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수개월간, 우리 경제가 수천 킬로미터 밖 호르무즈 해협의 물리적 안전이라는 변수에 매여 있는 것을 보며 경제 주권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특정 지역의 파이프라인이 봉쇄되거나 독재자의 변덕 한 번에 세계 경제가 휘청이는 광경은 우리가 누려온 성장이 얼마나 취약한 토대 위에 있었는지를 증명한다. 2026년의 호르무즈발 에너지 위기는 냉혹한 경고다. 화석 연료를 고집하는 한, 그 어떤 선진국이나 거대 기업도 진정한 의미의 경제 주권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 한 세기 동안 글로벌 자본주의를 지탱해온 화석 연료 시스템은 그 자체로 거대한 지정학적 인질과 다름없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지정학적 충돌과 에너지 전환이라는 거대한 두 개의 파도가 정면으로 부딪히는 역사적 소용돌이 한가운데 서 있다. 이 시점에서 기후테크 투자의 관점은 단순한 환경 보호를 훌쩍 넘어서야 한다. 국가와 자산의 안위를 지키는 ‘그린 디펜스(Green Defense)’라는, 더 차갑고 단단한 논리로 확장되어야 할 때다.
그린 디펜스라는 개념의 뿌리는 2000년대 초반 미 국방부(DoD)의 전략 보고서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군사 전략가들은 기후 변화를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닌, 기존 갈등을 증폭시키고 예측 불가능한 분쟁을 야기하는 ‘위협 승수(Threat Multiplier)’로 규정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미군 사망자의 상당수가 전투가 아닌 연료 수송 행렬을 보호하다 발생했다는 통계는 군 수뇌부에 깊은 충격을 안겼다. 화석 연료에 의존하는 군대는 보급로가 끊기는 순간 무력해진다는 뼈저린 교훈이었다. 이때부터 군은 전장에서 직접 태양광으로 전기를 생산하고, 화석 연료 없이도 장기 작전이 가능한 ‘에너지 자립형’ 전술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린 디펜스는 처음부터 ‘지구를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남아 승리하기’ 위한 전략적 필연성에서 탄생한 개념이었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이 논의를 군사 담론에서 경제·에너지 안보 담론으로 격상시켰다. 에너지가 어떻게 무기화될 수 있는지 목격한 글로벌 사회는 ‘에너지 주권’이 곧 ‘생존’임을 체감했고, 이는 자본이 기후테크를 바라보는 시각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2026년의 우리는 중동의 화염 속에서 역설적으로 기후 자본주의의 필연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있다.
탄소 의존도를 낮추는 것은 곧 국가 간 갈등의 불씨를 제거하는 일이며, 평화 유지를 위한 기회비용을 낮추는 길이다. 물론 이 길이 쉬운 선택은 아니다.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하자 세계 각국은 다시 석탄 발전을 늘리고 환경 규제를 완화하며 과거로의 회귀를 택하고 있다.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2 이상이 화석 연료 순수입국에 살고 있는 현실에서, 중동의 포성은 곧바로 민생 경제의 충격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혼란 속에서 중국의 모습은 사뭇 이질적이다. 물론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인 중국 역시 중동의 화염에서 자유롭지 않다. 주목해야 할 것은 중국이 입는 타격의 ‘질’이다. 중국은 지난 십수 년간 전 세계 공급망을 장악하며 전기차(EV)와 재생에너지 인프라에 천문학적인 자본을 쏟아부어 왔다.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어 원유 공급이 차단될 때, 내연기관차에 의존하는 국가들은 마비 상태에 빠지지만 전동화에 성공한 중국의 물류와 출퇴근길은 상대적으로 평온을 유지하고 있다. 기후테크를 단순한 탄소 감축 수단이 아니라, 미 해군이 장악한 해상 보급로라는 지정학적 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안보 무기로 육성해온 중국의 전략이 옳았음이 증명되고 있는 것이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중동의 위기로 전 세계가 탈석유를 서두를수록 중국의 기후테크 공급망은 오히려 더욱 견고해진다는 점이다. 남들에게는 안보 위기인 전쟁이, 전 세계 태양광·풍력·배터리 시장을 장악한 중국에는 ‘수요 폭발’의 기폭제가 되고 있다. 누군가는 유가 보조금에 조 단위 혈세를 쏟아부으며 버티는 동안, 중국은 자신들이 구축한 그린 인프라를 전 세계에 팔며 위기를 수익으로 치환하고 있다.
2026년의 기후 투자는 더 이상 낭만적이지 않다. 그것은 가장 냉철한 안보 전략이자, 국가와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한 처절한 생존 전략이다. ‘그린 디펜스’의 최전선에서 우리는 지금 새로운 부의 지도를 그리고 있다. 흔들리지 않는 에너지 주권 위에 세워진 자본만이 이 불확실성의 시대를 뚫고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은 결국, 지구를 구하는 길과 정확히 일치한다.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
필자소개
임팩트 벤처캐피털(VC) 소풍벤처스의 대표로, 국내 기후테크 투자 생태계를 개척해온 투자자입니다. 기후위기를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과제이자 자본 전환의 핵심 흐름으로 바라보며, 기술과 자본이 만나는 현장에서 혁신적인 기후테크 스타트업을 발굴·육성하고 있습니다. 현재 정부 및 글로벌 기관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기후 금융과 임팩트 투자 확산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