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나은미래 기자, 자원봉사자가 되다 <7>
롯데홈쇼핑 ‘드림보이스’ 녹음 봉사 현장
“‘와하하하’를 조금 더 웃는 느낌으로, 자연스럽게 다시 한번 가볼게요.”
“마이크는 멀리 두고, 연기 톤 더 넣어주세요!”
지난달 25일 서울 영등포구 롯데홈쇼핑 본사 녹음실. 기자가 동화집 ‘여름과 가을 사이’를 한 문장 읽자 조정실에서 서지은 그래픽디자인팀 감독의 피드백이 쏟아졌다. 롯데홈쇼핑 대표 사회공헌 프로그램 ‘드림보이스’ 시즌8 녹음 봉사 현장이다.

드림보이스는 시각장애 아동을 위한 음성도서 제작 봉사다. 롯데홈쇼핑이 2016년 한국장애인재단과 함께 시작해 올해로 10년째를 맞았다. 시즌별로 쇼호스트와 음향감독 등 임직원이 참여할 수 있도록 사내 공지를 통해 참여자를 모집한다. 시즌 3부터는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드림보이스 서포터즈’ 제도가 도입됐다. 서포터즈는 한국장애인재단과 함께 취업포털 및 대학생 대외활동 플랫폼을 통해 연 1회 공개 모집하며, 지난해 경쟁률은 약 5대 1에 달했다. 지금까지 총 300여 명의 임직원과 80여 명의 서포터즈가 참여해 동화 196권을 녹음했고, 이를 담은 4450세트가 1700여 개 기관에 전달됐다.
드림보이스 사업을 담당하는 이종열 롯데홈쇼핑 커뮤니케이션팀 책임은 “시각장애 아동의 독서, 학습환경과 장애아동에 대한 인식 개선에 동참하기 위해 10년 째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 10년 차 쇼호스트의 ‘1인 6역’
이날 녹음실에는 10년 차 쇼호스트 이휘진 씨가 등장했다. “하이 큐!” 소리와 함께 녹음이 시작됐다. “그 즈음 나라가 평화로워서 각종 행사가 열렸어. 가장 큰 건 나라시험이었지.” 10분 만에 노인·소년·아저씨 등 여섯 가지 배역을 자유자재로 오갔다. 조정실에선 “역시 다르다”는 감탄이 터졌다. 이휘진 씨는 “롯데홈쇼핑에 입사하기 전, 방송인이 되고 싶어 관련 활동을 찾던 중 점자도서관에서 약 1년간 녹음 봉사를 했다”며 “입사 후에도 비슷한 활동이 있다는 것을 알고 주저 없이 참여했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생 서포터즈에게 “책장을 넘기는 소리도 잡히니 조심해야 한다”며 “그냥 읽는 게 아니라 이야기를 전한다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날 녹음에 참여한 대학생 서포터즈 박성은(23·한양대 에리카 미디어학과) 씨는 “아나운서를 꿈꾸며 목소리를 활용한 봉사를 찾다가 드림보이스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가연(25·성신여대 피아노학과) 씨도 “방송 일을 준비하다가 지인의 추천으로 참여했는데, 제 목소리가 시각장애인 아동을 위한 오디오북으로 남는다는 게 뜻깊다”고 했다.
◇ 낭독의 온기, 교실을 밝히고 가정의 짐을 덜다
녹음 봉사의 가장 큰 어려움은 ‘톤 유지’였다. 긴 책 분량에 여러 배역을 소화하려면 연기 몰입이 필요하다. 이휘진 씨는 “아저씨 배역도 여러 명이라 캐릭터 해석이 달라야 한다”며 “집중 안 하면 큰일 난다”고 웃었다. 박성은 씨는 “130쪽 넘는 책을 매주 나눠 녹음하는데, 톤이 달라지지 않도록 지난 녹음본을 다시 들으며 연습한다”고 귀띔했다.
책 한 권을 완성하기까지는 톤 유지와 연기 몰입, 긴 분량 소화 등 치열한 연습이 뒤따른다고 했다. 기자는 어설픈 녹음에 부끄러웠지만, 서포터즈들은 오히려 뿌듯해했다. 이가연씨는 “아이들이 제 목소리를 듣고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어요”라며 미소 지었다.
봉사자들의 열정 덕분인지, 수혜자들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이종열 책임은 “현장에서는 시각장애 학생들이 듣기만 해도 교과 내용을 따라갈 수 있다며 만족해한다”고 말했다. 특수학교 교사들은 “받아쓰기·암기 등 수업 참여도가 높아졌다”고 했고, 보호자들도 “함께 읽어주는 느낌 덕분에 가정학습 부담이 줄었다”고 전했다.
이번 시즌8에는 지난 8월부터 10여 명의 쇼호스트와 10명의 대학생 서포터즈가 참여해 20권의 책을 녹음하고 있다. 완성된 음성도서는 롯데홈쇼핑 캐릭터 ‘벨리곰’ USB에 담겨 시각장애 아동 지원 기관에 전달될 예정이다. 사업 초기에는 CD 형태로 제작했으나, 2019년부터는 휴대성과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USB로 전환했다.
이종열 책임은 “앞으로 교과 연계 학습형 음성도서를 확대하고, 병원·특수학교·한국장애인재단과 상시 배포망을 구축하겠다”며 “제작 과정에서는 속도·톤 개인화, AI 기반 잡음 제거와 품질 점검 등을 도입하되 낭독의 인간적 온기만큼은 반드시 지켜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조유현 더나은미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