망 없이는 폐열 재활용의 근본적 확장이 쉽지 않다는 현실 앞에서, 임팩트스퀘어는 현장 독립형 무탄소 열 전환 모델을 실행 가능한 대안으로 제시한다. 이는 거대 자본과 정책적 지원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탄소 감축 성과를 축적할 수 있는 현실적인 경로다.

물론 분산형 전환 모델에 주목한다고 해서 대규모 폐열 회수 인프라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중저온 폐열의 고효율 회수 기술, 경제성 있는 열수송 인프라 혁신, 그리고 분산된 자원을 연결하는 플랫폼 전략은 장기적인 에너지 탈탄소화를 위해 반드시 완성돼야 할 퍼즐이다.

당장 현장에서 작동하는 기민한 대안에 자본을 투입하면서도, 보다 근본적인 인프라 혁신을 향한 시선을 놓지 않는 것. 그것이 복잡한 사회문제를 다루는 임팩트스퀘어의 관점이자 철학이다.

조남웅 임팩트스퀘어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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