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해서 기억 안 나요”…굿즈의 차별화는 가능한가 [굿즈의 시대, 기부를 다시 묻다]

7개 NGO 굿즈 이미지, 응답 43% “단체 유추 못 해”정체성·메시지 담은 전략 필요 ‘굿 굿즈’가 쏟아지고 있다. 팔찌, 반지, 목걸이…이제 액세서리는 NGO 캠페인의 얼굴이자 유인 장치가 됐다. 하지만 상당수의 시민들은 이 굿즈들을 구분하지 못했다. 상품은 눈에 띄었지만, 브랜드는 남지 않았다. <더나은미래>는 공익 싱크탱크 그룹 ‘더미래솔루션랩’과 함께 설문조사 플랫폼 ‘틸리언프로’를 통해 시민 1014명에게 7개 기관(▲월드비전 ▲굿네이버스 ▲유니세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세이브더칠드런 ▲밀알복지재단 ▲희망친구 기아대책)의 실제 SNS용 굿즈 홍보 이미지를 기관명을 가린 채 보여주고 반응을 조사했다. 응답자 10명 중 4명(37.6%)이 “기부(캠페인)보다는 상품 광고 같다”고 답했다. “디자인은 예쁘지만 어떤 활동인지 알기 어렵다(32.7%)”, “모두 비슷비슷해 보인다(32.1%)”는 응답도 뒤를 이었다. ‘어느 단체의 캠페인인지 유추 가능했느냐’는 질문에는 43.4%가 “전혀 유추할 수 없었다”고 답했다. “1~2개 정도는 짐작이 갔다”는 38.6%, “절반 이상은 감이 왔다”는 12.4%, “대부분 유추 가능했다”는 5.6%에 불과했다. 굿 굿즈 SNS 이미지를 본 시민들 사이에서는 의문이 이어졌다. 한 20대 남성은 “장신구 광고처럼 보여 남성들은 후원에 관심 없을 것 같다”며 “저렇게 해서 정말 기부가 늘어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응답자는 “상품이 있으면 사람들이 정말 많이 기부할까 의구심이 들었다”고도 말했다. ◇ “팔찌를 만든다고 다 같은 팔찌는 아니다” 굿즈가 기부 캠페인의 상징이 되면서 NGO들은 ‘무엇을 만들 것인가’보다 ‘어떻게 다르게 보일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굿피플 관계자는 “기관의 정체성을 담은 굿즈 개발을 위해 내부 논의를 지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캠페인에서도 이런 변화가

1000명에게 물었다, “굿즈가 있으면 더 기부하시나요?” [굿즈의 시대, 기부를 다시 묻다]

굿즈는 기부 참여의 ‘입구’일 뿐, 결정은 결국 메시지와 신뢰응답자 절반 “굿즈와 무관”…캠페인 차별화와 투명성 기대 높았다 ‘굿즈를 주면, 기부도 따라온다.’ 이제 팔찌, 반지, 목걸이 등 액세서리를 앞세운 온라인 기부 캠페인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일명 ‘굿 굿즈(Good Goods)’는 비영리단체의 모금 전략에서 빠지지 않는 수단이 됐다. 그렇다면 시민들은 굿즈 중심의 기부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더나은미래>는 공익 싱크탱크 그룹 ‘더미래솔루션랩’과 함께 설문조사 플랫폼 ‘틸리언프로’를 통해 지난 14일부터 15일까지 전국 성인 1014명을 대상으로 ‘기부 굿즈에 대한 인식조사’를 실시했다. 조사에 따르면 시민들이 굿즈 캠페인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는 ‘굿즈에 담긴 메시지(32.4%)’였다. ‘디자인·실용성(26.8%)’, ‘기부금 사용처(25.5%)’가 뒤를 이었고, ‘브랜드 협업 여부(9.5%)’, ‘홍보에 등장한 인물(5.6%)’ 순으로 나타났다. ‘굿즈 중심의 기부 캠페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중복 응답)’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31.7%가 “사회적 가치와 상업성이 애매하게 섞여 있다”고 답했다. 이어 “특별한 감정은 없다(25.9%)”, “디자인은 좋지만 메시지가 약하다(24.4%)”, “기부를 쉽게 접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20.7%)”는 응답이 뒤따랐다. ◇ 응답자 절반 “굿즈 유무와 관계없이 기부 결정” 응답자의 43.2%는 “굿즈(답례품) 제공이 기부 참여율을 높이는 데 효과가 있다”고 봤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기부 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느냐는 물음에는 절반 이상(50.6%)이 “굿즈 유무와 무관하다”고 답했다. “굿즈가 있으면 더 기부하게 된다”는 응답은 15.6%에 그쳤다. 이수현 기부문화연구소 연구위원은 “굿즈에 대한 긍정적 인식은 있지만, 개인의 기부 결정을 직접적으로 이끄는 동기까지는 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며 “기부자 입장에서는 굿즈가 기부의 상징이기보다는

