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혜택을 사고판다…사회적 가치의 새로운 유인 구조
정부 재정보다 효율적, 보상 받고 거래까지…美선 이미 44조 규모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돈을 벌 수 있다면, 세상은 얼마나 달라질까. 기업은 새로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움직이고, 투자자도 이익을 좇아 뛰어들 것이다.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사회문제 해결에 자발적으로 나선다면, 훨씬 더 실질적인 변화가 가능하다.
이미 탄소 감축 실적을 사고파는 ‘탄소배출권 거래 시장’은 연 1조2000억달러(한화 약 1767조원)에 이르는 거대한 시장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장애인 고용, 교육 격차 해소, 재난 대비 같은 활동은 여전히 ‘착한 일’로만 인식되고 있다. 사회적 가치를 창출한 기업에 세금 혜택을 주고, 이를 다른 기업에 팔 수 있도록 한다면 어떻게 될까.

실제로 이러한 아이디어를 구체화한 보고서가 최근 발표됐다. SK그룹 산하 사회적가치연구원(CSES)은 지난 3월 발간한 보고서 ‘기업이 사회적 가치를 제대로 보상하는 방법’에서 “세액공제권 거래는 사회적 가치 창출을 실질적 이익으로 전환해주는 유인책”이라며 “정부 재정보다 효율적인 사회문제 해결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 미비한 사회문제 해결, 기업 유인책이 필요하다
정부는 매년 천문학적 재정을 사회문제 해결에 투입하고 있다. 올해 예산만 755조원, 이는 2016년 대비 79% 증가한 금액이다. 그러나 사회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유엔이 평가한 2024년 한국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달성 수준은 49.3%로, 1년 전보다 오히려 3% 떨어졌다. SDG 이행 순위도 2016년 27위에서 2024년 33위로 밀려났다.
특히 한국은 재생에너지 비율이 3.6%에 불과해 OECD 최하위에 머물고 있고, 온실가스 배출량과 해양 쓰레기도 많은 편이다. 성별 임금 격차는 OECD 1위다.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한 가운데, 정부 혼자서 감당하기는 어렵다. 기업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유인책은 부족하다. 정부 예산 중 최대 43%가 기업이 복지·고용, 환경 등 같은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투입한 비용을 보상하는데 쓰이고 있다. 그 예로 고용촉진장려금이나 신재생에너지 기업 융자 지원 등이 있지만, 기업들의 반응은 여전히 미지근하다. 2024년 기준 100대 기업의 사회공헌 지출은 전년 대비 40% 줄어든 1조1577억원. 전체 매출 대비 0.12%에 불과한 수준이다.
왜 기업들이 사회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지 않을까. 이유는 단순하다. 정부가 보상을 해준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기업의 실질적 이익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적 가치 창출이 곧 기업의 이익이 된다는 확신이 없다면 기업은 움직이지 않는다. 이 확신을 가능하게 할 가장 현실적인 해법이 바로 ‘시장 거래’다. 기업이 사회문제를 해결해 얻은 보상을 주식처럼 사고팔 수 있는 구조만 갖춰진다면, 착한 행동이 곧 수익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만들어질 수 있다.
사회적가치연구원은 정부의 다양한 보상 방식 가운데 ‘거래 가능한 세액공제’에 주목하고 있다. 보조금과 달리 세액공제는 정부의 개입이 적어 기업의 자율성을 해치지 않는다. 또한 성과에 따라 사후 보상하는 구조라 사회적 가치 창출에 대한 동기를 유발에도 효과적이다.
하지만 현행 제도 아래에서는 적자 기업이나 중소기업들이 실질적인 혜택을 누리기 어렵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는 세액공제를 사용할 수 없어, 이월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당장의 인센티브로 작용하기엔 역부족이다. 실제로 2023년 삼성전자도 영업손실 탓에 6조3393억원 규모의 세액공제를 사용하지 못했다.
보고서에서는 이 같은 ‘시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세액공제권 거래’를 제안한다. 사회문제를 해결해 세액공제를 확보한 기업이, 해당 혜택을 당장 세금이 필요한 다른 기업에 판매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사회적 가치 창출과 기업 경영의 효율화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세액공제는 직접 세금감면 방식 중에서도 활용도가 높다. 전체 항목 중 68%가 기업을 대상으로 설계돼 있고, 직접 감면 제도 중에서도 28%를 차지해 시장을 형성할 수 있을 만큼 규모도 크다. 감면이 불가능한 경우에도 최대 10년까지 이월이 가능해 거래 대상으로서의 실효성도 충분하다는 평가다.
