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22일(토)

사회적 가치도 돈이 될 수 있을까? [사회적 가치, 시장에서 움직이다]

탄소배출권 넘어 ‘사회적 가치 거래’ 가능할까
기업도 정부도 주목…사회적 가치를 보상하는 방법

사회문제를 해결하면 경제적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 다소 낯설게 들릴 수 있지만, 이미 일부 영역에서는 현실이 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탄소 배출권(탄소 크레딧)이다. 온실가스를 감축한 기업과 개인에게 경제적 보상을 제공하는 이 제도는 기후 위기 대응의 핵심 정책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현재 탄소 시장의 규모는 1조 2000억 달러(한화 약 1728조 원)에 달한다.

그렇다면 취약계층 고용 창출, 교육 격차 해소, 의료 접근성 향상 등 보다 넓은 ‘사회적 가치(Social Value)’는 어떨까? 탄소 배출권처럼 사회적 가치를 시장에서 거래하는 시스템은 아직 정착되지 않았지만, 최근 기업과 정부, 금융 시장을 중심으로 사회적 가치를 경제적으로 보상하는 새로운 실험들도 등장하고 있다.

SK그룹 산하 사회적가치연구원(CSES)이 지난 1월 발간한 보고서 ‘시장은 어떻게 사회적 가치를 보상하는가’는 사회적 가치를 경제적으로 평가하고 보상하는 흐름을 분석했다. 보고서는 사회적 가치를 거래 가능한 자산으로 만들려는 시도가 확산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CSES가 2025년 1월 발간한 이슈 브리프 표지.

◇ 사회적 가치 보상 : 60년간 이어져 온 역사

사실 사회적 가치를 경제적으로 보상하려는 움직임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1960년대 ‘사회책임투자(SRI, Socially Responsible Investment)’가 등장하면서 무기·담배·환경 파괴 산업을 배제하는 투자 모델이 나타났다. 2000년대 들어서는 ‘임팩트 투자(Impact Investing)’가 등장했다. 이는 재무적 성과뿐만 아니라 사회적 성과까지 고려하는 투자 방식으로, 오늘날 그 규모는 1조 5710억 달러(한화 약 2263조 원)에 이른다.

사회적 가치를 창출한 만큼 보상을 지급하는 ‘성과기반금융(OBF, Outcome-Based Finance)’은 2000년대 초반 국제 공공기구를 중심으로 등장했다. 기존 임팩트 투자와 달리, 사업의 궁극적 목표인 ‘성과(Outcome)’에 연계해 자금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성과기반금융의 가장 큰 특징은 사업 목표를 사전에 합의하고, 독립 기관이 객관적으로 측정한 결과를 바탕으로 목표 달성 시에만 투자자에게 원금과 수익금을 상환한다는 점이다. 즉, 단순한 ‘사회적 가치 투자’가 아니라, 실제 성과를 검증하는 구조다.

영국 정부는 사회성과연계채권을 활용해 피터버러 교도소 재소자들의 재범률을 낮추는 프로젝트를 시행해 재범률을 9.7% 낮추는 성과를 냈다. /영국형사사법협동검사부(CJJI)

대표적으로 2010년 영국 정부는 세계 최초로 ‘사회성과연계채권(SIB)’을 도입해 피터버러 교도소 재소자의 재범률을 낮추는 프로젝트를 시행했다. 민간 투자자들이 복귀 지원 프로그램에 자금을 투입하고, 재범률이 10% 이상 감소하면 정부가 성과 기반 수익을 지급하는 구조였다. 2017년 프로젝트 종료 시 재범률이 9.7% 줄어들며 목표에 근접, 투자자들은 약정된 보상을 받았다.

세계은행(World Bank) 역시 2003년 ‘GPOBA(Global Partnership on Output-Based Aid)’를 설립해 성과 기반 보상을 적용한 프로젝트를 운영했다. 예시로 케냐에서는 빈곤층이 깨끗한 식수를 이용할 수 있도록 수도 공급업체가 네트워크를 확장하면 성과에 따라 보상을 지급했다. 우간다에서는 전력망이 없는 지역에 태양광과 소규모 전력망을 설치하는 사업을 진행해 3만 가구 이상이 전기를 사용할 수 있었다.

