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탄소 감축 못 하면 보조금도 없다”…현대차·기아, 전기차 시장 경고등

SBTi 미승인 시 보조금 제외…공급망 탈탄소가 수출 경쟁력 좌우

영국 정부가 전기차 보조금 지급 조건으로 ‘과학기반 감축목표 이니셔티브(이하 SBTi)’ 인증을 의무화하면서, 현대차·기아 등 국내 자동차 산업에 비상이 걸렸다. 유럽 주요 경쟁사들이 이미 SBTi 기준을 충족한 가운데, 현대자동차와 기아 등 SBTi 미참여 기업들은 영국 소비자 대상 보조금에서 배제돼 수출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영국 정부가 15일 전기차 보조금 제도(ECG)를 발표하면서, SBTi 인증을 받지 못한 현대차와 기아차는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돼 영국 시장에서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사진은 기아의 전기차 ‘더 기아 EV5’. /현대차 뉴스룸

◇ 英, 과학기반 탄소 감축목표 없으면 전기차 보조금 ‘0원’

영국 정부는 지난 15일(현지 시각) ‘전기차 보조금(Electric Car Grant, ECG)’ 제도를 발표하며, 제조사의 SBTi 승인을 지원 요건으로 명시했다. 이는 2022년 6월 보수당 정부가 전기차 보조금을 폐지한 이후 약 3년 만에 다시 도입한 제도로, 노동당 정부가 전기차 보급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마련한 것이다.

이번 제도에 따르면 소비자는 3만 7000파운드(한화 약 6860만원) 이하의 배터리 전기차에 최대 3750파운드(한화 약 700만원)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지만, 해당 제조사가 SBTi 인증을 받지 않았다면 보조금은 ‘0원’이다. 또한, SBTi 인증이 있어도 차량 조립 위치(30%)와 배터리 생산지(70%)의 전력 온실가스 배출 수준에 따라 차등 지급하는 이중 구조다.

SBTi는 기업의 탄소 감축 목표가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 온도 상승 1.5°C 이내 제한 목표’ 달성에 충분한지를 검증하는 글로벌 이니셔티브다. 기후 과학에 따라 목표의 적절성을 평가하고 있다. SBTi의 한국 파트너인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의 김태한 수석연구원은 “미국의 IRA처럼 SBTi가 수출 시장의 진입 자격을 결정하는 무역 장벽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며 “이번 조치로 보조금이 소비자 가격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만큼, 국내 기업은 시장에서 밀릴 수 있다”고 진단했다.

SBTi는 기업이 파리기후협약 목표를 달성하도록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했는지 검증하고 공개하는 글로벌 이니셔티브로, 영국의 전기차 보조금 제도는 제조사의 SBTi 승인을 보조금 지급의 전제 조건으로 명시했다. /SBTi

◇ 유럽 경쟁사는 준비 완료, 현대·기아는 ‘아직’

이미 폭스바겐, BMW, 르노 등 유럽 완성차 업체들은 SBTi 단기 목표를 승인받았지만, 현대차·기아는 아직 목표 수립을 위한 참여 서약조차 하지 않은 상태다. 특히 영국은 독일에 이어 유럽 내 자동차 시장 2위이며, 전기차 부문에서는 1위를 차지하는 핵심 시장이다. 현대차·기아는 영국 전기차 시장에서 합산 점유율 9~10%를 기록하며 테슬라, BYD 등과 경쟁하고 있다.

업계에선 이번 정책이 당장 모든 기업에 큰 영향을 미치진 않더라도, 향후 전기차 보급 확대와 함께 보조금 혜택에서 소외된 기업의 입지는 점점 좁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테슬라와 중국 BYD 같은 경쟁사 역시 아직 SBTi 승인을 받지 않았지만, 장기적으로는 탄소 감축 전략이 전기차 수출의 관건이 될 것이란 관측이다.

전문가들은 SBTi가 기존의 RE100보다 훨씬 강력한 기준이라는 점에서, 기업들의 대비가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SBTi는 단순히 재생에너지 사용만을 요구하지 않고, 스코프 1·2는 물론 원자재와 부품 공급망까지 포함하는 스코프 3 배출 감축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는 재생에너지 비중이 낮고, 글로벌 공급망의 탈탄소화 수준이 낮은 국가에 생산 기반을 두고 있는 국내 기업에게 더 높은 이행 부담으로 작용한다.

영국은 이미 2021년부터 대규모 공공조달 참여 기업에 스코프 1·2·3을 포함한 감축 계획 제출을 의무화하고 있다. 김태한 연구원은 “영국의 조치는 EU나 미국 내 일부 주로 빠르게 확산될 수 있다”며 “CBAM처럼 유예 기간도 없이 한국산 전기차가 소비자 선택지에서 사라질 수 있는 현실적 위협”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기후변화 대응이 통상압력 수단으로 쓰이는 시대에서 한국은 수동적 방어보다 기후 리더십을 외교와 산업 전략의 핵심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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