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팩트 투자를 묻다] 허재형 루트임팩트 이사장
자본만으로는 부족…임팩트 조직의 역량 키울 생태계 필요
“루트임팩트가 투자하면서 회수하고자 하는 것은 재무적 이익이 아니라 조직의 자생력과 지속가능한 임팩트입니다.”
지난 13일 서울 성동구 헤이그라운드에서 만난 허재형 루트임팩트 이사장은 루트임팩트의 지원 방식을 이같이 설명했다. 루트임팩트가 말하는 ‘투자’는 지분이나 원금을 회수하는 금융 투자가 아니라, 조직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자금과 전문성을 장기간 투입하는 방식이다. 2012년 루트임팩트를 공동 창립한 허 이사장은 지난 6월 대표직에서 물러나 현재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에서 ‘임팩트 투자’는 주로 사회문제 해결 기업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털(VC)을 떠올린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는 ESG 리스크를 고려하는 책임투자부터 사회적 성과를 우선시하는 투자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벤처 투자 기법을 활용해 재정적·비재정적 지원을 제공하는 ‘벤처 필란트로피(Venture Philanthropy)’ 역시 임팩트 지향 자본의 한 축이다.
허 이사장은 루트임팩트의 지원 방식이 벤처 필란트로피와 맞닿아 있다고 설명했다. 일반 투자처럼 대상 조직의 역량을 실사하고, 선정 이후 성장 과정을 포트폴리오처럼 관리한다. 루트임팩트 역시 초기인 2013~2014년에는 직접 투자와 액셀러레이팅을 진행했다. 그러나 생태계의 ‘빈 곳’을 고민한 끝에, 다음 단계의 자본으로 이어지게 돕는 마중물이 되는 것이 최선의 역할이라 판단했다.
그는 “재무적 수익이라는 지표가 없기에 오직 임팩트로 성과를 증명해야 하는, 어떤 면에서는 가장 엄격한 투자”라고 말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비영리조직 성장 지원 프로그램 ‘IP1’을 통해 최대 3년간 3억 원의 자금과 맞춤형 역량을 지원받고 ‘졸업’한 뉴웨이즈(젊은 정치인의 성장을 돕는 단체)다. IP1 지원 이후 뉴웨이즈는 조직 규모가 2명에서 8명으로 늘었고, 월 정기후원금은 1400만 원 규모로 성장했다. 올해는 약 100만 달러(약 15억 원) 규모의 해외 펀딩을 유치했다. 허 이사장은 이를 “VC의 ‘엑싯(Exit)’을 필란트로피 방식으로 구현한 것”이라고 표현했다.
◇ 자본의 연결을 만드는 건 다양한 중간지원조직
허 이사장은 국내에서는 필란트로피와 공공자금, 임팩트 투자 등 성격이 다른 자본을 조직의 성장 단계에 맞춰 연계하는 체계가 아직 부족하다고 짚었다. 이에 따라 조직이 필요한 자본과 지원 사업을 직접 찾아 연결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교육 솔루션 기업 에누마가 대표적이다. 에누마는 벤처투자를 비롯해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혁신적 기술 프로그램(CTS), 국제 경연대회인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XPRIZE) 상금 등 서로 다른 자본을 활용하며 성장했다.

그는 “앞으로는 개별 조직이 자본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생태계 차원에서 더 체계적으로 연결해야 한다”며 “서로 다른 자본의 이어달리기를 설계하거나 혼합금융을 조율할 중간조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 생태계의 성숙을 위해 더 많은 자본만큼이나 ‘다양한 플레이어’가 필요하다며 ▲임팩트 도매기금(안정적 자본 공급) ▲분야별 전문 중간지원조직(정확한 자본 배치) ▲리그랜터(자본의 전략적 재배분)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임팩트 도매기금은 영국의 빅소사이어티캐피털처럼 여러 임팩트 투자기관과 운용사에 자본을 공급해 시장 전체의 자금 기반을 키우는 역할을 한다. 분야별 전문 중간지원조직은 기후와 교육, 지역 등 특정 의제의 정책과 이해관계자, 자본 흐름에 관한 전문성을 토대로 적합한 조직에 자원이 투입되도록 돕는다. 리그랜터는 여러 재단과 기부자의 자금을 모아 현장 조직에 전략적으로 재배분함으로써 필란트로피 자본의 전문성과 효율성을 높인다.
