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 너머의 진짜 변화, ‘임팩트’를 측정하는 사람들

숫자가 설명하지 못한 변화의 흔적을 좇다
임팩트리서치랩, ‘보이지 않던 변화’를 포착한 5년의 여정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현장에는 분명한 성과가 존재하지만, 주관적이고 보이지 않다 보니 설명하기 어렵고, 그만큼 제대로 된 평가나 보상도 이루어지지 않는구나.”

2013년, 한 사회적 기업 컨설팅 과정에서 신현상(55)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고민에 빠졌다. 숫자로만 설명하기엔 부족한,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사회적 가치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이 ‘임팩트리서치랩’의 출발점이었다.

회계사 출신의 신현상 교수는 대학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며, 늘 숫자와 설득 사이를 고민했다. 사회문제 해결 현장에서 마주한 ‘보이지 않는 성과’들은 기존의 재무적 틀로는 설명되지 않았다. 그는 회계와 재무에 ‘가치를 읽어내는’ 마케팅의 관점을 더하면, 사회적 성과 역시 질문과 척도를 통해 측정하고 재무성과와 연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쌓인 문제의식은 하나의 방향이 되었고, 2019년 3월 한양대 교수 창업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사회성과 측정과 임팩트 평가를 전문으로 하는 연구기관 ‘임팩트리서치랩’을 설립했다.

◇ 임팩트를 짓고, 캐고, 조각하다

임팩트리서치랩의 ‘1호 직원’은 당시 한양대 파이낸스경영학과에 재학 중이던 김하은(29)씨였다. 사회혁신융합전공 수업을 들으며 “경영학 전공자로서 사회에 기여하는 길은 무엇일까” 고민하던 그는 임팩트 측정을 접한 뒤, 인턴으로 입사해 조직의 시작을 함께했다.

“어떤 자원이 생태계로 흘러 들어오고, 그것이 잘 관리돼 적절한 곳에 배분되면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흐름에 기여하고 싶었어요. 그 일이 사회문제 해결이나 임팩트 분야와 관련된 일이라면 더 의미 있을 것 같았고요.”

2020년, 미국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정책학 석사 과정을 마친 이호영(35)씨도 합류했다. 대학 시절 청년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해 비영리단체 ‘십시일밥’을 만든 그는 “내가 실제로 만들어낸 변화만큼만 이야기하고 싶다”는 문제의식에서 임팩트 측정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취약계층에 식권을 나눠주는 단체를 운영하면서 인터뷰를 많이 했어요. 그런데 점점 괴리감이 생기더라고요. 내가 실제로 한 건 식권 몇 장을 준 것뿐인데, 인터뷰 내용은 마치 ‘마틴 루서 킹’처럼 거창하니까요.” 귀국 후 그는 임팩트리서치랩에 ‘2호 직원’으로 합류했다.

임팩트리서치랩의 이호영·김하은 신임 공동대표(왼쪽, 가운데)와 설립자 신현상 한양대 교수(오른쪽). 임팩트를 단순히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조직과 생태계의 방향까지 함께 설계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윤선진 작가

이들은 자신들의 일을 ‘지식을 짓고, 캐내고, 조각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같이 먹으면 힘이 나는 ‘밥’ 같은 지식을 짓는 이가 되기도 하고, 곡괭이가 부러질 때까지 땅을 파는 광부처럼 ‘다이아몬드’를 캐내기도 한다. 때로는 대리석 속에 갇힌 ‘천사’를 꺼내기 위해 끊임없이 망치를 두드리는 미켈란젤로가 된다. 조직과 사업 안에 숨어 있는 ‘밥’과 ‘다이아몬드’와 ‘천사’ 같은 임팩트를 찾아내는 것이 이들의 일이다. 그래서일까. ‘임팩트’라는 단어 앞에서는 유독 비유를 아끼지 않는다. 그만큼 신중하고, 정교하며, 쉽게 말할 수 없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임팩트리서치랩이 주목하는 건 ‘아웃컴(Outcome)’이다. 비교적 짧은 기간 안에 달성할 수 있고, 수치로 측정 가능한 사회성과 지표다. 조직이나 사업이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변화로 향하는 이정표이기도 하다. 이들은 각 조직의 특성에 맞춘 임팩트 측정과 평가 도구를 개발해, 공공과 민간이 데이터 기반으로 합리적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지원한다. ‘사회적 영향’이라는 막연한 개념도 이들의 손을 거치면 숫자와 서사 사이에서 ‘설명 가능한 변화’로 정리된다.