기부의 얼굴이 된 ‘굿즈’ [굿즈의 시대, 기부를 다시 묻다]

기부의 풍경이 달라졌습니다. 정기 후원과 함께 팔찌나 반지, 목걸이 등 ‘굿즈(Goods)’를 받는 방식이 보편화되며, 보이지 않던 기부는 이제 물건의 형태로 손에 잡히고 일상 속 소비와 연결되고 있습니다. 굿굿즈는 비영리단체의 주요 모금 전략으로 자리 잡았지만, ‘굿즈 없는 기부는 가능한가’, ‘기부가 소비로 인식되지는 않는가’라는 질문도 뒤따릅니다. <더나은미래>는 창간 15주년을 맞아 공익 씽크탱크 그룹 ‘더미래솔루션랩’과 함께 ‘굿 굿즈’에 대한 대국민 인식조사와 국내 대표 비영리단체 6곳(유니세프, 세이브더칠드런, 기아대책, 밀알복지재단, 굿네이버스, 굿피플) 인터뷰를 토대로 특별 기획 기사를 준비했습니다. 굿굿즈는 최선의 마케팅일까요, 아니면 다시 고민할 시점일까요. ‘더 건강한 기부문화’를 위한 다섯 편의 기획 기사를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팔찌로 시작된 기부 캠페인, 이제는 디자인 넘어 메시지를 묻는다후원 문턱은 낮췄지만, 변곡점에 섰다는 분석도 2004년, ‘노란 고무팔찌’ 하나가 전 세계 기부 문화를 바꿔놨다. 미국 리브스트롱 재단이 나이키와 함께 만든 암 환자 지원 팔찌는 출시 10년 만에 8000만 개가 팔렸다. ‘팔찌를 사면 기부가 된다’는 구조는 곧 글로벌 캠페인 공식처럼 퍼져나갔다. 국내에서는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해 제작된 ‘희움 의식팔찌’가 이 흐름을 이었다. 2012년 처음 출시된 이 팔찌는 2년 만에 11만 개 이상 판매됐다. 고무팔찌나 실팔찌처럼 단순한 물품에 메시지를 담는 것이 ‘굿 굿즈(Good Goods)’ 1.0 시대였다면, 변화는 2017년, 유니세프가 정기기부자에게 증정한 ‘호프링’에서 시작됐다. ‘FOR EVERY CHILD, HOPE’라는 문구가 새겨진 은색 반지는 단순한 기부 사은품을 넘어 주얼리와 정체성을 결합한 ‘굿 굿즈 2.0 시대’의

기업 30곳이 ‘픽한’ 국내 NGO 1순위는?…“신뢰는 기본, 전략적 제안 필요” [2025 사회공헌 리포트]