세계은행은 수도 공급업체에게 성과 기반 보상을 적용해 케냐 빈곤층의 깨끗한 식수 접근성을 높였다. /세계은행

최근 등장한 ‘임팩트연계금융(Impact-Linked Finance)’은 시장 기반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기존 금융 모델이 투자자에게 보상을 지급하는 구조였다면, 임팩트연계금융은 기업의 사회적 성과에 따라 직접 보상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2024년 기준 총 350억 달러(한화 약 46조 원)가 조달됐으며, 향후 정부 보조금 등 공공재정을 대체하는 방식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기업이 주도하는 사회적 가치 시장 실험

민간 기업이 주도하는 사회적 가치 성과 보상 체계도 있다. SK그룹과 사회적가치연구원은 2015년부터 사회성과인센티브(이하 SPC, Social Progress Credits)를 통해 사회적 가치를 시장에서 평가하고 거래할 수 있는 모델을 실험 중이다.

SPC는 사회적 기업이 창출한 가치를 화폐 단위로 측정하고, 이에 비례한 현금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현재까지 448개 기업이 참여해 9년 동안 총 715억 원의 인센티브를 지급받았다. 해당 기업들이 창출한 사회적 가치는 5000억 원을 넘어선다.

현재 SPC는 SK그룹이 지원하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사회적 가치를 사고팔 수 있는 시장을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최승주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SPC를 통해 사회적 가치의 화폐화와 보상 체계가 정립되면, 시장 참여자들의 행동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며 “투자자들도 사회성과 측정을 통해 경제적 수익과 사회적 가치를 균형 있게 고려할 수 있다”고 짚었다.

독일의 SAP는 임팩트 거래 플랫폼 CGM에서 사회적 가치를 블록체인으로 구매해 이를 자사 SDGs 성과에 포함했다. CGM의 운영 방식. /CGM 백서

사회적 가치 거래 실험은 해외에서도 진행 중이다. 독일 IT 기업 SAP은 ‘CGM(Common Good Marketplace)’이라는 플랫폼에서 사회적 가치를 블록체인 기반 토큰화 기술을 통해 거래하고, 이를 자사의 UN 지속가능발전목표(UN SDGs) 성과에 포함시키는 구조다.

SAP는 아프리카와 중남미 지역 청소년에게 코딩 및 ICT 교육을 제공하는 프로젝트인 ‘아프리카 코드 위크(Africa Code Week)’의 사회적 가치를 CGM을 활용해 정량적으로 평가했다. CGM은 프로그램 참가자들의 미래 소득 증가 가능성 등을 분석해 2015년부터 2022년까지 프로젝트가 창출한 사회적 가치를 최대 10억 달러(한화 약 1조 3600억 원)로 추정했다.

사회적 가치도 돈이 되는 시대, 무엇이 달라질까

사회적 가치가 거래되면 기업에겐 어떤 효과가 있을까. 임가영 사회적가치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기존 CSR이나 ESG 비용이 실제로 얼마나 효과적인지 측정하기 어려웠지만, 사회적 가치를 경제적으로 평가하고 비교할 수 있다면 기업이 ESG 경영을 비즈니스 모델로 연결해 장기적 성장을 추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검증된 사회적 가치 창출 사업에 지속적으로 자금이 흘러들어갈 수 있으며, 일부 기업들은 비즈니스 모델 자체를 사회적 가치 중심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기업뿐만 아니라 정부 역시 이러한 변화의 영향을 받는다. 현재 한국의 임팩트 생태계는 정부 보조금 중심으로 운영되며, 자금 조달의 비효율성이 지적되고 있다. 하지만 사회적 가치를 경제 시스템에 편입하면, 정부의 재정 부담을 줄이고 시장 논리를 통해 보다 효율적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반도 마련될 수 있다.

홍순만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사회적 가치가 경제적 가치를 인정받고 시장에서 거래될 수 있다면, 정부의 개입 없이도 시장이 자체적으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한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그는 “이러한 시장화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려면, 규제와 인센티브 체계를 조화롭게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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