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나은미래 기자, 자원봉사자가 되다 <8>
KT&G ‘상상나눔 ON-情’ 건강차 세트 기부 봉사활동 현장
“지금부터는 속도전입니다. 옆으로 빨리 넘겨주세요!”
달콤한 귤 향이 마스크를 뚫고 들어왔다. 분명 힙(Hip)하기로 소문난 성수동 ‘KT&G 상상플래닛’인데, 이곳의 공기는 흡사 전투적인 식품 공장을 방불케 했다. 위생모와 앞치마, 마스크와 장갑으로 ‘풀착장’한 기자의 눈앞에는 샛노란 귤이 한 움큼 쌓여 있었다.
지난 3일 오전, 영하의 칼바람을 뚫고 40명의 봉사자들이 이곳에 모였다. KT&G가 주최한 ‘상상나눔 ON-情 건강차 세트 기부 봉사활동’ 현장이다. 이날의 미션은 성동구 어르신들의 겨울을 녹여줄 ‘수제 귤청’ 만들기. “성동구 어르신들이 건강하고 따뜻한 겨울을 나는데 오늘 우리의 봉사가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심영아 KT&G ESG경영실 상무의 인사말과 함께, 봉사가 시작됐다.
‘상상나눔 ON-情’은 KT&G가 2022년부터 매년 연말 소외계층을 지원하기 위해 운영하는 대표 사회공헌 프로그램이다. KT&G는 2011년 임직원의 자발적 기부로 조성되는 ‘상상펀드’를 기반으로 복지 사각지대 해소, 환경보호 등 연간 40억 원 규모의 사회공헌을 펼쳐오다 지난해부터 이를 ‘ON-情’이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묶어 운영하고 있다. 올해는 지난해에 이어 어르신 겨울나기 지원을 위한 ‘건강차 세트’ 만들기를 진행했다.
◇ “쉬는 날에 왜 봉사냐고요? 더 의미 있으니까요”
이날 봉사자들은 상상플래닛 입주사인 소셜벤처 임직원들부터 일반 시민 봉사자들까지 다양했다. 이들은 6개 조로 나뉘어 테이블에 옹기종기 모여 섰다. 기자가 배정된 5조에는 상상플래닛 입주사들이 대부분이었는데, 한 청년 사이트에서 모집 공고를 보고 왔다는 사람도 있었다. 자신을 간호사라고 소개한 문지연(가명) 씨는 2교대 근무 중 쉬는 날을 쪼개 이곳을 찾았다. “수제청 만들기 봉사를 한다길래, ‘어? 이건 안 해본 건데?’ 하고 꽂혔어요. 그냥 집에서 쉬는 것보다 훨씬 의미 있잖아요.”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되자 테이블 위는 그야말로 일사불란했다. 귤청의 핵심은 ‘과육’과 ‘착즙’의 황금비율. 이날 강사로 나선 김민정 오네스트킴 대표는 “식감이 살아있는 과육용 귤과 농도 조절용 착즙 귤을 섞어야 최상의 품질이 나온다”며 “과육 1kg, 착즙액 1kg, 설탕 2kg을 섞으면 4kg 한 통의 귤청이 완성된다”고 설명했다.
역할 분담은 순식간에 이뤄졌다. ‘칼질 고수’와 ‘껍질 벗기기 달인’이 나뉘었다. 칼질에 서툰 기자는 껍질 벗기기를 자처했다. “와, 이 조는 귤 까기 공장이네!” 정신없이 귤을 까다 들려온 칭찬에 어깨가 으쓱했다. 왁자지껄할 줄 알았는데, 다들 숨소리도 죽인 채 귤과 사투를 벌이는 ‘몰입의 현장’이었다. 중간중간 터져 나온 과즙을 몰래 맛보니, 꿀처럼 달았다.
난관은 귤청을 병에 ‘적당한 양’으로 나눠 담는 일이었다. 깔때기를 대고 끈적한 청을 흘리지 않게 담는 작업은 고도의 집중력을 요했다. 겉면에 묻은 설탕과 청을 닦고 병뚜껑을 닫은 뒤 ‘제주감귤청’ 스티커까지 붙이고 나니 제법 그럴싸한 판매용 제품 태가 났다. 우리 조에서만 50개가 넘는 귤청이 순식간에 완성됐다.

◇ 청년 창업가 제품 담긴 ‘건강차 세트’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귤청과 함께 액상 비타민, 핸드크림, 친환경 칫솔·치약 세트까지 한 박스에 담아 포장해야 했다. 이 물품들은 모두 상상플래닛 입주기업인 토마토연구소, 그리닝, 더큐어랩의 제품이다. KT&G가 이들 제품을 구매해 판로를 지원하고, 일부는 기업이 자발적으로 기부해 나눔의 크기를 키웠다.
임장호 KT&G 사회공헌부 프로는 “청년 창업가들의 꿈이 담긴 제품이 어르신들에게 전해지는 ‘일석이조’의 활동”이라고 전했다. 친환경 칫솔 세트를 기부한 김보미 더큐어랩 대표도 “어르신들이 선물을 열어보시며 ‘누군가 나를 신경 쓰고 있구나’ 하는 따뜻함을 느끼셨으면 좋겠다”고 마음을 전했다.

박스 포장에 이어 마지막 보자기 포장 단계에 이르자 현장은 흡사 물류센터를 방불케 하는 ‘속도전’이 펼쳐졌다. “제가 박스 펼칠게요, 기자님이 넣으세요!” 컨베이어 벨트처럼 돌아가는 손놀림 속에 기자는 손이 안 보일 정도로 제품을 담아 넘겼다. 가장 어렵다던 보자기 매듭짓기까지 척척 완성되자, 우리 조는 결국 ‘1등’으로 작업을 마쳤다.

봉사가 끝나자 모두가 “와…” 하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기자와 같은 조였던 지연 씨에게 내년 의사를 묻자 그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스피디함 요구만 조금 덜하면, 당연히 또 하고 싶죠. 하하하.”
이날 봉사를 진행한 상상플래닛 운영사 임팩트스퀘어의 이영인 매니저는 “다들 가내수공업 장인들 같았다”며 “청년들이 어르신의 건강과 평안을 바라는 마음으로 준비한 봉사라 더 의미가 깊다”고 말했다.
상자를 가득 채운 건 귤청과 생필품이었지만, 그 사이를 메운 건 청년들이 꾹꾹 눌러 담은 온기였다.
조유현 더나은미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