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5주년 특별 기획] 국내 30대 기업 대표 사회공헌 조사 <5·끝>
기술, 나눔의 방식도 바꾸다…디지털 전환에 발맞춘 사회공헌 프로그램
기술은 사회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가. 지난 15년간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메타버스 등 신기술의 발전은 산업은 물론 교육, 복지, 환경 영역의 지형을 바꿔놨다. 기업의 사회공헌도 예외는 아니었다. <더나은미래>가 공익 싱크탱크 그룹 ‘더미래솔루션랩’과 함께 국내 매출 상위 3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 7곳이 “AI, 빅데이터, 메타버스 등 신기술을 사회공헌에 접목했거나 도입을 고려하고 있다”고 답했다. 기술이 ‘나눔의 도구’로 진화하는 흐름이다.
◇ “챗봇이 알려주는 보훈 이야기”…AI로 확장하는 기억의 서사
대표적인 기술 활용 사례는 ‘대화형 AI’, 즉 ‘챗봇(chatbot)’이다. 정보 접근성이 낮은 계층에게는 효율적이고, 흩어진 정보를 한데 모아주는 데도 유용하다.
LG전자는 임직원 봉사단 ‘라이프스굿(Life’s Good)’ 소속 ‘대화형AI팀’이 기술 재능기부로 사회 문제를 푸는 프로젝트를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2019년엔 홈리스 자립을 돕는 사회적기업 ‘빅이슈’와 협력해 노점 잡지 판매 위치를 알려주는 챗봇을 개발했고, 2024년엔 6·25 참전용사 정보를 담은 ‘보훈의 봇’을 선보였다. AI가 전투 기록과 인물 정보를 설명하고, 흑백 사진을 컬러로 복원하는 기술도 적용됐다.

LG전자는 “해당 팀은 AI, 데이터 시각화, 빅데이터 활용 등 실력을 인증받은 사내 인재들이 뜻을 모은 조직”이라며 “기술로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이들이 뜻을 모았다”고 밝혔다.
LG화학도 2024년부터 ESG 교육사업 ‘라이크그린(Like Green)’에 AI 챗봇 ‘그린이’를 도입했다. 초·중등 학생들이 환경과 진로에 대해 대화형 학습을 하며 정보를 익히고, 교사에게는 수업자료와 강의지도안을 제공한다. LG화학 측은 “공교육의 디지털 전환에 맞춰 AI 챗봇을 통해 미래형 환경 교육을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AI 못지않게 메타버스 활용 사례도 늘고 있다. LG화학은 2023년 여수 앞바다 잘피 복원사업과 연계해,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에 가상 바다숲 ‘블루포레스트’를 구현했다. 10~20대 이용자들은 가상 환경에서 쓰레기를 수거하고 해양 생태계를 체험하며, 평균 10분 이상 머무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들은 “바캉스를 즐기며 바다를 지키는 경험을 할 수 있어 좋았다”, “바다 쓰레기를 치울 때마다 힐링한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기업은행은 메타버스 기반 임직원 걸음기부 캠페인을 진행했다. 2022~2024년 동안 ‘임직원 걸음기부 캠페인’에서 모바일 앱 ‘빅워크’를 통해 메타버스 공간에 걸음 수를 자동 측정·기록하고, 임직원별 순위를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2023년에는 목표의 200%를 초과한 4억1600만 걸음을 모으기도 했다.
◇ 청소년, 노년층 ‘디지털 소외’ 해결에 기술 접목도
기술이 누구에게나 평등하지 않다는 점도 기업들의 고민이다. ‘디지털 소외’를 줄이기 위한 방향으로 사회공헌 기술을 접목한 사례도 있다.
SK하이닉스는 2023년 하트-하트재단과 함께 중소도시 청소년 대상 ‘행복 ICT 스터디랩’을 열고,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 자율주행 등 신기술 체험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이듬해에는 노년층을 위한 ICT 교육센터도 충북 청주에 열어, AI 기반 건강관리와 보이스피싱 방지법까지 다룬다. 하트-하트재단 관계자는 “어르신들이 자주 찾는 노인복지관에서 손쉽게 ICT 기술 기반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신한은행은 보호시설이나 지역아동센터를 찾아가 초등학생에게 ‘어린이 코딩 체험 교실’을 운영 중이다. 로봇, 센서, AI 알고리즘 교육 등 디지털 금융 환경에 필요한 기초 학습을 제공한다.
내부적으로 적용 방향을 탐색 중인 기업들도 있다. LG이노텍은 자사의 과학교실 프로그램을 메타버스로 확장할 계획이다. 초등학생들이 가상 실험실에서 과학 개념을 직접 체험하는 방식이다. 현대글로비스는 “기술 기반 사회공헌은 중장기 과제로, 적용 가능한 모델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고대권 이노소셜랩 대표는 “기술 기반 사회공헌은 아직 기술기업을 제외하면 시도 자체가 제한적이지만, 향후 확대될 가능성은 크다”며 “건강한 확산을 위해선 기술의 윤리성에 대한 숙의, 기술 장벽 해소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기술과 사회공헌이 결합하면 자연스럽게 데이터가 생성되는 만큼, 성과관리 체계를 함께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유현·김규리·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