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팩트 투자를 묻다]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
AI 시대 쏠린 기후테크 투자, 혁신 발굴하고 키워야
“투자 시장이 심각하게 양극화됐습니다. 기후 투자도 마찬가지죠. 이럴수록 선명함을 유지하며 휩쓸리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난 3일 서울 강남구에서 만난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는 오늘날의 기후테크 투자 시장을 이렇게 진단했다. 그는 기후위기와 기술 혁신이 산업 지형을 바꾸는 시대일수록 임팩트 투자 역시 본질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8년 설립된 소풍벤처스는 국내 최초의 임팩트 투자사다. 지금까지 166개 기업에 2조1700억 원을 누적 투자했으며, 특히 기후테크 분야에 꾸준히 자본을 공급해 왔다.
한 대표는 “소풍벤처스는 회사의 미션 자체가 기후와 환경에 맞춰져 있다”며 “전체 투자 건수의 약 40%, 투자 금액의 약 60%가 기후테크 분야이고, 최근 3~4년으로 범위를 좁히면 투자 건수의 절반 이상이 기후테크 분야”라고 설명했다. 대표 투자 기업으로는 플라스틱 재활용 기술을 개발하는 리플라와 분산형 재생에너지 관리 솔루션 기업 식스티헤르츠 등이 있다.
기후를 핵심 투자 분야로 삼은 배경도 분명했다. 한 대표는 “기후는 지금 우리가 마주한 가장 크고 시급한 과제”라며 “자본을 올바른 방향으로 흘려보내 문제 해결을 촉진하는 것이 임팩트 투자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 세계 산업 생태계 역시 기후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며 “기후 문제를 외면하고서는 기업의 재무적 지속가능성도 담보하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과거에는 기후 투자를 ‘착한 투자’ 정도로 여겼다면 이제는 가장 높은 성장성과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미래 핵심 산업에 대한 투자로 인식이 바뀌고 있다”고 덧붙였다.
문제 해결을 향한 관심은 투자자가 되기 전부터 이어져 왔다. 한 대표가 소풍벤처스에 합류한 것은 2016년이다. 그전까지는 여러 차례 소셜벤처를 창업했다. 직전에는 정보의 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플랫폼 ‘위즈돔’을 창업했고, 당시 소풍벤처스로부터 투자도 받았다.
그는 “창업자로 직접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의미 있었지만, 다양한 창업자를 지원하는 편이 더 많은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며 “창업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자본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자본을 통해 문제 해결을 돕는 임팩트 투자로 자연스럽게 관심이 이어졌다”고 이야기했다.

◇ AI가 주도하는 투자 시장…기후테크도 ‘될 곳’에만 돈 몰린다
올해 코스피 지수는 연일 신고가를 경신하고 있다. 지난 정부가 2030년까지 기후테크에 145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이후 관련 자금도 시장에 꾸준히 유입되고 있다. 그러나 한 대표는 현재의 기후테크 투자 시장을 마냥 낙관할 수는 없다고 진단했다. 시장이 커질수록 투자 양극화도 심화하고 있다는 이유다.
그 배경에는 AI 열풍과 위축된 투자 환경이 있다. 한 대표는 “최근 기후테크 투자도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를 뒷받침하는 에너지 솔루션과 열관리 기술, 에너지저장장치(ESS), 전력망 등에 집중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반 투자 시장에서 AI와 피지컬 AI 관련 기업에 자금이 쏠리는 것과 같은 흐름이다.
