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청년들, 농장에서 배운 식탁의 공존을 아이들과 나누다 [더나미GO]

더나은미래 기자, 자원봉사자가 되다 <5>
티앤씨재단 ‘밥먹차’ 봉사 현장

“이거 실제로도 먹을 수 있는 거예요?”

“팝콘은 다 수입한 옥수수로 만드는거 아니였어요?”

홍성군 구항지역아동센터 푸드트럭 봉사를 하루 앞둔 7월 21일, 20대 청년 봉사자 네 명이 먼저 충남 홍성에 도착했다. 이들은 티앤씨재단 장학생 출신으로, ‘밥먹차’ 프로그램의 지속가능한 먹거리 교육을 직접 진행하기 위해 하루 먼저 농장을 둘러보고 ‘일일 교사’가 되기 위한 수업에 참여했다. 기자 역시 이들과 함께 1박 2일간 봉사자로 참여하며 프로그램을 체험했다.

22일 구항지역아동센터에서 비건 카나페 만들기와 토종 곡물 팝콘 만들기 수업을 위해 봉사자들이 만든 설명판. 수업을 위해 봉사자들은 지속가능한 먹거리에 대한 설명을 듣고 체험학습을 진행했다. /티앤씨재단

직장에 다니는 이가영(20) 씨는 “밥먹차 프로그램에 참가하려고 이틀이나 연차를 썼다”며 “1년에 한 번씩은 봉사에 참여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2022년 시작된 티앤씨재단의 ‘밥먹차’는, 푸드트럭이 지역 복지시설을 찾아가 대상자에게 건강한 한 끼를 전하는 데서 출발했다.

황보혜민 티앤씨재단 사무국장은 “올해부터는 밥먹차 프로그램을 단순한 음식 제공이 아닌, 알럼나이와 아동 모두를 위한 공감 교육 프로그램으로 확장하고자 시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2월에는 알럼나이가 창업한 문해력 교육 스타트업 ‘리디퍼’와 함께 하루 동안 문해력 보드게임 활동과 급식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 땅, 동물, 먹는 사람까지 행복한 먹거리 경험하기

“밭에서 식탁까지 음식이 오르는 모든 여정을 알고 연결해보는 경험이 중요해요. 그러면 농가에게, 환경에게, 또 내 몸에게 이로운 식사란 무엇인지 고민해볼 수 있거든요.”

재단의 대학생 멘토 출신이자 지속가능한 식문화 플랫폼을 만드는 사회적 기업 ‘벗밭’의 백가영(26) 대표가 봉사자들에게 강조하며 말했다. 백 대표는 이번 프로그램의 진행자이자, ‘지속가능한 먹거리 수업’의 메인 강사다. 그의 말에 토종곡물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분류해보며, 쥐이빨옥수수·재팥·앉은키밀 같은 낯선 이름과 마주했다. “쥐이빨옥수수로 팝콘도 만들 수 있어요”라는 말에, 도시 청년들도 생소한 곡물의 세계를 하나씩 알아갔다.

21일 충남 홍성 오와린 농장에서 봉사활동 참가자와 농장 주인 이재영 씨가 함께 밭에 비닐을 덮는 작업을 진행했다. 비닐에는 지난주 내린 빗물이 고여 있어 7명이 달라붙었음에도 비닐을 펼치는데 10분이 넘게 걸렸다. /티앤씨재단

근처 오와린 농장에서는 30여 종의 유기농 채소를 직접 보며 흙내음 나는 식사의 의미를 되새겼다. 비트 하나만 하더라도 붉은 색부터 핑크색, 노란색까지 다양했다. 자주색과 흰색이 번갈아 있는 타겟비트에서는 씁쓸한 맛과 함께 고소한 흙맛이 났다. 농장 비닐 씌우기 작업에선 7명이 달라붙어 가로 10m, 세로 20m 짜리 비닐을 힘겹게 펴야 했다. “이걸 매번 혼자 한다고요?” 농장주인 청년농부 이재영(24) 씨는 웃으며 말했다. “돈도 안 되고 청년 농부에 대한 인식도 부족하지만, 저는 땅을 살리는 농업에 자부심을 느껴요.”