[창간 15주년 특별 기획] 국내 30대 기업 대표 사회공헌 조사 <3> “이젠 실행자가 아니라 전략 파트너”…기업의 기대도 바뀌고 있다 “협력의 이유는 신뢰, 갈등의 이유는 전략적 미스매치.”  국내 주요 기업 30곳이 말하는 기업 사회공헌 파트너십의 현주소다. <더나은미래>가 국내 30대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사회공헌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들이 가장 많이 주요 파트십 단체로 꼽은 곳은 초록우산(8곳)이었다. 이어 사회복지공동모금회(5곳), 세이브더칠드런과 굿네이버스(각 4곳) 등이 뒤를 이었다. 모두 전국 조직망을 갖춘 대형 NGO로, 규모와 브랜드 인지도, 사업 경험에서 일정 기준 이상의 역량을 갖춰 기업에 안정감을 준다는 평가다.  실제 기업들이 NGO를 선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기준은 ‘신뢰도(22곳)’와 ‘전문성(19곳)’이었다. 오랜 협력 관계(16곳)도 주요 요소로 꼽혔다. ◇ 기업, NGO에 ‘전략적 동반자’ 역할 기대  이번 조사에서 눈에 띄는 점은 기업들이 NGO에 기대하는 역할이 ‘실행’에서 ‘전략 기획’으로 확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단순한 프로그램 집행을 넘어, 사회적 가치를 함께 기획하고 설계하는 ‘공동 기획자’이자 ‘전략적 동반자’로서의 역할을 요구하는 것이다. 설문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약 61%(14곳)가 NGO에게 가장 바라는 역할로 ‘새롭고 혁신적인 사회공헌 아이디어 제안’을 꼽았다. LG이노텍 관계자는 “사회공헌 트렌드와 현장의 필요를 반영한 제안이 더 적극적으로 이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와 동일하게 ‘투명한 예산 사용과 보고 체계 구축(14곳)’도 중요한 부분으로 꼽혔다. 또한, ‘사회공헌의 정량적·정성적 성과 지표 설정 및 공개(12곳)’에 대한 요구도 컸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성과 또한 수혜자 수나 집행금액처럼 정량적으로 정리되어야 설득력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아동·청소년, 30대 기업 ‘1순위’ 주목 대상 [2025 사회공헌 리포트]

[창간 15주년 특별 기획] 국내 30대 기업 대표 사회공헌 조사 <2>기업 사회공헌 3대 과제는 경제 불평등·복지 한계·기후 위기 2025년, 국내 주요 기업들은 사회공헌의 활동으로 어떤 사회문제에 주목하고 있을까. <더나은미래>가 매출 상위 30대 기업을 대상으로 사회공헌 조사를 실시한 결과, ‘소득 양극화’, ‘복지 제도의 미비’, ‘지구온난화’가 기업들이 가장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사회문제로 나타났다. 사회문제 분류는 CSES와 연세대 공공문제연구소 정부와기업센터가 2017년 개발한 ‘신(新) 사회문제 분류체계’를 기준으로 삼았다. 응답 기업 23곳 중 절반 가까운 11곳이 ‘소득 양극화 심화’, 10곳은 ‘복지 제도의 미비’를 주요 대응 과제로 꼽았고, 7곳은 ‘지구온난화’에 주목하고 있었다. 이는 경제적 불평등과 복지 시스템의 한계, 기후위기가 현 시점에서 기업 사회공헌에서도 핵심 과제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 기업 18곳이 미래세대 책임질 ‘아동·청소년’ 선정  지원 대상군으로는 단연 ‘아동·청소년(18곳)’이 가장 많이 지목됐다. 기업들은 사회공헌 대상으로 아동·청소년에 주목하는 이유에 대해 “사회적으로 가장 취약한 계층이자, 미래를 책임질 세대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일부 기업은 “공교육 시스템에서 제공하지 못하는 영역에 개입함으로써 실질적인 변화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미래세대의 성장에 기여하는 방식은 기업의 이미지와 사회적 책임을 동시에 강화할 수 있어, 전통적으로 선호도가 높은 분야로 꼽힌다.  LG이노텍은 ‘아이 Dream Up’ 프로그램을 통해 아동 대상 과학교육과 시력 보호 사업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 초록우산, 한국실명예방재단 등과 손잡고 2011년부터 ‘소재·부품 과학교실’을 운영 중이며, 최근 3년간 약 1만 명의 아동이 참여했다. 올해부터는 자사의 광학 기술을 활용한 저소득층 아동

