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에 갇힌 유산기부…‘레거시 텐’이 해법이다!

한국형 ‘레거시 텐’으로 더 나은 미래를!<1>
영국 ‘상속세 인센티브’ 도입 후 유산기부 두 배 급증

상속은 오랫동안 개인과 가족의 영역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그러나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며 향후 20~30년간 대규모 자산 이전이 예상되는 가운데, 상속을 둘러싼 논의는 점차 사회적 의제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유산기부’ 역시 그 흐름 속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의사습니다. 현재 국내 유산기부 비중은 1% 안팎에 머물러 있습니다. 세제 인센티브 도입을 둘러싸고는 ‘조세 형평성’과 ‘부자 감세’ 논란, 공익법인 투명성 문제 등 다양한 쟁점이 제기됩니다. <더나은미래>는 한국형 유산기부 제도의 가능성과 과제를 짚는 특별 기획을 통해, 초고령사회에서 자산의 사회적 역할을 함께 묻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지난 1월 21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이 이례적인 열기로 가득 찼다. 500석 규모의 장내가 맨 뒷자리까지 꽉 들어찰 정도로 참석자들이 몰렸다. 정치권과 시민사회, 학계, 정부 관계자들 5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유산기부 활성화를 위한 한국형 레거시 텐(Legacy 10) 제도 도입 정책 토론회’가 열린 것이다. 상속을 개인과 가족의 문제로만 여겨왔던 한국 사회에서, ‘유산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자’는 논의가 본격적인 공론의 장으로 올라온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지난 1월 21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유산기부 활성화를 위한 한국의 레거시 텐(Legacy 10) 제도 도입에 관한 정책 토론회’ 현장. /김규리 기자

‘레거시 텐’은 영국에서 시행 중인 유산기부 장려 제도다. 2011년 11월, 영국 민간 자선단체들은 “영국인 10%의 유산 10% 기부”를 목표로 대국민 캠페인을 시작했다. 여기에 정·재계 인사들이 대거 참여하고, 정부가 조세 감면 혜택으로 화답하며 기부 문화 정착에 불을 지폈다.

영국 정부는 2012년부터 상속재산의 10% 이상을 자선단체에 기부하면, 나머지 재산에 부과되는 상속세율을 기존 40%에서 36%로 낮춰주는 제도를 본격 도입했다. 기부 금액이 과세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을 넘어, 전체 세율 자체가 인하되는 강력한 인센티브다. 그 결과, 영국의 유산기부 총액은 제도 도입 초기인 2012년 약 4조1000억 원(23억2000만 유로)에서 2024년 약 7조9000억 원(45억 유로)으로 두 배 가까이 급증했다.

◇ 유산기부 인식도 조사…’세제 혜택 있으면 하겠다’ 53.3%

반면 국내에서는 아직 유산기부 비중이 낮은 수준이다.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개인의 상속·증여 재산 가운데 공익법인에 출연되는 비중은 1% 안팎에 머무는 것으로 집계된다. 상속세 최고세율이 50%에 달하는 국내 세제 구조에서, 기부는 과세 대상에서 제외되지만 세율 인하와 같은 추가 인센티브는 없다.

유산기부 의사(意思)는 하락 흐름을 보인다.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5년 사회조사’에 따르면 “향후 여건이 허락된다면 유산의 일부를 사회에 기부할 의사가 있다”는 응답은 22.2%로 집계됐다. 이는 2011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저치다. 유산 기부 의사 ‘있음’ 비중은 2015년 34.5%를 기록한 뒤 2019년 26.7%, 2021년 23.2%, 2025년 22.2%로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다.

다만 상속세 감면을 포함한 제도 도입을 가정한 조사에서는 다른 결과가 나타났다. 지난해 12월, 한국자선단체협의회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실시한 ‘유산기부 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아무런 조건이 없을 때의 기부 의향은 29%였으나 ‘상속세 감면을 포함한 유산기부 관련 법이 제정될 경우’ 응답자의 53.3%가 기부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정치권에서도 유산기부 활성화를 위한 제도 개선 논의는 꾸준히 이어져 왔다. 지난 2019년 제20대 국회에서 추미애 의원 등이 최초로 관련 법안을 발의했고, 2021년 제21대 국회에서도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상속세 감면을 골자로 한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바 있다.

그러나 이들 법안은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했다. 기획재정부는 기부 재산에 대한 상속세 비과세 혜택이 이미 제공되고 있는 상황에서, 남은 재산에 대한 세율까지 낮추는 것은 ‘이중 혜택’에 해당할 수 있고 세수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검토 보고서는 “공익법인 출연재산에 대하여 상속세 비과세 혜택을 제공 중 이므로 출연 후 잔여재산에 대한 세액공제 도입은 과도한 이중지원이 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조세 형평성과 재정 영향에 대한 우려가 입법 논의 과정에서 쟁점으로 작용한 것이다.

세수 감소 우려와 달리 기부 확대 효과가 더 클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박훈 서울시립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한국형 레거시 텐 도입 시 상속세 세수는 연간 약 1253억 원(납세자 10분의 1 참여 시)에서 6263억 원(납세자 절반 참여 시)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유산기부액은 연간 약 2900억 원에서 최대 1조4500억 원까지 증가할 것으로 추산됐다. 세수 감소분의 약 2.3배에 달하는 규모다.

세율 인하 방식이 도입될 경우 고액 자산가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도 우려 요인이다. 다만 상속세 신고 인원은 최근 증가 추세다. 국세청에 따르면 상속세를 신고한 피상속인 수는 2015년 7542명에서 2024년 2만1193명으로 늘었으며, 이는 전체 사망자의 약 5.9%에 해당한다. 고령화와 자산 축적이 맞물리면서 상속은 점차 사회적 의제로 확대되고 있다.

비영리 현장에서는 유산기부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사회적 격려와 실질적인 자극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진단한다. 황영기 한국자선단체협의회 회장은 “유산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면 복지 재원을 두텁게 하고 부의 대물림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며 “현재 유산기부 비중이 1%에도 못 미치는 상황에서, 약간의 세제 혜택이라는 촉매가 더해진다면 기부를 활성화하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고령화사회에서 유산기부 확대를 위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 여야 손잡은 ‘유산기부법’… 형평성·유류분 등 쟁점 남아

여야 재정경제기획위원회 간사인 정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왼쪽)과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의 모습. /정태호 의원실, 박수영 의원실

최근에는 여야가 공동 입법 추진 의사를 밝히면서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지난달, 정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은 상속재산의 일정 비율을 공익 목적에 기부할 경우 세제 혜택을 부여하는 이른바 ‘유산기부법’을 공동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세율 인하 폭과 적용 기준은 향후 입법 과정에서 논의될 예정이다. 

다만 제도 도입 과정에서 검토해야 할 쟁점도 적지 않다. 상속세 형평성 문제, 유류분 제도와의 관계, 공익법인 투명성 확보 방안 등이 함께 논의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제 인센티브가 실제 기부 확대로 이어질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향후 대규모 자산 이전이 예상되는 가운데, 상속과 기부를 둘러싼 제도 설계 논의를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한국형 레거시 텐 제도가 입법으로 이어질지, 그리고 유산기부가 제도적 기반 위에서 확대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에 <더나은미래>는 이어지는 기사를 통해 유산기부 활성화를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제도적 정비가 필요한지, 입법 과정에서 불거질 수 있는 부작용과 이를 방지할 대안은 무엇인지 종합적으로 취재해 보도할 예정이다.

김규리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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