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리한 비영리] ‘삼성전자 주식’ 한 주는 있지만, 기부는 망설이는 당신에게

지난 5월 구독자 230만 명이 넘는 유튜브 채널에 출연했다. 매일 오후 12시 주식시장의 동향과 흐름을 짚는 라이브 방송 ‘12시에 만나요’였다. 아름다운재단의 ‘수상한 복덕방 캠페인’을 알게 된 진행자 이광수 애널리스트의 제안으로 성사된 자리였다.

처음 섭외 요청을 받았을 때는 주식 방송에 출연한다는 사실이 생경했다. 그러나 아름다운재단을 대표해 출연한 나와 연구사업팀장은 한 시간 동안 주거 위기와 불안의 벼랑 끝에 놓인 청년과 이웃, 그리고 한국사회의 기부문화에 관해 이야기했다.

유튜브의 힘은 대단했다. 방송은 누적 조회수 20만회를 넘어섰고, 불과 일주일 만에 1억 원에 가까운 기부가 이어졌다. 향후 3년간 이어질 기부까지 환산하면 2억 원이 넘는 규모였다.

성과만큼 놀라웠던 것은 방송 중 올라온 댓글이었다. “주식으로 번 돈의 일부를 나눕니다”, “열심히 주식해서 기부해야겠어요” 등의 댓글과 함께 무통장 입금이 이어졌다. 1000만 원을 기부한 사람도, 매달 2만 원을 약정한 사람도 있었다.

참 기쁘고 감사했다. 하지만 ‘주식’과 ‘기부’라는, 좀처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단어의 조합은 단순한 감동으로만 남지 않았다. 오랫동안 품어온 질문을 다시 꺼내 들게 했다.

◇ ‘나눔’이란 말은 때로 얼마나 나약한가

아름다운재단에 입사한 지 올해로 18년이다. 오랫동안 “우리는 왜 나눠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답해왔다. 자본주의 사회는 불평등하고 누군가는 더 취약하기 때문에, 더 많이 가진 사람은 그만큼 책임을 나누어야 한다고 믿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 당위만으로 충분했을까. 기부자들에게 그 생각을 제대로 전달하고 있었을까. 나눔보다 자신의 자산과 미래를 먼저 챙길 수밖에 없는 평범한 이웃들에게, ‘당연하다’는 말 너머의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아름다운재단은 일 년 내내 기부를 이야기한다. 캠페인을 만들고 공익사업을 펼친다. 그런데도 새로운 정기기부자 한 명을 만나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최근의 팍팍한 경기 상황은 기부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그런 시기에 애널리스트가 건넨 “주식으로 벌었으니 기부하세요”라는 메시지는 강력했다. 그리고 곧장 눈에 보이는 성과로 이어졌다. 나는 그 사실이 고마우면서도 마음 한편이 복잡했다. 수익이 얼마든 “벌었으니 나누겠다”고 말하는 개인투자자들의 마음이 오래 남았다.

고도화된 자본주의와 불투명한 미래 속에서 자산 증식과 연금, 부동산, 노후 준비는 일상의 언어가 됐다. 그런 준비를 하지 않는 사람은 미련하게 여겨지기까지 한다. 이런 시대에 자신의 미래를 지키고 싶은 사람들을 향한 “나누자”는 말은 때로 너무나 나약하다.

얼마 전에는 실적과 주가 상승에 대한 기대 속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기초자산으로 한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에 개인투자자의 자금이 9조 원 가까이 몰렸다는 보도도 나왔다. 금융감독원이 경고할 만큼 시장의 열기는 뜨거웠다.

그러나 이 흐름을 개인투자자의 탐욕이라고만 부를 수 있을까. 그 거센 물결 속에는 시대의 불안과 생존에 대한 절박함이 있다. 불완전한 시대에 조금이라도 안전한 삶을 마련하려는 평범한 사람들의 애달픈 바람이 담겨 있다.

◇ 기부가 낯선 당신을 이 세계로 초대하고 싶다

그래서 다시 생각한다. 기부는 어떻게 설명돼야 할까. 평범하지만 잘살고 싶은 사람들에게 기부는 어떤 의미여야 할까. 하루 종일 주식창을 들여다보며 애가 타는 사람을 나눔의 세계로 초대하려면, 나는 어떤 이야기를 건네야 할까.

