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1주년 인터뷰] 엄윤미 아산나눔재단 이사장
‘프론티어 기업가정신’으로 재단 안팎 재정비
“우리가 하는 사업이 지금 이 사회에 정말 필요할까요? 영향력은 충분할까요?”
엄윤미 아산나눔재단 이사장이 지난해 7월 부임한 이후, 재단 내부는 수차례 질문의 물결로 흔들렸다. 수년간 축적된 프로그램을 되짚고, 조직의 방향성을 다시 묻는 워크숍이 이어졌다. 그 끝에서 도출된 키워드는 ‘프론티어 기업가정신’이었다. 재단이 지금껏 지원해온 창업가와 사회혁신가들, 그리고 ‘시련이 있으면 길을 만들라’던 아산 정주영 창업자의 철학이 하나로 맞물린 결과였다.
“익숙한 틀에 안주하지 않고, 사회의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넘어 먼저 도전하며, 스스로 길을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바로 ‘프론티어 기업가정신’입니다. 이는 창업가뿐 아니라 학생, 직장인, 활동가 등 누구에게나 필요한 ‘삶의 기술’이기도 합니다.”

엄 이사장은 ‘프론티어’라는 말에 각별한 무게를 둔다. 기술 발달과 사회 환경 변화로 인해 더 많은 이들이 창업과 창작에 나설 수 있게 된 시대, 그는 “변화의 주체가 다양해지는 지금이야말로 기업가정신이 가장 필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 ‘개척’의 이름으로 정주영 창업경진대회도 개편
아산나눔재단의 대표 프로그램 ‘정주영 창업경진대회’에도 이러한 관점이 적용됐다. 기존의 성장 단계 구분을 벗어나 ▲글로벌 ▲기후테크 ▲다양성 ▲예비창업 등 4개 트랙으로 재편, 각 영역의 선구자를 키우는 구조로 개편했다.
엄 이사장은 “정주영 회장의 어록 중 ‘개척(Frontier)’에 주목했다”며 “다양한 영역에서 새롭게 도전하는 창업가들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데 중점을 두게 됐다”고 설명했다. 개편된 방식은 올 4분기부터 적용된다.
국내 스타트업의 글로벌 진출을 위한 실험도 시작됐다. 아산나눔재단은 최근 실리콘밸리에 ‘마루SF’를 조성해 시범 운영에 들어갔다. 재단의 기업가정신 플랫폼 ‘마루(MARU)’에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의 이니셜을 더해 이름 붙인 이 공간은, 국내 스타트업이 현지 시장을 짧은 기간 안에 경험하고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커뮤니티 허브다.
특히 창업 초기 단계 팀을 대상으로 1~2개월간 단기 주거 공간을 제공해, 현지 적응과 사업 확장을 돕는 데 초점을 맞췄다. 지난 5월부터 인공지능(AI),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등 다양한 분야의 스타트업 20여 곳이 입주했으며, 올해 말 정식 개관을 앞두고 있다.
◇ ‘사람’으로 다시 짜는 조직, 질문으로 이끄는 리더십
외형적 사업 개편과 더불어, 재단 내부의 일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최근 재단은 내부 역량 평가 체계를 전면 개편했다. “비영리 조직이 성과를 어떻게 정의하고 구성원들의 성장을 어떻게 인정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늘 존재합니다. 저희도 전문 컨설팅을 받아 새로운 기준을 만들었고, 이제 막 적용해 나가는 중입니다.”
엄 이사장은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가까이에서 듣고, 조직이 변화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민감하게 살피는 것이 이사장으로서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변화가 가능했던 배경에는 ‘명확한 중심 가치’와 ‘사람’이 있었다. “기업가정신이라는 뚜렷한 기준이 실제 의사결정에 작동하고, 구성원 모두가 진심을 담아 한 발짝 더 나아가려는 태도를 갖고 있습니다. 그 진심이 파트너들에게도 신뢰로 전해졌고, 지금의 아산나눔재단을 만든 원동력이 됐습니다.”
그는 앞으로의 리더십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좋은 질문을 던지고, 잘 듣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모든 현장을 직접 함께할 수는 없잖아요. 누군가 먼저 말해주지 않으면 놓치는 일이 많아요. 그래서 더더욱 ‘말하고 싶은 사람’, ‘대화하고 싶은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조유현 더나은미래 기자
[임팩트 Q&A] 엄윤미 이사장이 말하는 임팩트와 기업가정신
―재단의 임팩트는 무엇을 기준으로 삼고 있나요.
“재단은 임팩트를 ‘변화를 만들어내는 힘’으로 정의합니다. 단일한 수치보다는 사람과 조직의 전 생애주기에서 나타나는 의미 있는 변화의 흐름과 연결성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핵심 가치인 ‘도전·성장·나눔’이 사회 전반에 얼마나 확산되고 있는지를 핵심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 임팩트를 어떻게 측정하고 계신가요.
“프로그램별 참가자 수, 투자 유치, 고용 창출 등 정량 지표와 함께, 인터뷰와 후속 모니터링을 통해 정성적 변화도 함께 살펴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도전’은 창업과 사회혁신에 첫발을 내딛는 참여자 수나 행사 규모로, ‘성장’은 스타트업의 매출 증가, 투자 유치, 고용 창출로, ‘나눔’은 멘토링이나 후속 지원을 통한 생태계 환원으로 측정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수료자와 알럼나이들이 자발적으로 멘토로 참여하고 있으며, 이는 ‘선행의 선순환(pay it forward)’ 문화의 확산이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사회적 파급력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아산의 기업가정신이 사회 전반에 확산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길이 있다면 길을 찾고, 찾아도 없으면 만들면 된다’는 아산 정주영 창업자의 개척 정신은 지금의 창업가와 사회혁신가 모두에게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입니다. 이 정신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문화, 새로운 도전에 대한 사회적 지지, 그리고 서로의 성장을 응원하는 커뮤니티가 필요합니다. 아산나눔재단은 앞으로도 창업가와 사회혁신가가 더 넓은 무대에서 가능성을 발견하고, 마음껏 도전하고 성장하며 나눌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