◇ 미국은 이미 현실…거래규모 44조 돌파
미국에서는 이미 2022년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이후 친환경 세액공제를 제3자에게 양도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꿨다. 2023년에는 태양광업체 퍼스트솔라(First Solar)가 핀테크 기업 파이서브(Fiserv)에 약 7억 달러(한화 약 1조원)의 세액공제를 넘기고, 평소보다 12~18개월 빠르게 자금을 확보했다. 그 자금은 설비 확장에 쓰였고, 퍼스트솔라의 기업가치는 30% 상승했다. 파이서브는 세금 부담을 줄이면서도 친환경 산업에 간접 투자한 효과를 누렸다.
LG도 미국에서 6768억원 상당의 세액공제를 판매해 2024년 상반기 영업이익으로 반영했다. 미국 세액공제 거래 규모는 1년 새 3배 이상 늘어 300억 달러(한화 약 44조원)를 넘었으며, 향후 10년간 IRA 세액공제권 거래가 7400억 달러(한화 약 1089조원) 규모로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 같은 세액공제 거래는 친환경 투자 확대와 함께 고용 및 소득 증가로 이어지며, 3조 달러(한화 약 4415조원)의 경제 성장과 에너지 비용 절감이라는 실질적 성과로 연결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가 사회적 가치를 창출한 기업에 ‘세액공제권’을 지급하고, 이를 제3자가 거래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은 미국 IRA의 세액공제 양도제도와 유사하다. 다만 보고서에서는 거래 대상을 1대1로 제한하지 않고, 시장 참여자들이 사고팔 수 있도록 설계해 범위를 넓혔다. 사회적 가치를 만든 기업은 미래 세금 감면 혜택을 할인된 가격에 미리 팔 수 있고, 구매 기업은 세제 혜택과 함께 사회문제 해결에 간접적으로 기여하는 효과를 얻는다. 사회적가치연구원은 이 같은 거래 시스템을 ‘사회적 가치 세액공제 거래제도(Social Value Transferable Tax Credit·이하 SV TTC)’로 명명하고, 새로운 사회적 가치 보상 모델로 제안한다.
◇ 한국형 세액공제 거래, 어디부터 시작해야 하나
제도만 만든다고 시장이 바로 돌아가진 않는다. 수요와 공급이 제대로 맞물려야 시장은 굴러간다. 실제로 한국의 탄소배출권 시장은 배출 허용량이 지나치게 높고, 정부 정책도 자주 바뀌면서 수급이 불안정해졌다. 그 결과 현재 배출권 가격은 2019년 대비 4분의 1 수준으로 추락했다. SV TTC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공급자와 수요자가 안정적으로 거래할 수 있는 기반부터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규안 숭실대 회계학과 교수는 “SV TTC는 반도체 같은 국가 전략산업처럼 일부 분야에 한해 단계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세액공제는 정부 세수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효과를 측정하고 점검하며 제도를 정비해 나가야 한다는 취지다.
조희진 사회적가치연구원 SV거래화연구팀장도 “세액공제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분야부터 SV TTC를 시범 적용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현재 세액공제를 통해 기업의 사회적 가치 창출을 지원하는 분야는 고용, 상생협력, 시설투자, 연구개발(R&D) 등이다.
특히 통합투자세액공제의 경우 2024년 기준 미사용 금액만 3조9430억 원에 이른다. 조 팀장은 “에너지 절감시설이나 안전설비 투자는 사회적 가치와의 연관성이 높고 최근 사회적 이슈와도 맞닿아 있는 만큼 우선적으로 시범사업을 적용하기 적합하다”고 말했다.
홍병진 한국조세재정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세액공제 혜택을 줄 수 있는 사회적 가치 항목의 범위를 먼저 합의하고, 명확히 정할 필요가 있다”며 “정부가 주도적으로 플랫폼을 구축해 세액공제권의 양도와 이전을 쉽게 만들고, 기록 관리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