“잘하는 걸로 돕는다”…30대 기업 절반, ‘업(業)연계’ 사회공헌 택했다 [2025 사회공헌 리포트] 

저출생, 고령화, 기후변화. 거대한 문제들이 사회 전반을 압박하는 시대입니다. 이제 기업 역시 많은 자원과 역량을 가진 사회문제 해결자로서의 역할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업들은 실제로 어떤 전략을 세우고 있을까요. <더나은미래>는 창간 15주년을 맞아, 국내 매출 상위 30대 기업을 대상으로 사회공헌의 흐름을 짚어봤습니다. 대표 프로그램, 수혜 대상, 파트너십 구조, 기술 접목 방식까지 기업의 전략과 실행을 종합적으로 분석했으며, 전문가 자문과 서면·전화 인터뷰를 병행해 신뢰도를 높였습니다. 본 기획은 5편에 걸쳐 오늘날 기업 사회공헌의 현주소를 조명합니다. /편집자 주 [창간 15주년 특별 기획] 국내 30대 기업 대표 사회공헌 조사 <1>본업 연계한 사회공헌 15년 새 두 배 늘어…임직원 참여·다자 협력도 확산 2025년, 국내 주요 기업의 사회공헌 전략이 15년 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이전에는 ‘좋은 일’을 찾아 기부하거나 봉사를 했다면, 이제는 ‘잘하는 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전략이 대세다. 기술, 인력, 인프라 등 자산을 총동원해 본업과 사회공헌을 연결하는 방식이다. <더나은미래>가 공익 싱크탱크 그룹 ‘더미래솔루션랩’과 함께 국내 3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한 25곳 중 12곳(48%)이 자사의 업(業)과 연계한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대표 활동으로 꼽았다. 2010년 더나은미래 조사(20.7%)와 비교하면 두 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15년 전 전자·통신업에 국한돼 있었던 업종 연계형 사회공헌이 제조·건설 등 전 산업으로 확산 중이다. ◇ 업(業)으로 푼다…‘개발자 양성’부터 ‘미세먼지 저감’까지  대표적인 사례가 삼성전자의 ‘삼성청년SW아카데미(SSAFY)’다. 삼성 관계사 소속 개발자들이 멘토로 나서, 1년간 1600시간의 집중 코딩 교육을 제공한다. 교육생에게는 매월 100만원의

[청년이 묻다] 첫 월급이 정치 흥정물인가, 최저임금 개혁을 묻다

16.4% 대 1.7%. 2018년 문재인 정부와 2025년 윤석열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률은 이렇게 극단적으로 엇갈렸다. 경제 상황 때문이 아니라, 정치 환경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제도는 더 이상 순수한 정책이 아닌 정치의 산물이 되어버렸다. 정치권의 극한 대립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최저임금의 방향이 또다시 극단을 향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19대 대선 때 여야 주요 후보는 모두 ‘최저임금 1만원’을 공약했다. 목표치가 분명하니 선전하기도 쉬웠다. 20대 대선에선 양당 후보가 별도 공약을 내놓지 않았지만,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급격한 인상을 비롯한 소득주도성장을 강하게 비판하며 최저임금 인상폭을 낮출 것을 예고했다. 반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이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히며 사실상 인상 기조를 유지할 것을 암시했다. 조기대선으로 치러지는 21대 대선도 다르지 않다. 경실련(경제정의실천연합) 정당선택도우미 관련 응답결과에 따르면, ‘최저임금 대폭인상’ 질문에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반대를,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는 매우 찬성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와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응답하지 않았지만, 각 정당의 기존 입장과 공약 기조 등을 고려하면 대체적인 기조는 읽힌다. 후보들이 자신있게 최저임금 관련 입장을 내걸 수 있는 이유는 최저임금위원회라는 제도의 실질 구조에 있다. ◇ 위원회가 결정하는가, 정부가 정하는가 최저임금은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심의요청을 받은 ‘최저임금위원회(이하 최임위)’가 90일 동안 심의·의결하고, 이를 고용노동부 장관이 고시함으로써 확정된다. 최임위는 노동계·경영계·공익위원 각 9명, 총 27명으로 구성된다. 구조상 사회적 합의를 위한 합의기구처럼 보이지만, 현실은 다르다. 근로자위원은 한국노총 5명, 민주노총 4명 등 양대노총이

