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4월 23일, 자원봉사활동기본법이 ‘자원봉사기본법’으로 개정됐다. 이번 개정의 핵심은 분명하다. 관 주도의 자원봉사를 민간 중심으로 옮기겠다는 선언이다. 국가 정책을 위한 동원에서 벗어나, 시민의 자발적 선택으로서 자원봉사를 정의하려는 시도다. 정부 직영 체계를 단계적으로 축소하고 민간 위탁을 확대하겠다는 방향 역시 같은 맥락이다. 이 변화는 오랫동안 현장이 요구해 온 것이기도 하다. 이제부터 고민되는 부분이 있다면 법의 취지가 아니라 결과다. 이 법은 자원봉사를 확대하는 법이기보다, 자원봉사 시스템을 다시 설계하는 법에 가깝다. 법이 허용한 3년의 유예기간은 그 재편을 위한 골든타임이다. 앞으로 3년, 자원봉사조직은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새로 만들어야 할까?
무엇보다 달라지는 것은 증명 방식이다. 그동안 자원봉사는 활동의 양으로 평가됐다. 많은 프로그램과 많은 인원을 내세우지 않고선 성과를 증명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제는 왜 자원봉사가 시민의 삶에 필요한지, 그 존재 이유를 설득해야 한다. 참신한 ‘봉사 아이템’을 찾는 방법론에서 자원봉사가 왜 필요한지 존재 이유를 설명하는 존재론이 중요해졌다. 조직의 사명과 전략을 세우는 일에 더 경주해야 할 이유가 추가된 것이다. 이렇게 거대한 담론의 변화를 일선에서 만들어갈 책무가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른바 자원봉사 관리자라고 불리는 자원봉사센터의 담당자들이다.
관리자라는 말은 일본어 ‘칸리샤(管理者)’에서 유래했다. 칸리샤란 질서를 유지하고 사고를 방지하는 역할의 사람을 뜻한다. 이 번역어가 한국 사회에 들어오며 자원봉사의 운영방식과 조직문화를 규정해 버렸다. 실험보다 안정, 변화보다 계획, 관계보다 통제가 우선하는 구조로 굳어진 것이다. 우려되는 부분은 이번 개정이 이 관행을 뒤집기보다 오히려 더 정교하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13개 부처에 흩어져 있는 9개 자원봉사 관리 시스템을 하나로 통합하려는 시도는 효율성을 높일 수 있지만, 동시에 ‘관리의 정밀화, 정교화’를 강화한다. 시스템 통합이 가져올 행정적 효율이 시민사회의 본질인 자발적 역동성을 덮어버리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개정법의 방향이 ‘관리의 정교화’로만 향하고 있다면 ‘변화를 위한 자발적 참여’는 더 멀어지기 마련이다.
자원봉사자는 관리의 대상이 아니다. 자원봉사자는 예우와 동행의 대상이다. 조직의 외부에 있지만, 동시에 가장 중요한 이해관계자이며 잠재적 의사결정 주체다. 역설적으로 조직이 자원봉사자들을 정교하게 관리할수록 이들의 자발성은 약해진다. 개정법은 자원봉사자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데 관심이 쏠려있다. 그러나 자원봉사가 힘을 잃는 순간은 항상 조직이 앞서고 봉사자가 따라갈 때라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자원봉사자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떻게 관계를 맺고 어떻게 동행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법에서 말하는 자원봉사의 인권, 차별금지 등의 보호 차원을 넘어 예우와 파트너십 전략 설계라는 적극적 대응까지 구상할 수 있어야 한다.
민간 위탁 역시 중요한 시험대다. 3년 안에 지자체는 역량 있는 비영리조직을 찾아 위탁을 맡겨야 한다. 그러나 지역 간 격차는 생각보다 크고, 우리 사회의 관행은 상상보다 더 후진적이다. 민관협력은 현장에서 이미 ‘대행’과 같은 동일어가 되었다. 정부가 방향과 KPI를 정하고, 민간은 이를 실행하는 역할에 머물고 있다. 서구 사회에서는 민간 위탁 과정에서 정부가 재정 지원을 하더라도 KPI 설정을 민간에 위임함으로써 시민사회의 역동성을 보장한다. 말이 위탁이더라도 결국 갑과 을의 관계가 되면 자율은 선언으로 그치고 법은 형식이 된다. 재정을 정부에 의존하는 한 자율성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대중모금, 고액모금, 기금운용, 자체 사업 등 재원확보 채널의 다변화는 이제 자원봉사조직의 선택이 아니다. 3년간 체득해야 할 생존 조건이다.
이번 개정은 숙원을 담고 출발했지만 그 내용은 여전히 긴장을 내포하고 있다. 더 많은 참여를 끌어내겠다는 의도와 더 정교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당위 사이의 간극이다. 개정법의 궁극적 목적은 결국 시민의 더 많은 참여일 것이다. 그러나 법이 참여를 만들지는 않는다. 법은 조건을 만들 뿐이다. 준비되지 않은 조직에 이 법은 기회가 아니라 혼란이 될 뿐이다. ‘관리에서 관계로, 동원에서 동참으로’라는 전환을 읽어내는 경영관이 없다면 방향을 잃기 쉽다. 자원봉사의 과거가 ‘아름다운 구속’이었다고 누군가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 반대가 ‘비참한 해방’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재현 한국NPO스쿨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