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귤 찌꺼기가 다시 귤 포장재로…플라스틱 줄이는 스타트업 ‘나누’

[임팩트를 짓다] 이윤노 나누 대표
“버려지는 자원에 새 가치…종이 포장재로 플라스틱 대체할 것”

“버려지는 천연자원으로 만든 그릇이 일회용 플라스틱을 대체합니다. 그 안에는 그동안 구현이 쉽지 않았던 기술이 담겨 있습니다.”

일회용 플라스틱을 줄이는 것을 넘어, 버려지는 자원을 다시 포장재로 되살려 환경오염을 줄이는 것. 지난 2일 경기 안산시 본사에서 만난 종이 포장재 스타트업 ‘나누’의 이윤노 대표는 회사가 그리는 청사진을 이렇게 설명했다.

나누가 만드는 제품은 ‘펄프몰드’ 포장재다. 쉽게 말해 종이를 물에 풀어 틀에 넣고 찍어낸 포장재다. 계란판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보통 펄프몰드는 목재펄프나 폐지를 원료로 만든다. 사용한 뒤에는 종이류로 재활용할 수 있다.

나누는 여기에 버려지는 자원을 더했다. 대표적인 원료가 제주 감귤박이다. 감귤박은 감귤을 착즙하고 남은 찌꺼기다. 이 대표는 “제주에서는 착즙 후 남는 감귤박이 수천 톤씩 나오는데, 그대로 묻으면 토양이 산성화돼 처리도 쉽지 않다”며 “이 감귤박을 포장재로 만들어 제주 감귤이나 룸스프레이 같은 로컬 제품 포장에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누는 제주면세점, 제주관광공사 등과 협업하고 있다. 하이트진로의 투자를 받아 맥주를 만들고 남은 부산물인 맥주박으로 맥주 포장재를 만들기도 했다.

나누의 핵심 경쟁력은 ‘코팅’ 기술이다. 종이 포장재를 식품 용기로 쓰려면 물이나 기름에 쉽게 젖지 않아야 한다. 문제는 펄프몰드 표면에 작은 구멍이 많다는 점이다. 코팅액이 표면에 고르게 남지 않고 안으로 스며들기 쉽다. 그래서 많은 기업은 종이 포장재 위에 얇은 플라스틱 필름을 붙인다. 겉보기에는 종이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종이와 플라스틱이 섞인 제품이 된다. 이 경우 재활용이 까다롭다. 플라스틱 코팅이 된 종이컵을 일반 종이류로 버릴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유다.

나누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펄프몰드 표면에만 코팅액을 입히는 기술을 개발했다. 코팅액도 생분해성 소재를 쓴다. 이 대표는 “플라스틱 필름을 붙이는 방식은 결국 반쪽짜리 재활용이라고 봤다”며 “1년간 환경부 실증을 거쳐 올해 3월 일반 종이와 함께 배출할 수 있는 지정분리배출 표시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 기술은 해외에서도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 나누는 현재 코카콜라와 로레알 등에 종이 포장재를 공급하는 글로벌 패키징 기업 풀팩(PulPac)과 협력을 논의하고 있다.

환경 효과도 판매량을 기준으로 비교적 명확하게 계산된다. 종이 용기 하나가 팔릴 때마다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 하나를 대체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나누는 실제 판매량을 기준으로 플라스틱 대체 효과와 탄소 감축 효과를 산출한다. 이 대표에 따르면, 나누가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굽네치킨에 납품한 ‘추추 치킨 스테이크’ 전용 용기 200만 개는 플라스틱 사용을 줄여 나무 5만 그루를 심은 것과 맞먹는 탄소 감축 효과가 있다.

◇ “아이들이 쓰레기 분진을 맞고 있었다” 창업의 시작

이 대표가 사업을 구상하게 된 계기는 개발도상국에서 마주한 쓰레기 문제였다. 보건학을 전공한 그는 대형병원 해외사업팀에서 근무하던 당시 파라과이 공적개발원조(ODA)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그는 “햇빛이 쨍쨍한 날 학교에서 눈처럼 무언가가 내리길래 봤더니 운동장에서 쓰레기를 태우고 있었다”며 “아이들이 그 분진을 그대로 맞으며 뛰어놀고 수업을 듣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아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회상했다.

관련 기술이 없었던 그는 펄프몰드 분야 전문가인 성용주 충남대 교수를 찾아가 조언을 구했고, 이후 창업을 제안해 2021년 공동 창업에 나섰다. 성 교수가 연구해온 감귤박 펄프몰드 제조 기술과 친환경 코팅 기술을 나누가 제품으로 구현하고 양산하는 구조였다.

사업화 과정에서 힘이 된 것은 씨엔티테크의 임팩트 투자였다. 나누가 받은 첫 투자였다. 이 대표는 “지금은 투자자들에게 매출이나 손익 같은 숫자로 회사를 설명하지만, 초기에는 가능성과 실행력을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했다”며 “첫 투자 덕분에 제품을 양산할 수 있는 설비를 개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창업 초기에는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특히 도움이 된 것은 기업과 공공기관을 연결해주는 오픈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이었다. 이 대표는 “공신력 있는 기관이 중간에서 연결해주면서 평소 접점이 없던 기업들과 협업 기회를 만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사업 전략도 수정했다. 저렴한 일회용 플라스틱과 가격 경쟁을 벌이기보다, 이미 친환경 소재에 관심을 가진 기업을 먼저 공략하기로 한 것이다. 주요 타깃은 바이오플라스틱을 사용하던 기업이었다. 이 대표는 “바이오플라스틱은 가격 부담이 있으면서도 재활용 측면에서는 한계가 있다고 봤다”며 “이미 친환경 포장재를 고민하고 있는 기업이라면 충분히 설득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전략은 통했다. 굽네를 시작으로 쿠팡, 마켓컬리 등에 제품을 납품하기 시작했고, 나누의 매출은 2024년 2억2000만 원에서 2025년 6억6000만 원으로 1년 만에 약 3배 늘었다. 다음 달부터는 현대백화점 식품관에도 신규 납품할 예정이다.

◇ 플라스틱 규제 강화…친환경 포장재 시장 커진다

최근 환경 규제가 깐깐해지는 글로벌 시장 상황은 나누에는 큰 기회다. 유럽연합(EU) 등이 포장재의 생산부터 폐기까지 전 과정을 관리하는 규정을 강화하면서, 유럽에 제품을 수출하는 국내 대기업들도 대체 포장재를 찾기 시작했다. 석유 기반의 플라스틱 원료 가격이 요동치는 반면, 종이 원료는 공급망과 가격이 안정적이라는 장점도 작용했다.

나누의 다음 목표는 ‘다품종 소량생산 시스템’ 구축이다. 똑같은 모양을 수백만 개씩 찍어내야 하는 현재의 한계를 넘어, 제각각인 배달 용기 모양에 맞춰 기계 설정만으로 다양한 종이 그릇을 생산하겠다는 계획이다.

이 대표는 “당장 모든 플라스틱을 없앨 순 없겠지만, 작은 포장재 하나부터 종이로 바꿔 나간다면 지구를 살리는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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