[청년이 묻다] 서울공화국 시대, 과연 서울만이 ‘기회의 땅’인가

‘서울공화국’이 더 이상 과장이 아니다. 전체 인구의 50.7%인 약 2600만 명이 국토의 11.8%에 불과한 수도권(서울·경기·인천)에 몰려 있다. 교육·일자리·의료·문화 등 삶의 필수 요소가 이 좁은 공간에 집중되면서 지방 청년들은 ‘서울행’을 사실상 구조적 강제처럼 받아들인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전국 228개 시·군·구 중 57%인 130곳이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된다. 학교가 사라지고, 병원·상점이 문을 닫는 지방과, 주거비 폭등·교통 혼잡·과밀화로 신음하는 수도권의 양극화가 날로 심화되고 있다. 특히 청년 세대는 이러한 구조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다. 지방에서 성장한 청년은 더 나은 일자리와 교육, 문화시설을 찾아 서울로 이동하고, 서울에서 자란 청년은 지방을 삶의 공간으로조차 상상하지 않는다. 수도권 집중은 단순한 사회 현상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전략이 되어버렸다. ◇ 2025 대선 공약으로 본 ‘지방 살리기’ 다가오는 대선에서 여야는 저마다 지역 균형 발전을 외쳤지만, 실효성에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더불어민주당은 ‘세종 행정수도’의 완성과 ‘5극 3특’ 구상을 통해 국토 균형 발전을 이루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구체적으로는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을 5개의 권역으로 나누어 각각의 거점 도시를 중심으로 전략산업과 교통망, 행정기능을 분산시키는 동시에 ‘지역 주도 행정체계 개편’을 통해 지방이 주체가 되는 거버넌스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혁신도시, 경제자유구역, 산업단지 등을 연계하여 지역의 전략산업을 육성하고 위기에 처한 지역산업을 개혁해 지역 경제의 생태계를 회복시키겠다는 전략은 지방 청년들에게 일자리 기반을 확대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청년층이 실질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산업 단지 조성만으로는 양질의 일자리가 자동으로 생기지 않으며, 해당

