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팩트 현장을 읽다] 아시아 기업사회공헌, 임팩트 중심으로 재편되다

신현상 한양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최근 기업의 전략적 사회공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와 함께 기업사회공헌 담당자들의 고민 역시 깊어지고 있으며, 과감하고 혁신적인 실험을 통해 얻어지는 우수사례 발굴의 필요성 역시 커지고 있다.

20세기 경영·경제학의 지배적 패러다임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바탕으로 한 주주이익 극대화”라는 소위 ‘프리드만(Friedman) 독트린’이었다. 1970년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글에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밀턴 프리드만은 기업의 사회적 가치 창출 노력은 대리인 문제(Agency Problem)에 해당하며, 전문경영자가 주주의 재산으로 사회공헌 활동을 하는 것은 부적절할 뿐 아니라 배임 가능성까지 내포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기업의 사회적 가치 창출이 장기적으로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간과한다. 특히 2019년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에서 아마존·애플 등 글로벌 대표 기업들이 ‘이해관계자 중시 경영’을 공식 선언한 흐름을 감안하면, 프리드만식 관점은 시대 변화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힘을 얻고 있다.

반면 1984년 버지니아대 프리먼(Freeman) 교수는 기업과 사회를 명확히 나누는 이분법을 비판하며, 기업은 반드시 이해관계자를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캐롤의 피라미드(Carrol’s Pyramid)’로 상징되는 전통적 CSR은 기업의 사회적 가치 창출을 ‘의무’의 영역으로 본다. 경제적·법적·윤리적·자선적 의무를 다해야 하며, 특히 자선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이 ‘좋은 기업시민’이 된다는 관점이다. 하지만 이는 자칫 일회성·시혜적 활동에 머물 위험이 있고, 이해관계자 범위가 크게 확장된 오늘날에는 기업이 어떤 기준으로 활동을 결정해야 하는지 모호해진다는 한계가 제기돼 왔다.

◇ 전략적 CSR의 부상…임팩트 지향형 모델로 진화하다

21세기 들어 주목받은 전략적 CSR은 사회공헌 활동이 주주가치 극대화와 충돌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뉴욕대 라구비어(Raghubir) 교수 연구팀은 CSR을 잘 수행할 경우 고객 획득·유지, 우수 인재 확보, 비용 절감 등 다양한 경로로 기업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으며, 좋은 평판은 기업 위기 시 ‘보험’ 역할을 한다고 분석했다. 하버드대 마이클 포터(Porter) 교수의 CSV(Creating Shared Value) 프레임워크 역시 비즈니스 전략에 사회적 가치를 통합해 경제적·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만들어낼 수 있다고 강조한다. 기업의 핵심역량과 가치사슬, 파트너십을 활용하면 경쟁우위와 지속가능성 확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다만 전략적 CSR은 ‘진정성’ 논란에 휘말릴 위험도 있다. 기업 사회공헌 사업의 스크리닝 기준에 재무적 이익이 개입하면 의사결정이 왜곡될 수 있고, 기술 발전으로 정보 접근성이 높아지면서 소비자들이 기업의 계산적 의도를 빠르게 파악해 반감을 가질 가능성도 커졌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부상한 것이 ‘임팩트 지향형 전략적 사회공헌’이다. 미네소타대 루오(Luo) 교수와 카울(Kaul) 교수는 기업의 핵심역량과 혁신 역량을 활용해 비영리·사회적기업·정부·공공기관 등과 협력할 때 사회문제 해결의 효율성과 효과성을 동시에 끌어올릴 수 있다고 제시했다.