기부에는 세액공제 혜택이 있다. 연금저축이나 개인형 퇴직연금(IRP)의 과세이연 혜택과는 다르지만, 기부금의 일부를 세금에서 공제받을 수 있다. 개인의 소득과 결정세액, 공제 한도에 따라 체감하는 혜택은 달라진다.

기부는 성취감도 준다. 막연한 감상이 아니다. 여러 뇌과학 연구는 기부와 같은 친사회적 행동이 뇌의 보상회로와 연결된다고 설명한다. 기부할 때 금전적 보상을 받을 때와 유사한 보상 시스템이 활성화되며, 특히 자발적으로 기부할 때 만족감이 더욱 커진다는 연구도 있다.

행복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돈을 얼마나 버는가만큼 어떻게 쓰는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나를 위해 쓰는 돈이 안정감을 준다면, 타인을 위해 흘려보낸 돈은 삶에 의미와 행복을 더해준다.

투자와 마찬가지로 삶의 포트폴리오도 성장주만으로 채울 수는 없다. 삶이 무너지지 않도록 단단하게 받쳐주는 채권 같은 자산도 필요하다. 기부는 후자에 가깝다. 높은 수익률을 약속하지는 않지만, 내가 살아가는 사회의 바닥을 함께 지키며 개인에게 행복과 성취를 돌려준다. 삶의 포트폴리오에 균형을 더하는 일이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경제학자이자 철학자인 아마르티아 센은 발전을 단순한 소득 증가로 보지 않았다. 사람들이 스스로 가치 있다고 여기는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역량이 확장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빈곤 역시 돈이 부족한 상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배우고 일하고 치료받으며 내일을 계획할 힘이 가로막힌 상태다.

이 관점에서 기부는 단순히 돈을 건네는 일이 아니다. 누군가의 역량이 다시 작동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일이다.

아름다운재단의 공익사업을 예로 들어보자. 주거 지원은 단순히 방 한 칸을 마련해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주거가 안정되면 건강과 노동, 교육, 관계를 회복할 가능성이 함께 열린다. 그렇게 되찾은 역량은 개인의 성장으로 이어지고, 그 성장은 다시 사회 참여와 경제적 가능성으로 돌아온다.

기부는 돈이 사라지는 일이 아니다. 돈이 누군가의 역량이 되고, 그 역량이 성장으로 이어지며, 그 성장이 다시 사회 발전과 경제적 가치로 돌아오는 긴 순환이다.

좋은 투자를 하려면 기업의 가치와 산업의 변화, 사회가 나아가는 방향을 함께 살펴야 한다. 자본주의 안에서 길을 찾는 일은 결국 돈의 흐름 너머에 있는 가치를 읽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기부는 자본주의의 반대편에 놓인 순진한 단어가 아니다. 오히려 자본주의 시대에 가능한 또 하나의 장기 가치투자다. 주식이 내 미래의 자산을 키우는 일이라면, 기부는 우리가 함께 살아갈 사회의 역량과 가능성을 키우는 일이다.

◇ 이 세상에 나눌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사람은 없다

모든 것이 숫자로 환산되고 수익률로 비교되며 경제적 효율로 평가되는 시대다. 그 안에서 기부는 때로 나약해 보인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욱 빛난다. 빠르게 불어나는 돈의 세계에서 잠시 속도를 늦추고, 누군가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천천히 흘러가는 돈. 그것이 기부가 만들어내는 변화다.

우리 모두는 시대의 불안 속에 살아간다. 좋은 투자가 수익뿐 아니라 가치를 함께 바라보는 일이라면,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가치투자가 필요하다. 주식이 나의 미래를 위한 투자라면 기부는 우리가 함께 살아갈 사회의 미래를 위한 투자다.

삼성전자 주식은 있지만 아직 기부를 망설이는 당신을 이 미래를 위한 투자에 초대하고 싶다. 방법은 어렵지 않다. 바로 오늘, 증권사 계좌에 잠시 머물러 있는 돈의 아주 작은 일부를 기부단체를 통해 누군가의 내일로 옮겨보는 것이다.

김진아 아름다운재단 사무총장

필자 소개  

아름다운재단에서 15년간 근속하고 2023년 내부선발 1호 사무총장이 되었습니다. 공익활동을 지원하고 건강한 기부문화를 확산하는 아름다운재단의 사회적 영향력이 확대될 수 있도록 전략적 도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난제’가 된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다자간의 협력이 절실하다는 문제의식 아래 거버넌스에 대한 연구도 지속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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