◇ 임팩트를 설계하는 연구, 전략을 바꾸는 도구

임팩트리서치랩의 손을 거친 연구는 다양하다. 공공기관부터 비영리조직까지, 측정되지 않았던 사회적 가치를 드러내는 일이 그들의 일이다.

대표적인 프로젝트 중 하나는 현재 현대차정몽구재단과 함께 진행 중인 ‘임팩트 넥서스(Impact Nexus)’ 연구다. 이 연구는 포드재단(Ford Foundation), 게이츠재단(Bill & Melinda Gates Foundation), 록펠러재단(Rockefeller Foundation) 등 해외 주요 재단의 운영 사례를 참고해, 임팩트 평가 시스템을 조직의 전략과 정체성, 현장 실행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구조를 설계하고 있다. 특히 평가와 전략이 따로 움직이는 ‘디커플링(decoupling)’ 현상을 줄이고, 재단이 생태계 내에서 어떤 역할을 해왔고 앞으로 어떤 비전을 가질 수 있는지를 함께 설계하는 시도다.

또 하나는 ‘아름다운재단 청소년 주거지원사업’에 대한 성과 분석 연구로, 기존의 정량 데이터뿐 아니라 당사자 인터뷰와 정성적 자료를 결합해 청소년 주거 불안 문제를 다층적으로 해석하고자 했다. 단순 측정을 넘어 데이터를 ‘어떻게 읽고,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까지 안내하는 내부 활용 가이드를 포함했다.

비영리 스타트업을 다룬 ‘아산 비영리스타트업 성과관리’ 연구는 생태계에 새롭게 진입한 조직들의 흐름을 관찰하고, 그 변화를 지원 구조와 함께 조망한 작업이다. 이외에도 경기도사회적경제원과 함께한 사회성과 측정 연구는 경기도 내 50개 조직을 대상으로 수행됐으며, 성과 지표 해설서를 제작해 타 지자체에서도 실무 지침서로 활용되고 있다.

이처럼 현장의 사회적 가치를 데이터로 해석하는 과정에서, ‘누가’, ‘어떻게’ 이 작업을 주도할지에 대한 고민도 깊어졌다. 그 고민의 결과로, 올해 7월 임팩트리서치랩은 설립 5년 만에 리더십 체제를 전면 개편했다. 설립자인 신현상 교수가 한발 물러서고, 오랜 시간 실무 현장에서 경험을 쌓아온 두 명의 구성원이 공동대표직을 맡게 된 것이다.

신임 리더십을 맡은 김하은·이호영 대표는 “임팩트를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조직과 생태계의 방향을 함께 설계하는 파트너가 되고 싶다”며, “성과를 연구하는 동시에, 사람도 성장하는 조직을 만들겠다”는 경영진으로서의 포부를 드러냈다. 앞으로는 연구와 운영을 넘나드는 유연한 체계를 바탕으로 더 넓고 깊은 임팩트를 설계해 나갈 방침이다.

김규리 더나은미래 기자

※ 90년대생 리더십의 등장은 임팩트 생태계 안에서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더나은미래>는 임팩트리서치랩의 리더십 3인과 좌담회를 열고, 체제 개편의 배경과 의미를 심층적으로 짚었습니다. 세대 교체가 던지는 질문과 새로운 리더십의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는 2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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