[청년이 묻다] 자연권 없는 대선 기후 공약, 무엇이 빠졌나

지구는 거대한 유기체이자 서로 긴밀히 연결된 시스템이다. 그러나 우리 법체계는 오직 인간의 권리만을 중심에 두고 설계되어 왔다. 기후위기와 생태계 파괴가 현실화된 오늘날, 자연에도 ‘존재할 권리(Rights of Nature)’를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자연권이 법제화될 때 비로소, 인간 활동이 지구 생태계를 어떻게 훼손하는지, 그것이 곧 우리 생존의 위기로 돌아온다는 점을 제도적으로 인정할 수 있다. ◇ 법정에 선 도롱뇽, 자연물의 권리를 묻다 1994년 천성산 관통 고속철도 사업은 대표적인 자연권 갈등의 시발점이다. 초기 환경영향평가는 통과됐지만, 공사 지연으로 유효기간(7년)이 경과하면서 재평가가 요구됐다. 그 사이 천성산 일대에는 30여 종의 천연기념물이 추가로 발견됐고, 주변은 생태 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그럼에도 사업자는 이를 무시한 채 공사 강행을 선언했다. 이에 환경단체는 법정에 도롱뇽을 ‘원고’로 세웠다. “가장 큰 피해를 볼 도롱뇽이 스스로 권리를 주장할 수 없으니, 시민이 대리인을 맡아야 한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민법상 자연물은 권리 주체로 인정되지 않아, 3심까지 모두 기각됐다. 심지어 환경영향평가 절차의 명백한 하자마저 법적 쟁점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 사건은 ‘사전 예방’이라는 제도의 본래 취지가 무력화된 채, 사후 구제만 남은 법체계의 구조적 문제를 여실히 보여준다. 천성산 사건 이후 20여 년이 지나, 자연권 논의는 제주도로 향했다. 2023년 제주도는 남방돌고래를 ‘생태법인’으로 지정하는 조례를 논의하며 생태계 구성원에게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첫걸음을 뗐다. 돌고래가 서식하는 해역 전반을 보호 대상으로 삼기 위한 이 시도는, 자연권을 지방 행정 차원에서 실험한 의미 있는 사례다.

[청년이 묻다] 혐오·허위의 늪, 상생의 공론장을 어떻게 되살릴까

우리는 매일 뉴스와 커뮤니티, SNS를 오가며 쏟아지는 정보를 접한다. 그중에는 진실도 있지만, 누군가의 의도에 따라 조작된 허위 정보도 있다. 문제는 이 허위 정보가 단순한 착오나 오해가 아니라는 데 있다. 누군가는 악의적으로 가짜뉴스를 만들고, 누군가는 그 뉴스를 이용하여 혐오를 선동한다. 특히 정치가 그 뉴스에 올라타는 순간, 허위 정보는 더 이상 개인의 착오가 아니라 ‘사회적 무기’가 된다. 2020년 미국 대선 당시 “선거가 조작됐다”는 음모론은 수많은 가짜뉴스를 촉발했고, 급기야 지지자들은 의사당을 점거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있었다. “중국 간첩이 선거에 개입했다”, “선관위 직원이 중국인이다”, “중국인이 탄핵 반대 집회에 집단 참여했다”는 주장은 근거 없이 유포됐고, 실제 국회의원과 공인들까지 그 주장을 퍼뜨렸다. 특히 이 허위 정보들은 보수 유튜버 채널이나 커뮤니티를 타고 ‘사실’처럼 굳어지며, 혐오를 부추겼다. 정보 홍수 시대, 진실은 늘 자극적 허위정보에 밀린다. 플랫폼의 추천 알고리즘은 사용자 취향에 맞춰 자극적인 콘텐츠를 우선 노출해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과 ‘필터 버블(filter bubble)’을 강화한다. 반면 진실은 검증이 필요해 즉시성이 떨어지고, 복잡한 사실 관계는 클릭을 유도하지 못한다. 결국 진실은 밀리고, 허위는 증폭된다. 이 구조 속에서 시민이 무력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 공론장의 붕괴, 민주주의의 위기로 더 심각한 문제는 이 같은 정보 환경이 개인의 오보 인식을 넘어 사회 전체의 공적 신뢰를 파괴한다는 점이다. 허위정보·혐오·음모론이 공론장을 잠식하면, 공동체 감각은 무너지고 정치적 분열은 일상이 된다. 사실을 검증하고 토론하던 광장은 ‘진영의 감정 대결장’으로 전락하며, 민주주의도