허 이사장은 “도매기금은 생태계에 흐르는 자본의 규모를 키우고, 분야별 전문 조직은 자본이 더 정확한 곳에 쓰이도록 한다”며 “리그랜터는 기부자와 현장 조직 사이의 정보 격차를 줄여 자본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자본뿐 아니라 사람과 전문성도 연결해야
허 이사장이 꼽는 생태계의 핵심 키워드는 ‘연결’이다. 그는 리더, 전문가, 자본 공급자를 잇는 구조가 뒷받침돼야 임팩트 기업도 지속 성장할 수 있다고 밝혔다. 우선 비슷한 고민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리더 간의 연결이 필요하다. 루트임팩트의 ‘헤이리더스’ 프로그램처럼 먼저 그 길을 걸어본 사람들의 경험을 듣는 것 자체가 조직의 성장 기반이 된다.
또한 임팩트 측정, 모금, 인사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한 팀처럼 협력할 때 시너지가 나는 전문가 연계도 중요하다. 나아가 기부자, 재단, 공공, 투자사가 조직 성장 단계에 맞춰 역할을 분담하는 자본의 협력까지 유기적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는 생태계를 하나의 뿌리를 공유하는 사시나무 군락 ‘판도(Pando)’에 비유하며, 판도가 8만 년을 버틴 힘은 개별 나무가 아니라 연결 구조라고 강조했다. 생태계 역시 개별 조직의 역량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연결이 지속가능성을 만든다는 의미다. 이러한 연결은 국경을 넘어 글로벌 레퍼런스와 자본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폭넓게 확장돼야 한다는 점도 덧붙였다.
◇ 전문성은 개인이 아니라 생태계에 쌓여야
국내 임팩트 투자 생태계가 풀어야 할 또 다른 과제는 전문성의 축적이다. 임팩트 투자가 실행부터 회수까지 한 사이클을 경험하는 데는 통상 8~10년이 걸린다. 사회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는 데는 이보다 더 긴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투자와 회수, 임팩트 검증의 전 과정을 경험한 전문 인력은 국내에 아직 많지 않다.
허 이사장은 시장의 부침에 따라 인력이 이탈하면서 개인이 쌓은 경험이 조직과 생태계의 자산으로 축적되지 못하는 문제가 반복된다고 진단했다.
그는 “시장 규모가 작다 보니 임팩트 금융 분야에서 장기적인 커리어 경로가 잘 보이지 않는다”며 “‘좋은 일을 하니 보상은 조금 적어도 된다’는 이른바 ‘미션 디스카운트’도 전문 인력이 생태계에 남기 어려운 요인”이라고 말했다.
루트임팩트가 운영한 ‘임팩트 커리어 실험실’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임팩트 금융에 관심 있는 인재가 관련 직무를 직접 경험하며 진입 가능성을 탐색하도록 한 프로그램이다.
허 이사장은 “인재가 없는 것이 아니라 이 직무를 안전하게 경험해볼 입구가 부족했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이러한 입구를 개별 운용사가 각각 만드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생태계 차원의 공동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조직의 조건으로 ▲명확한 전략 ▲사람을 성장시키는 조직문화 ▲임팩트 관리 역량을 꼽았다. 조직이 커질수록 창업가 개인의 의지에 의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조직 차원의 경영 역량을 갖춰야 한다는 설명이다.
“좋은 창업가가 항상 좋은 경영자인 것은 아닙니다. 조직이 성장할수록 리더도 함께 성장해야 합니다. 잘 변하지 않는 미션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되, 환경 변화에는 유연하게 적응하는 조직이 결국 오래 살아남고 더 큰 임팩트를 만듭니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