최근 이코노미스트 그룹 산하 ‘이코노미스트 임팩트(Economist Impact)’ 보고서도 이러한 흐름을 뒷받침한다. 보고서는 아시아 지역에서 임팩트 지향형 전략적 사회공헌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압축 성장 과정에서 누적된 사회문제로 기업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젊은 인구·디지털 인프라·가치 소비의 확대 등으로 아시아가 ‘사회공헌 혁신 실험의 플랫폼’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아시아의 기업 사회공헌이 다섯 가지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정리한다. 첫째, 기부·후원 중심에서 고객, 소비자, 임직원, 시민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참여 구조로 확장되고 있으며, 둘째, 공시 및 평가 대응 중심 ESG에서 중장기 비즈니스 기회를 여는 전략적 투자 모델로 옮겨가고 있다. 셋째, 단순한 재정 지원을 넘어 기술·인재·인프라·IP 등 기업의 핵심역량을 사회문제 해결에 활용하고 있으며, 넷째, 단기 프로젝트에서 벗어나 컬렉티브 임팩트, 생태계 접근 방식 등 거시적 관점의 파트너십이 중시되고 있다. 다섯째, 정성적 보고에서 정량 기반 평가로 옮겨가며, 사회성과와 재무성과를 동시에 측정·공개하는 흐름이 강화되고 있다.

◇ 스마일게이트 사례가 보여준 ‘K-기업사회공헌’의 가능성

동시에 보고서는 사회혁신 활동이 비즈니스 혁신으로 이어지는 ‘상호강화구조(mutually reinforcing loop)’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인도의 타타그룹, 싱가포르의 DBS재단 등과 함께 한국의 스마일게이트를 대표적인 임팩트 지향형 전략적 사회공헌 사례로 소개하고 있다.

스마일게이트는 게임 플랫폼과 팬 커뮤니티라는 자사 핵심역량을 활용해 ‘참여 기반 임팩트 모델’을 구축했다. 타 게임사와 협업해 공동 IP 수익으로 해커톤·교육 챌린지를 열고, 취약계층 아동에게 AI·코딩 교육을 제공했다. 이는 개인 역량 향상뿐 아니라 미래 기술 인재와 잠재 고객 기반을 동시에 확장하는 전략적 효과를 낳았다. 또한 기부 플랫폼 ‘희망스튜디오’를 운영하며 온라인 커뮤니티 기반 모금을 가능하게 했고, 게이미피케이션 요소를 적용해 기부자가 랭킹·업적 달성 등의 보상을 경험하도록 설계했다.

그 결과 2017~2022년 115개 기부 캠페인, 60여 개 인게임 협업, 5100만 명의 유저 참여가 이뤄졌다. 2024년 한 해에만 희망스튜디오 플랫폼에서 1만9000건의 기부·봉사가 발생했으며, 2020~2024년 누적 기부액은 60억 원에 달한다. 스마일하우스 프로그램을 통해서는 711명 아동에게 보호 주거·치료를 제공했고, 팔레트 커뮤니티 아동들의 회복탄력성은 83% 향상됐다.

동시에 스마일게이트의 전략적 사회공헌 활동은 명확한 비즈니스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참여 게임 스튜디오의 신규 유입은 92% 증가했고, 유저의 93%는 기업과 게임에 대해 더 긍정적 이미지를 갖게 됐다. 팬덤 기반 참여 구조는 장기 고객 충성도를 높이고, 브랜드 신뢰도와 산업 내 네트워크 확장에도 기여했다. 이는 단순 이미지 제고가 아니라 지속가능경영 전략과 장기 사업모델의 한 축으로 기능하며, UN SDGs 정렬과 글로벌 ESG 요구에도 대응하는 효과를 냈다.

특히 게임·콘텐츠 산업은 핵심 이해관계자인 유저와 커뮤니티가 긴밀히 연결된 분야이기 때문에, 포용적 기술·콘텐츠·비즈니스 파트너십을 활용하면 더 큰 임팩트를 만들 가능성이 높다. 스마일게이트 사례는 기업의 고유 역량을 활용한 사회혁신 모델을 통해, 사회적 가치 창출이 기업가치와 산업 생태계 강화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 기업이 더 이상 해외 사례를 단순히 수입하는 수준이 아니라, ‘K-기업사회공헌’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앞으로 한국 기업들이 사회문제 해결과 재무성과라는 두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며 포용적 혁신과 지속가능 성장을 이끌어가길 기대한다. 이를 위해서는 더 많은 베스트 프랙티스가 발굴·공유되고, 연구자와 실무자가 초학제적(Transdisciplinary Knowledge) 지식을 함께 축적할 수 있는 학습 생태계가 강화돼야 할 것이다.

신현상 한양대학교 경영대학 교수·임팩트리서치랩 C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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