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즈의 시대, 기부를 다시 묻다 <5·끝>
비영리단체 굿즈, 중고거래·모조품까지 등장
“사업력보다 굿즈가 중심 되는 건 문제” 성찰의 목소리도
“저희한테 물어보거든요. ‘K기관은 뭐 주세요?’ 이렇게 말하고 후원을 결정하신 분들 가끔 있으세요. ‘B기관은 이거 준다고 했는데 여기는 뭐 없네요’라고 말씀하시면…”
비영리단체 활동가 황명호씨는 사랑의열매 나눔문화연구소가 올해 초 펴낸 ‘기부트렌드 2025’ 활동가 패널 인터뷰에서 굿즈 중심 기부 문화의 부작용을 이렇게 전했다. 나눔문화연구소는 보고서에서 “고가의 기부 답례품이 늘어나며, 기부를 ‘구매’나 ‘교환’으로 인식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며 “이는 지속가능한 기부문화를 해칠 우려가 있다”고 경고했다.
<더나은미래>는 공익 싱크탱크 그룹 ‘더미래솔루션랩’과 함께 지난달 전국 성인 1014명을 대상으로 ‘기부 굿즈’에 대한 인식조사를 실시했다. 응답자들에게 7개 기관(▲월드비전 ▲굿네이버스 ▲유니세프 ▲초록우산 ▲세이브더칠드런 ▲밀알복지재단 ▲희망친구 기아대책)의 SNS용 굿즈 이미지를 보여준 뒤 인상을 물은 결과, ‘기부보다는 상품 광고 같았다’는 응답이 37.6%로 가장 많았다. 이어 ‘사회적 가치와 상업성이 애매하게 섞여 있다’는 응답도 31.7%에 달했다.

◇ 중고 거래부터 모조품까지…‘상품’이 된 굿즈
굿즈 캠페인의 상업화 논란은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초록우산은 지난해 4월 LG전자에서 후원받은 식물재배기 ‘틔운 미니(정가 약 22만 원 상당)’를 신규 정기후원자에게 답례품으로 제공했다.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3만 원 기부로 틔운 받는 법”이 공유되며 큰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제품 수령 직후 후원을 취소하거나 중고거래로 되파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무늬만 기부’ 논란도 불거졌다.
실제 온라인 중고 거래 플랫폼에는 NGO 굿즈 거래 게시물이 어렵지 않게 포착됐다. 일부 플랫폼에는 특정 기관 굿즈의 모조품으로 추정되는 제품 광고까지 등장했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유니세프는 “굿즈의 중고 거래 실태를 인지하고 있으며, 꾸준히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밝혔다.
굿즈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NGO들은 “굿즈가 기부의 입구가 되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본질을 흐리지 않도록 고심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굿네이버스 관계자는 “굿즈는 기부의 문턱을 낮추고 기부 경험을 넓힐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면서도 “자칫 상업적 이미지로 비칠 수 있어, 기부의 본질을 지키면서도 경험을 확장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이브더칠드런 측도 “굿즈는 판매가 목적이 아니라, 후원에 대한 감사의 표시”라며 “기부자는 단순한 소비자가 아닌 ‘가치 소비자’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오래 남도록 굿즈의 본래 취지에 충실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굿즈를 운영하는 모든 NGO가 같은 고민을 안고 있을 것”이라며 “각 단체가 스스로에 대한 성찰을 이어가야 할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유니세프는 굿즈 캠페인 페이지에서 ‘합류의 상징’이라는 표현을 앞세운다. 기부자를 단순 소비자가 아닌, 유니세프 팀의 일원으로 인식시키기 위한 전략이다. 조종현 유니세프 후원본부장은 “내부에서는 ‘굿즈’라는 말 대신 ‘상징’이라는 표현을 쓴다”며 “굿즈를 드린다기보다 ‘유니세프 팀에 합류한 분들께 팀 팔찌를 드린다’고 말한다”고 밝혔다. 그는 “굿즈 자체보다 기관의 메시지를 어떻게 전할지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좋은 일’보다 ‘좋은 굿즈’?…굿즈 캠페인의 그림자
일각에서는 굿즈 캠페인이 이미 ‘출혈 경쟁’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품질 높은 굿즈 없이는 대중의 관심을 끌기 어려운 데다, 제작 단가와 광고 비용까지 더해지며 부담이 커졌다는 것이다. 한 중소 NGO 관계자는 “굿즈 캠페인을 안 하기도 어렵고, 제작비는 부담스러워 내부 인력이 온라인 굿즈를 직접 만들고 있다”고 털어놨다.
굿즈보다 ‘사업력’에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박송희 밀알복지재단 온라인사업실장은 “파일럿으로 굿즈 캠페인을 진행했지만, 굿즈가 마치 필수처럼 여겨지는 분위기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굿즈가 후원의 트리거 역할은 하지만, NGO가 내세울 수 있는 진짜 강점은 결국 사업력”이라고 했다. 이어 “얼마나 진정성 있게 사업을 알릴 수 있을지를 더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오승훈 공익마케팅스쿨 대표도 “어느 단체가 더 좋은 굿즈를 제공하는지 경쟁하기보다는, NGO 단체 자체와 그들이 하는 사업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경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미희 나눔문화연구소 팀장은 “기부로 문제 해결에 동참해달라는 메시지는 사라지고, ‘굿즈를 받고 싶다면 기부하라’는 식의 접근은 이미 상품화된 구조”라며 “캠페인 페이지가 기업의 제품을 홍보하듯 구성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으로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부의 시작이 굿즈라면, 그 끝은 반드시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 이제는 ‘받기 위한 기부’가 아닌, ‘함께 바꾸기 위한 기부’를 위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김규리·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 본 취재는 국내 대표 NGO 6곳(유니세프, 세이브더칠드런, 기아대책, 밀알복지재단, 굿네이버스, 굿피플)의 협조로 진행됐습니다. 보다 투명하고 신뢰받는 NGO 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한 이들의 성찰과 응답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