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와 사회를 잇는 방식] 탄소감축량보다 중요한 질문

이현승 굿네이버스 글로벌임팩트 국제감축사업본부장

우간다, 탄자니아, 말라위, 케냐 등 여러 아프리카 국가에서 국제감축사업 타당성조사를 수행하며 종종 흥미로운 장면을 마주하게 된다. 정부는 탄소사업을 새로운 투자 유치 기회로 바라보고, 기업과 투자자는 탄소감축량과 사업성을 검토한다. 국제사회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더 많은 민간자본과 혼합금융(Blended Finance)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정작 지역주민들이 바라보는 탄소사업은 조금 다르다. 주민들에게 바이오가스나 청정조리기기 사업은 탄소배출 감축보다도 매일 반복되는 땔감 수집 노동을 줄이고, 숯과 연료 구매 비용을 아껴 가처분 소득을 늘릴 수 있는 현실적인 생계 문제에 더 가깝다. 특히 농촌 지역 여성들과 아이들에게 연료를 구하기 위해 이동하는 시간과 노동은 단순한 불편을 넘어 교육과 생계, 건강 문제와도 연결된다.

흥미로운 점은 많은 지역 주민이 이미 ‘카본(Carbon)’이라는 단어를 익숙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몇 해 전만 하더라도 탄소시장은 국제회의와 보고서 속 이야기처럼 느껴졌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이미 여러 해외기관과 기업, 개발기관들이 경제성 분석과 타당성조사를 위해 반복적으로 지역사회와 마을을 방문해 왔다.

어떤 주민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예전에도 비슷한 조사를 하러 왔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업은 결국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탄소시장은 미래를 이야기하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수많은 ‘가능성’과 ‘검토’만 반복된 채 설명회와 인터뷰, 그리고 끝내 실행되지 못한 프로젝트들에 대한 기억이 쌓여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물론 이러한 반복된 조사와 검토 과정 자체를 단순히 비효율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국제감축사업은 감축량 산정뿐 아니라 기술적 타당성, 관련 법과 정책 리스크, 주민 수용성, 장기 운영 가능성, 그리고 투자 회수 구조까지 함께 검토해야 하는 복합적인 사업이기 때문이다. 특히 민간자본은 사업의 안정성과 수익 구조에 매우 민감하다. 결국 신뢰할 수 있는 고품질 탄소사업을 만들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을 들여 타당성조사와 검증을 수행할 수밖에 없다.

최근 글로벌 탄소감축 목표와 기업의 ESG, 넷제로 요구가 강화되면서 배출권 수요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실제 시장에서는 신뢰할 수 있는 감축사업 공급이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결국 국제감축사업은 개도국에는 새로운 투자와 에너지 전환의 기회가 되고, 선진국과 기업에는 현실적인 감축 수단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여러 개도국 정부도 탄소사업을 단순한 환경사업이 아니라 국제 투자 유치와 국가 개발 전략의 일부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모든 탄소사업을 단순한 그린워싱으로만 바라보는 시각 역시 현실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물론 시장에는 품질이 낮거나 보여주기식 사업도 존재하지만 동시에 지역사회 에너지 접근성 개선과 산림 보전, 농업생산성 증가, 생활비 절감, 여성 노동 감소와 같은 실질적 변화를 만들어내는 사업들도 분명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탄소사업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더 신뢰 가능하고 지속가능한 구조로 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일 것이다.

일반 탄소사업 개발사보다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탄소사업을 개발하고 수행하는 데 있어 NGO의 역할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국제개발 NGO의 기부금과 공공재원은 단순한 지원금 이상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초기 사업 리스크가 큰 단계에서 주민 협의와 현장 조사, 시범사업 등을 가능하게 하며 민간투자가 진입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마중물 자본’ 역할에 가깝다. 또한 일반 탄소사업 개발사와 달리 열악한 개도국 현지 상황에서도 사업을 포기하지 않고 사업의 지속성을 확보하려는 끈기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단순히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사업 종료 이후에도 주민들이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유지관리 체계가 존재하는지, 지역사회가 사업 구조를 이해하고 스스로 운영할 수 있는지, 탄소수익이 다시 지역사회 안으로 순환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져 있는지까지 함께 고려돼야 한다.

문제는 결국 사람과 구조를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에 있다. 현지 정부는 투자와 외화를 기대하고, 기업은 감축실적과 배출권 확보를 고민하며, 투자자는 사업의 수익성과 리스크를 검토한다. 반면 지역주민들은 삶의 비용이 실제로 줄어드는지, 그리고 사업이 자신들의 일상에서 오래 유지될 수 있는지를 먼저 바라본다.

현장에서 주민들이 가장 자주 묻는 질문 역시 탄소배출량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이 사업이 끝난 뒤에도 우리는 계속 사용할 수 있습니까?”

이 질문에는 사업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가장 본질적인 고민이 담겨 있다. 유지관리 비용은 어떻게 되는지, 고장이 나면 누가 책임지는지, 실제로 삶이 나아질 수 있는지 말이다. 어쩌면 주민들은 이미 수많은 프로젝트를 경험하며 어떤 사업이 오래 지속되고 어떤 사업이 사라지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결국 좋은 탄소사업은 단순한 기술사업이나 금융사업에 머무르지 않는다. 정부와 기업, 투자자와 지역사회라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 속에서 신뢰를 기반으로 장기적인 행동 변화를 만들어내야 하는 다층적 사회 구조에 더 가깝다.

NGO는 일반 민간기업이 쉽게 진입하지 못하는 개도국 지역사회와 가장 가까이에서 주민들의 삶과 행동 변화를 오랫동안 관찰해 온 조직이며, 정부와 기업, 투자자와 지역사회의 서로 다른 언어와 기대를 연결할 수 있는 드문 위치에 있다.

기후위기 대응은 결국 탄소를 줄이는 문제이면서 동시에 사람의 삶을 변화시키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앞으로의 국제감축사업은 더 많은 탄소감축량을 만드는 경쟁을 넘어, 지역사회와 얼마나 함께 설계되고 지속될 수 있는가를 중심으로 진화해야 한다.

이현승 굿네이버스 글로벌임팩트 국제감축사업본부장

필자 소개

굿네이버스 글로벌임팩트에서 국제감축사업을 총괄하고 있습니다. 비영리 영역에서 20여 년간 모금과 사업개발을 수행하며, 국내 최초로 가상자산 기부 도입 체계를 구축하는 등 재원 혁신을 이끌어 왔습니다. 현재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탄소감축사업과 탄소시장을 기반으로 ODA와 민간투자를 연결하는 PPP 구조의 기후사업을 설계·추진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자원의 흐름을 연결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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