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배출권 거래 시장과 비교해 본 사회적 가치 거래의 가능성
정부·기업·투자자 편익 있지만 시장 작동 위한 제도 기반 더 갖춰져야
사회문제 해결로 만들어진 성과에 가격표를 붙이고, 이를 사고파는 일이 가능할까? 일자리 창출이나 교육 격차 완화 같은 무형의 ‘사회적 가치’를 거래한다는 건 여전히 낯선 개념이다.
그러나 불과 20년 전만 해도 대기 중의 ‘탄소’를 돈 주고 거래한다는 것 역시 상상하기 어려웠다. 현재 ‘탄소 시장’은 1조2000억 달러(약 1740조 원) 규모의 거대 시장으로 성장했다. 비결은 단순하다. 환경을 보호하자는 ‘선의’에 기댄 것이 아니라, 온실가스 배출 한도를 정하고 배출권을 거래하게 만들어 기업에 실질적인 경제적 유인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온실가스를 한도보다 적게 배출한 기업은 남은 배출권을 판매해 수익을 얻고, 초과 배출한 기업은 비용을 지불해 배출권을 구매한다. 기후위기 대응처럼 사회적 가치 역시 참여자에게 경제적 이익이 돌아오는 구조가 마련돼야 비로소 거래 가능한 자산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SK그룹 산하 사회적가치연구원(CSES)이 2026년 발간한 아티클 ‘사회적 가치는 거래될 수 있을까’에서 심도 있게 다뤄졌다. 이 보고서는 탄소 시장과의 비교를 통해 사회적 가치가 실제 시장에서 거래되기 위한 핵심 조건들을 분석했다. 아래 해당 보고서 주요 내용을 정리했다.
◇ 경제적 유인이 있어야 시장이 움직인다
보고서에 따르면, 사회적 가치에 가격이 매겨져 거래될 경우 정부, 기업, 투자자 등 여러 주체가 각기 다른 편익을 얻게 된다.
정부는 같은 재원으로 더 많은 사회적 성과를 유도할 수 있다. 지금까지 정부는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예산을 직접 투입하거나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을 주로 활용해왔다. 하지만 사회적 가치에 가격이 붙으면 기업, 비영리, 사회적경제 조직 등 다양한 주체가 문제 해결에 참여할 유인이 생긴다. 정부는 모든 문제를 직접 해결하기보다 어떤 성과에 보상할지 설계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기업 입장에서도 사회공헌 활동을 단순 비용이 아니라 전략적 투자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한국경제인협회에 따르면 2024년 국내 주요 기업의 평균 사회공헌 비용은 166억 원 수준이다. 지금까지는 사회적 책임 이행이나 평판 관리 성격이 강했지만, 사회적 성과가 거래 가능한 자산으로 인정되면 취약계층 고용이나 생물다양성 회복 같은 활동이 장기적인 비용 절감과 리스크 관리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투자자에게는 새로운 투자 시장이 열린다. 현재 주요 ESG 평가기관 간 상관계수는 0.54에 불과할 정도로 측정 기준이 제각각이다. 같은 기업이라도 평가기관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사회적 성과가 표준화된 방식으로 측정·검증된다면, 사회적 가치 역시 모호한 선의가 아닌 ‘신뢰할 수 있는 투자 자산’으로 격상될 수 있다.
시민 입장에서는 그동안 충분히 보상받지 못했던 사회문제 해결 활동이 경제적 가치를 인정받을 가능성이 생긴다. 예컨대 돌봄 공백 해소나 지역 공동체 활동처럼 사회 전체에 기여하지만 시장 안에서는 비용으로 취급되던 활동들이 새로운 보상 체계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이다.
◇ 사회적 가치 시장, 설계의 고도화가 필요하다
다만 사회적 가치가 실제 시장에서 거래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장벽도 많다. 핵심은 측정, 귀속, 제도다.

탄소 시장은 이산화탄소 1톤(tCO₂)이라는 표준화된 거래 단위를 갖고 있다. 온실가스 감축량을 수치화하고 비교할 수 있는 공통 기준이 있는 셈이다. 반면 사회적 가치는 고용의 질, 삶의 안정성, 돌봄, 건강, 신뢰 등 복합적 요소가 얽혀 있다. 무엇을 성과로 볼지, 어느 수준까지를 거래 가능한 단위로 인정할지부터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성과의 귀속 문제도 있다. 탄소 배출은 특정 기업 활동과 직접 연결되지만, 사회적 가치의 편익은 사회 전반으로 퍼지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지역 상생 활동은 공동체 전체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지만, 그 효과가 특정 기업의 손익으로 바로 돌아오지는 않는다. 사회적 가치가 ‘좋은 일’로 평가받으면서도 시장 안에서는 거래되기 어려운 이유다.
제도적 수요 역시 부족하다. 탄소 배출권은 국제협약과 정부 규제가 수요를 만들었다. 기업들은 배출 한도를 지켜야 했기 때문에 배출권을 사고팔 수밖에 없었다. 반면 사회적 가치는 아직 거래를 강제하거나 구매 필요성을 만드는 제도적 장치가 거의 없다.
라준영 가톨릭대 경영학과 교수는 구매자 유인 설계가 핵심이라고 짚었다. 라 교수는 “사회적기업이나 중소기업은 성과를 현금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참여 유인이 있지만, 현재는 구매자에게 돌아가는 직접적인 이익이 크지 않다”며 “사회적 가치를 구매한 기업에 법인세 감면 같은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업의 자발적 선언 역시 수요를 만드는 방식으로 거론된다. 라 교수는 넷제로 선언처럼 기업이 ‘사회적 가치 목표’를 설정하고, 활동 과정에서 발생한 사회적 비용과 창출한 사회적 가치를 화폐 단위로 측정·공개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목표에 미달한 부분은 시장에서 사회적 가치를 구매해 상쇄하는 구조다. 그는 “탄소중립 선언에 준하는 사회적 가치 선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시장 규모 확대 자체가 목표가 돼선 안 된다

물론 시장 조성을 위한 실험은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SK 사회적가치연구원은 사회적기업의 성과를 측정해 현금으로 보상하는 ‘사회성과인센티브(SPC)’ 제도를 이어오고 있다. 해외에서도 청년 봉사활동을 디지털 화폐로 보상하는 남아공의 ‘즐라토(Zlto)’, 검증된 환경·사회 성과를 거래하는 글로벌 플랫폼 ‘커먼 굿 마켓플레이스(CGM)’ 등의 시도가 활발하다.
다만 전문가들은 ‘시장 만능주의’를 경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숫자로 잡기 쉬운 성과(단순 고용 인원 수)에만 보상이 집중되면, 일자리의 질이나 장기적인 삶의 변화 같은 본질적 가치가 소외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임가영 사회적가치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탄소 시장이 커졌다고 그만큼 환경이 깨끗해진 것은 아니듯, 시장 성장이 곧 문제 해결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며 “사회적 가치 거래도 시장 규모 확대 자체를 목표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측정되지 않는 가치, 즉 시장의 유인만으로는 움직이지 않는 영역이 오히려 사회문제 해결의 핵심일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짚었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