현장 교육은 다음날 아침까지도 이어졌다. 아침 9시, 기온은 이미 30도에 가까웠지만 평촌목장은 유독 시원하게 느껴졌다. 처마 끝에 매달린 호스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고, 젖소들은 그 아래에서 느긋하게 몸을 식히고 있었다. “소들을 위한 워터밤 같은 거예요.” 이동호(38) 평촌요구르트 위생관리팀장의 설명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이날의 주제는 ‘지속가능한 축산’이었다. 좁은 축사, 항생제와 성장촉진제로 길러지는 공장식 사육이 아닌, 최대한 동물 복지를 고려한 방식으로 소를 기르는 현장이었다. 합성 화학물질을 쓰지 않고, 넓은 공간에서 소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한 사육 환경. “비건으로 완전히 살 수는 없어도, 소가 어떻게 자라는지를 알고 나면 식사의 선택이 달라질 수 있어요.” 목장 한켠에서 누군가 조용히 말했다.

◇ 즐겁게, 맛있게 지속가능한 식사를 배운 어린이들

비가 그치고 햇볕이 내리쬐는 오후, 구항지역아동센터에 초등학생 21명과 유치원생 4명이 모였다. 농장과 목장에서 식재료를 직접 보고 들으며 공부했던 ‘학생’들이 이제 ‘선생님’으로 변신했다. 청년들은 두 팀으로 나뉘어 비건 카나페 만들기와 토종 곡물 팝콘 만들기 체험을 진행했다. 기자는 비건 카나페조에 합류했다.

기자가 아이들에게 비건 카나페 만드는 법을 설명하고 직접 도와주는 모습. /티앤씨재단

“비건이 뭔지 아는 사람?”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알아요!” “몰라요!”가 동시에 튀어나왔다. 교실 한쪽에선 “고기 안 먹는 거잖아요”라는 답이 나왔고, 다른 쪽에선 “전 육식이에요”라는 선언이 교차했다. “비건을 하면 1년에 나무 한 그루를 심는 효과가 있어요. 지구를 덜 아프게 만들고, 동물도 덜 아프게 해요.” 설명이 이어지자, 일부 아이들의 표정은 조용히 바뀌었다.

낯선 비건도, 직접 만들자 흥미로 다가왔다. 두유와 식초, 식용유로 만든 비건 마요네즈는 특히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거 평소 마요네즈랑 똑같아요!” 한 아이는 크래커 위에 야무지게 루꼴라와 오이, 딸기잼과 코코아가루까지 얹어 자신만의 요리를 완성했다. 처음엔 “이건 안 먹을래요”라며 고개를 젓던 아이도 기자가 건넨 한 조각을 맛본 뒤, 이내 자기 접시 위에 마요네즈를 듬뿍 펴발랐다.

옆 조에서는 곡물을 팝콘으로 튀기고 종이봉투에 소금을 넣어 흔드는 재미에 빠져 있었다. 청년 봉사자 유지우(19)씨는 “콩이 날라다녀 정신이 없었지만 아이들 반응이 좋아 덩달아 즐거웠다”고 말했다.

구항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이 22일 저녁 밥먹차에서 제공하는 갈비덮밥과 팥빙수를 먹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아이들 뿐 아니라 센터 직원, 마을 주민까지 모여 푸짐한 한 끼를 즐겼다. /티앤씨재단

저녁엔 갈비덮밥과 팥빙수가 배식됐고, 아이들은 줄을 서서 ‘좋아하는 노래 한 소절’이나 ‘인생 최고의 순간’을 말한 뒤 음식을 받아갔다. 부침개와 수박, 겉절이까지 더해져 식탁은 한층 풍성해졌다. 아이들은 “먹는 게 제일 재밌었다”며 웃음을 지었다.

양지현(60) 구항지역아동센터장은 “아이들이 이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며 “이런 문화체험이 아이들에게는 자부심이 된다”고 말했다. 센터의 황은혜(57) 선생님도 “작년에 이어 올해도 잊지 못할 기억을 만들어주셨다”고 말했다.

아이들에게 음식을 주기 전, 먼저 그 ‘한 끼’를 깊이 이해한 건 봉사자들이었다. 이틀간의 체험과 준비는 그 자체로 하나의 학습이었다. 프로그램을 마치면서 “10번 중 한 번이라도 비건 식사를 실천하려고 한다”며 다짐했던 봉사자 이가영 씨는 동료 봉사자들과 비건 식당 정보를 공유하기도 했다.

돌아오는 내내 봉사자 김주영(19) 씨의 말이 내내 남았다. “봉사는 단지 주는 일이 아니라, ‘다시 돌아오는 일’이라는 걸 느꼈어요. 봉사 현장에서 사람들이 웃음을 보내주면 계속 봉사를 할 수 있는 힘이 생기죠. 음식도 마찬가지예요. 땅에서 기른 것들이 다시 우리에게로 돌아와 힘이 된다는 걸 느꼈어요.”

홍성=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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