[청년이 묻다] 기후위기를 해석하는 ‘국가의 언어’는 무엇인가요

기후위기는 이미 현실이 되었다. 더 이상 과학적 경고에 머물지 않고, 재난의 형태로 우리 삶 속에 깊숙이 들어와있다. 폭우와 산불, 폭염과 가뭄은 일상의 풍경이 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기후로 인한 위험을 직접 겪고 있다. 하지만 정책의 언어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재난이 일어나면 그에 대한 대처 방안이 제시되지만, 이 위기를 어떤 방향성 아래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희미하다. 무엇을 하겠다는 구체적인 항목은 많지만, 왜 그것을 하는지, 어디를 향해 가고자 하는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전반적으로 이번 대선 공약을 살펴보면, 기후위기 대응은 여전히 ‘무엇을 하겠다’는 정책 나열에 머물러 있다. 구체적인 사업과 예산 항목은 많지만, 이를 통해 어디로 나아가고자 하는지 명확한 방향성은 드러나지 않는다. 재난으로 현실화된 기후위기 앞에서, 단편적인 대응 조치만으로는 근본적인 전환을 이끌어 내기 어렵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책의 양이 아니라 ‘어떤 방향으로 전환할 것인가’를 보여 주는 전략적 로드맵이다. 대한민국은 곡물·에너지 자립도가 낮고 기후재난에 취약하다. 기후위기를 방치할 경우 일상생활과 생명안전에 심각한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다. 동시에 탄소를 중심으로 재편되는 글로벌 산업 질서 속에서, 기후 대응은 무역장벽을 피하고 새로운 산업 기회를 창출할 수 있는 핵심 전략이 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도 기후대응 역량은 국가 경쟁력과 신뢰를 가늠하는 기준이 되고 있으며, 복지 측면에서도 폭염·침수·에너지 불안정에 취약한 계층을 보호하는 정책적 연계가 절실하다. 기후위기를 제대로 대응하지 않는다면 국가의 기반은 점차 약화될 수밖에 없으며, 지금 필요한 것은 전방위적이고 구조적인 전환이다.

[청년이 묻다] AI 칼바람 넘어 시민의 도구로…‘기술 민주주의’를 묻다

작년 11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자 곧바로 ‘효율적인 정부’를 기치로 내걸었다. 그는 비효율로 지적받아온 공공기관 구조와 예산을 대대적으로 손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신설된 ‘정부효율부(DOGE)’ 수장으로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가 전격 임명됐다. 머스크는 낡은 미국 정부의 IT 시스템과 관료 조직을 맹렬히 비판하며, 기술만이 비효율의 핵심을 해결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실리콘밸리 출신 IT 전문가들이 각 부처로 파견되자 공공기관은 줄줄이 통·폐합됐고, 해외 원조 예산도 대폭 삭감됐다. 1월 한 달 동안만 7만5000여 명이 구조조정 대상에 올랐으며, 5월까지 수십만 명이 더해질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정부효율부는 공식 홈페이지에 “계약·보조금 취소, 자산 매각, 사기 적발 등으로 1700억 달러(한화 약 238조 원)의 예산을 절감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머스크 본인은 물러났지만, 그가 심어놓은 효율부 직원들이 구조조정 기조를 이어갈 전망이다. 머스크는 여전히 “소프트웨어만 제대로 작동하면 대부분 문제가 해결된다”며 기술 만능주의를 거듭 주장하고 있다. ◇ 없애고 줄이면 효율적으로 돌아간다는 착각 기술 발전은 필연적으로 ‘효율성’과 직결된다. 과거 우리가 대양을 가로질러 항해하고, 하늘을 비행하며, 시공을 초월해 소통하는 모든 과정에는 기술 혁신이 자리한다. 그러나 기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환상은 이면의 리스크를 가린다. 메타가 지난 2월 전체 인력의 5%를 해고했고, 마이크로소프트도 최근 3% 감원을 발표했다. AI가 불러온 ‘칼바람’이 현실화된 셈이다. 우리는 ‘AI로 생산성 10배 늘리기’, ‘자동화로 월 1000만 원 벌기’ 강의 앞에 열광하지만, 그 이면에 숨은 조직 붕괴와 사회 안전망의 구멍은 보지 못한다.

제262호 창간 14주년 특집

지속가능한 공익 생태계와 함께 걸어온 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