이러한 현상은 벤처투자 시장 전반의 분위기와도 맞닿아 있다. 그는 “벤처투자의 핵심 목표는 IPO를 통한 회수인데 올해 상반기 코스닥 상장 건수는 지난해의 절반 수준”이라며 “회수 가능성이 높은 일부 기업에만 투자자들의 관심과 자본이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기후테크 투자 역시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돈이 많이 몰리는 분야가 기후 문제를 가장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분야는 아니라고 그는 지적한다. 한 대표는 “기후테크 투자의 절반 이상이 전기차와 모빌리티 분야에 집중돼 있고, 테슬라는 가장 대표적인 기후테크 기업”이라면서도 “이들 분야가 감축할 수 있는 탄소는 전체의 10~20% 수준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이어 “기후테크의 핵심은 결국 탄소”라며 “탄소포집·활용·저장(CCUS) 기술은 탄소 감축을 위해 필요하지만, 당장 수익을 내기 어렵다는 이유로 충분한 투자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투자 사각지대는 기후 적응 분야에서도 나타난다. 기후 취약계층을 보호하거나 도시의 재난 대응 인프라를 구축하는 기술과 서비스의 필요성은 커지고 있지만, 민간 자본만으로는 시장이 형성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 대표는 “기후재난으로 인한 피해는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선뜻 돈을 내려는 민간 주체는 많지 않다”며 “기후 적응 분야는 기후테크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만큼 공공이 더 적극적으로 투자해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양극화 시대, 임팩트 투자는 ‘등대’가 돼야 한다
양극화가 심화하는 시장일수록 임팩트 투자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고 한 대표는 강조했다. 그는 “전체 투자 시장에서 대체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3~4%, 임팩트 투자는 1% 수준에 불과하다”며 “규모는 작지만 혁신자본이자 모험자본으로서 시장이 보지 못하는 가능성을 먼저 발견하고, 시장의 등대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철학은 소풍벤처스의 투자 전략에도 반영돼 있다. 한 대표는 “단기간에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기업과 시간이 걸리더라도 산업을 바꿀 혁신 기술을 가진 극초기 기업, 두 축에 선명하게 투자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투자한 나노브리지다. ‘꿈의 소재’로 불리는 그래핀을 생산하는 기업으로, AI 데이터센터용 방열 소재 등 차세대 산업에서 활용 가능성이 주목받고 있다. 한 대표는 “혁신적인 기술일수록 상용화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며 “초기 단계에서 의미 있는 규모로 투자해 창업팀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짚었다.
특정 기술이 아니라 산업 생태계 전체를 키우는 투자도 지향한다. 배터리 분야에서는 소재 개발부터 생산, 에너지 저장, 재활용까지 전 과정에 걸쳐 투자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있다.

아직 시장의 관심이 부족한 분야를 발굴하는 것도 임팩트 투자의 역할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기후 적응 분야다. 소풍벤처스는 위성 기상 데이터를 기반으로 기후 위험을 예측하는 레인버드지오에 투자했다. 남태평양과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기상 예보와 재난 예측에 활용할 수 있는 솔루션을 개발다. 한 대표는 “기후 적응 분야는 임팩트를 측정하기도 쉽지 않다”며 “그만큼 당장의 성과보다 장기적인 가능성을 보고 투자해야 하는 영역”이라고 말했다.
◇ 기후테크의 성장은 필연…사회적·경제적 가치 동시 실현이 목표
한 대표는 기후테크의 중요성이 앞으로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과거에는 AI를 활용해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AI for Climate’가 화두였다면 이제는 AI를 지속가능하게 발전시키기 위한 ‘Climate for AI’의 시대”라며 “AI 산업이 성장할수록 에너지와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기후테크의 역할도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산업과 환경의 공존이라는 목표는 같지만, 이를 실현하는 경로는 달라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기후위기는 투자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한 대표는 “기후 문제는 어느 한 주체가 단독으로 해결할 수 없다”며 “정부가 역할을 해야 하는 영역도 많고, 기후테크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정책과 규제, 산업 생태계가 함께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사회 전체가 함께 움직여야 하는 총력전의 시기”라고 덧붙였다.
문제의식은 투자에만 머물지 않았다. 소풍벤처스는 올해 자체 뉴스룸을 열고 기후와 기후테 담론을 공유하며 사회적 논의를 확산하는 활동도 시작했다.
이런 환경에서도 임팩트 투자가 해야 할 역할은 분명하다. 한 대표는 “임팩트 투자는 많이 알려졌지만 여전히 사회적 가치와 재무적 수익을 상충하는 것으로 보는 시각이 남아 있다”며 “가장 좋은 투자는 사회적 가치와 재무적 성과를 동시에 창출하는 것이고, 그런 성공 사례를 하나씩 만드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어 “소풍벤처스가 투자한 기업 가운데 글로벌 시장에서 의미 있는 임팩트를 만들어내는 기업이 나오는 것이 가장 큰 목표”라고 밝혔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