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 고령화, 기후변화. 거대한 문제들이 사회 전반을 압박하는 시대입니다. 이제 기업 역시 많은 자원과 역량을 가진 사회문제 해결자로서의 역할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업들은 실제로 어떤 전략을 세우고 있을까요. <더나은미래>는 창간 15주년을 맞아, 국내 매출 상위 30대 기업을 대상으로 사회공헌의 흐름을 짚어봤습니다. 대표 프로그램, 수혜 대상, 파트너십 구조, 기술 접목 방식까지 기업의 전략과 실행을 종합적으로 분석했으며, 전문가 자문과 서면·전화 인터뷰를 병행해 신뢰도를 높였습니다. 본 기획은 5편에 걸쳐 오늘날 기업 사회공헌의 현주소를 조명합니다. /편집자 주 |
[창간 15주년 특별 기획] 국내 30대 기업 대표 사회공헌 조사 <1>
본업 연계한 사회공헌 15년 새 두 배 늘어…임직원 참여·다자 협력도 확산
2025년, 국내 주요 기업의 사회공헌 전략이 15년 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이전에는 ‘좋은 일’을 찾아 기부하거나 봉사를 했다면, 이제는 ‘잘하는 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전략이 대세다. 기술, 인력, 인프라 등 자산을 총동원해 본업과 사회공헌을 연결하는 방식이다.

<더나은미래>가 공익 싱크탱크 그룹 ‘더미래솔루션랩’과 함께 국내 3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한 25곳 중 12곳(48%)이 자사의 업(業)과 연계한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대표 활동으로 꼽았다. 2010년 더나은미래 조사(20.7%)와 비교하면 두 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15년 전 전자·통신업에 국한돼 있었던 업종 연계형 사회공헌이 제조·건설 등 전 산업으로 확산 중이다.
◇ 업(業)으로 푼다…‘개발자 양성’부터 ‘미세먼지 저감’까지
대표적인 사례가 삼성전자의 ‘삼성청년SW아카데미(SSAFY)’다. 삼성 관계사 소속 개발자들이 멘토로 나서, 1년간 1600시간의 집중 코딩 교육을 제공한다. 교육생에게는 매월 100만원의 지원금도 지급된다. 지금까지 약 8000명이 수료했고, 이 중 6700명이 개발자로 취업해 84%의 취업률을 기록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청년 실업과 소프트웨어 인력 부족이라는 두 사회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한화는 2022년부터 ‘맑은학교 만들기’ 사업을 통해 전국 초등학교에 친환경 설비를 지원하고 있다. 자사의 태양광 기술을 활용해 환기 시스템과 공기정화 장치를 설치하고, 환경 교육과 지역 환경운동회도 함께 진행한다. 지금까지 21개 학교, 약 1만5000명의 학생이 참여했다. 한화 관계자는 “설비 설치 후 미세먼지 85%, 초미세먼지 41.3%, 이산화탄소 19.1%가 줄었다”며 “에너지 기업으로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식”이라고 했다.
업의 특성과 전문성을 사회문제 해결에 투입하니, 효과도 분명했다. 특히 도심 고속도로와 물류센터 인근 학교 등 공기질이 열악한 지역에서는 체감 효과가 컸다. 대전 진참초의 노성해 교사는 “아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비영리 파트너사인 환경재단의 어린이환경센터 진세영 PD는 “창문형 환기 시스템과 벽면 녹화 등 낯선 시설에 아이들이 흥미를 느끼며 미세먼지를 자연스럽게 인지한다”고 전했다.
현대건설은 건설업의 특성을 살려 ‘재난방재용 경안전모’를 자체 개발해 학교에 보급하고 있다. 접이식 구조와 300g의 가벼운 무게, RFID 태그를 활용한 위치 추적 기능 등이 특징이다. 해당 안전모는 지진·화재 상황을 가정한 모의 대피훈련과 함께 재난 대응 교육 콘텐츠에도 활용된다.
이외에도 업(業) 연계형 사회공헌을 대표 프로그램으로 꼽은 곳은 SK하이닉스(하인슈타인·ICT 교육 격차 해소), 현대모비스(투명우산 나눔활동·교통사고 저감 지원), CJ제일제당(나눔냉장고·취약계층 청년 식생활 안정 지원), 현대글로비스(화물차 운전기사 안전사고 예방 캠페인), 이마트(희망배달마차·소외계층 물품 지원) 등이 있었다.
◇ 기업 사회공헌 전략, ‘혼자보다 함께’
기업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또 다른 사회공헌 전략은 ‘임직원 참여’였다. ‘사회공헌 활동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운영 방식이나 형태’를 묻는 질문에 응답 기업 중 절반 이상(13곳)이 ‘임직원 참여’를 꼽았다.
LG전자는 한국자원봉사문화와 함께 ‘Life’s Good 봉사단’을 운영하고 있다. 연초에 임직원 봉사단을 모집하면, 참가자들이 직접 팀을 꾸리고 봉사활동 기획부터 활동기관 섭외까지 주도적으로 수행한다. 연간 70여 개 팀이 활동 중이다. LG전자 관계자는 “정해진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수준을 넘어, 임직원이 스스로 사회문제를 발굴하고 해결 방안을 기획하는 방식”이라며 “자발성과 기획력을 바탕으로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영리뿐만 아니라 지자체·공공기관·전문기관 등과 협업해 ‘콜렉티브 임팩트’를 추구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응답 기업의 절반 가량인 12곳이 이 전략을 채택했다.
기아는 다문화 고교생 대상 취·창업 교육 프로그램 ‘하모니움’을 운영하며, 사회혁신 액셀러레이터 ‘임팩트스퀘어’와 협력하고 있다. 기아가 전체적인 방향성과 핵심 목표를 설정하면, 임팩트스퀘어는 하모니움 클래스를 운영하는 등 실질적인 지원을 맡는다.
S-OIL은 2006년부터 소방청, 한국사회복지협의회와 함께 ‘영웅지킴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소방청은 대상자 선정과 공식 행사를, 사회복지협의회는 기획과 수혜자 관리를 맡는다. S-OIL은 재정 지원과 함께 캠페인을 통해 국민적 관심을 확산시키는 역할을 한다. 지원 대상도 확대됐다. 2006년 소방영웅을 시작으로, 2008년 시민영웅, 2013년 해경영웅까지 범위를 넓혔다. 지금까지 공상자 치료비, 순직 유족 위로금, 유자녀 장학금, 휴식캠프 등으로 약 145억 원이 4700여 명에게 지원됐다.
이처럼 협업 기반의 전략이 확산되는 가운데, 사회공헌의 고전적 방식이라 할 수 있는 ‘수혜자 직접 지원’을 주요 전략으로 택한 기업은 단 3곳에 그쳤다.
조유현·김규리·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