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혁신발언대] 지역에서 발견한 미래, 소멸을 넘어 전환으로

임종수 MYSC 시니어 디렉터

“듣기 어려운 젊은이들 목소리가 들려 반가운 마음에 나왔지요.”

경상북도 영주의 한 골목에서 만난 어르신의 말씀이었다. 무더운 날씨에도 집 밖으로 나와 길을 안내해 주시며 건네신 말에 마음이 먹먹해졌다. 젊은이들의 목소리가 ‘듣기 어려운 것’이 되어버린 현실, 그리고 그런 목소리 하나만으로도 반가워하시는 어르신의 마음은 지역이 직면한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대기업에서 정년 퇴직 후, 사회 혁신을 추구하는 회사에서 새로운 출발을 한 나에게 이번 원주-풍기-영주로 이어진 현장 탐방은 특별한 의미였다. 그곳에서 마주한 것은 ‘지방소멸’이라는 무거운 단어로 표현되는 현실이 아니라, 오히려 창조와 혁신이 살아 숨 쉬는 현장이었다.

영주도시재생센터 센터장의 말씀이 울림을 줬다. “지방소멸이라는 표현은 외부의 시각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가능하면 ‘소멸’이라는 단어는 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얼마나 서울 중심의 시각으로 지역을 바라보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재래시장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오랜만에 젊은 사람들이 왔다며 반가워하는 상인들의 모습에서 지역 경제의 현실을 목격했다. 그들의 반가움 뒤에는 점점 줄어드는 젊은 고객들에 대한 아쉬움과 걱정이 숨어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달랐다. 원주의 ‘온세까세로’에서는 시니어와 청년이 함께 반죽을 빚으며 세대 간 협력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고 있었다. 풍기의 ‘디에스푸즈’ 젊은 대표는 아버지의 안정적인 농장을 물려받는 대신, 지속가능한 농업이라는 더 큰 비전을 택했다. 영주 기반 ‘남산선비마을’의 20대 대표는 청년들이 떠나는 마을에서 오히려 청년들이 찾아오는 마을을 만들고 있었다. 봉화의 ‘봉화새댁수리단’ 경력보유여성들은 새로운 시작에 대한 설렘으로 가득했다.

이들 모두는 지역의 제약을 오히려 새로운 기회로 전환하고 있었다. 고령화는 시니어의 풍부한 경험을 활용하는 기회로, 청년 유출은 차별화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계기로, 경력단절은 새로운 도전의 출발점으로 삼으며 각자의 방식으로 혁신을 추구하고 있었다.

◇ 우리 시대의 ‘소멸’ 담론을 다시 생각하다

돌이켜보면, 위기에 처한 것은 지역만이 아니었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유사한 ‘소멸’의 프레임이 작동하고 있다. ‘중년의 위기’, ‘정년퇴직 후의 무력감’, ‘전통 산업의 사양화’, ‘오프라인 매장의 몰락’ 등, 삶의 다양한 국면이 마치 끝을 향해 달려가는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처럼, 이러한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이들이 우리 주변에도 많다. 중년에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이들, 정년퇴직 후에도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며 새로운 역할을 찾는 이들,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기업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결합해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가는 이들 말이다.

나 역시 정년퇴직 후 사회 혁신 기업에서 새로운 출발을 선택했다. 솔직히 말하면, 이런 기회를 얻은 것은 정말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베이비 붐 세대가 대거 은퇴하는 지금, 나 같은 시니어에게 새로운 역할을 제공하고 포용하는 조직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바로 이런 조직의 존재야말로, 우리 사회가 주목해야 할 지점이다. 사회가 정해 놓은 ‘은퇴’라는 프레임을 거부하고, 20~30대 동료들과 함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일에 참여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베이비 붐 세대의 경험과 지혜를 사회적 자산으로 활용하는 혁신적 접근이며, ‘소멸’이 아닌 ‘전환’의 구체적인 실천이었다.

◇ 전환의 시대,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관점의 전환이다. ‘소멸’이라는 외부의 시각 대신 ‘변화’와 ‘전환’이라는 내부의 동력에 주목해야 한다. 지역도, 개인도, 기업도 기존의 틀을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을 상상하고 실현할 때 진정한 혁신이 일어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나이, 지역, 성별, 경력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상상력이다. 젊은이들의 목소리가 ‘듣기 어려워진’ 지역에서도, 정년퇴직을 앞둔 개인에게도, 전통적 비즈니스 모델이 흔들리는 기업에도 말이다.

특히 베이비 붐 세대의 대규모 은퇴는 우리 사회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이들의 풍부한 경험과 지혜를 ‘과거의 유산’으로만 여기지 않고, 사회 혁신의 동력으로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나를 받아준 조직처럼, 시니어의 가치를 존중하고 젊은 세대와의 협업을 통해 시너지를 만드는 모델들이 더 많이 나타나야 한다.

그 상상력의 출발점은 결국 사람이다. 그곳에서 살아가며 매일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는 사람들, 기존의 프레임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들 말이다. 이들이 만들어가는 것은 단순한 비즈니스 모델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패러다임이다.

영주에서 만난 어르신의 반가운 인사, 재래시장 상인들의 따뜻한 환대, 그리고 지역 곳곳에서 만난 혁신가들의 뜨거운 열정. 이 모든 순간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소멸’은 없다. 다만 ‘전환’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전환의 주체는 바로 우리 자신이다.

임종수 MYSC 시니어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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