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혁신가의 두 가지 언어] 임팩트 스케일업, 스타트업 문법을 거부하다

이호영 임팩트리서치랩 공동대표·한양대 겸임교수

‘스케일업(Scale-up)’은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단어다. ‘스타트업(Start-up)’이 말 그대로 사업을 시작하는 단계라면, 스케일업은 그 이후의 성장 단계, 즉 제품과 서비스를 더 많은 사람에게 제공하며 사업의 규모를 키워나가는 과정을 뜻한다.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제품 판매량이나 사용자 수를 늘려 기업의 가치를 높이는 것을 스케일업의 성공으로 본다.

그렇다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조직에게도 같은 공식이 통할까? 사회혁신 조직의 목적은 단순한 매출 성장이나 이윤 증대가 아니라,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지속가능한 변화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회혁신 조직은 제품이나 서비스 보급을 넘어 제도와 정책의 개선 등 구조적 변화를 추구한다.

이런 이유로 사회혁신 조직에게 ‘더 많이 판매하는 것’이 곧 ‘더 큰 임팩트’를 의미한다고 보긴 어렵다. 사회혁신의 관점에서 성장과 성공은 단순한 양적 확장이 아니라, 사회문제가 발생하는 구조를 이해하고 그것을 바꾸는 방향으로 정의될 수 있다.

◇ 사회혁신 관점에서 다시 정의한 ‘스케일업’

캐나다의 맥코넬 재단(McConnell Foundation)은 스타트업의 성장 논리와는 다른, 사회혁신의 관점에서 스케일업을 새롭게 정의한다. 사회혁신형 스케일업은 단순히 제품 판매 규모를 키우는 것이 아니다. 법·정책·제도의 변화를 통해 사회문제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고, 더 많은 사람에게 긍정적 영향을 확산시키는 과정을 의미한다.

반면, 성공적인 모델이나 서비스를 다른 지역·조직으로 복제·확산하는 것은 ‘스케일아웃(Scale-out)’으로 구분된다. 또 사람들의 인식·태도·행동이 바뀌며 사회·문화적 차원에서 변화가 뿌리내리는 것을 ‘스케일딥(Scale-deep)’이라 부른다.

예를 들어, 경력보유여성의 재취업을 지원하는 사회혁신 조직을 떠올려보자. 이 조직의 목표는 출산이나 육아휴직 이후에도 여성이 경력을 이어가고, 자신의 전문성을 다시 사회 속에서 발휘하도록 돕는 것이다. 전통적인 스타트업의 문법이라면 더 많은 여성과 기업을 연결해 일자리 매칭 건수를 늘리는 것이 곧 ‘스케일업’의 성과로 간주될 것이다. 사용자 수와 매칭 건수, 시장 점유율의 확대가 성공의 기준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양적 확산만으로는 사회문제 해결에 근본적으로 다가가기 어렵다. 아무리 많은 매칭이 이루어져도, 여성의 경력 단절을 반복적으로 만들어내는 사회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면 문제의 뿌리는 여전히 남기 때문이다.

사회혁신 관점에서의 스케일업은 이 지점에서 방향을 달리한다. 여성의 커리어를 지원하는 제도·정책·절차를 정비하고, 이를 통해 여성이 사회 시스템 안에서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것이 사회혁신 스케일업의 핵심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제도와 정책이 마련돼도, 기업이 여전히 출산과 육아에 대해 차별적 인식을 갖고 있거나 가정 내 돌봄 책임이 여성에게 과도하게 지워져 있다면 변화의 폭은 제한적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스케일딥(Scale-deep)이다. 스케일딥은 사회 구성원의 인식·태도·가치관 변화를 촉진함으로써, 변화가 사회문화적으로 뿌리내리도록 만든다.

◇ 임팩트의 규모화를 위한 스케일 전략

맥코넬 재단은 ‘임팩트 규모화를 위한 학습그룹(Scaling for Impact Learning Group)’을 운영하며 여러 사회혁신 조직과 함께 임팩트를 어떻게 지속 가능하게 확장할 수 있을지를 탐구했다.

초기에는 대부분의 조직이 자사의 성공 모델을 복제·확산하는 ‘스케일아웃’ 전략에 집중했다. 그러나 학습과 교류를 거치며, 점차 많은 조직이 깨닫게 됐다. 사회문제의 근본 원인과 제도·규범의 변화를 함께 다루지 않으면, 규모 있는 임팩트를 만들기 어렵다는 사실을.

스케일아웃 방식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일시 완화’에 머물 위험도 있었다. 사업이 중단되면 변화가 멈추거나 되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한계를 인식한 조직들은 스케일아웃에서 스케일업과 스케일딥 전략으로 방향을 바꿨다. 일부는 조직의 미션과 목표를 재정의하며 임팩트의 방향성 자체를 새롭게 설정했다.

그렇다고 스케일업이나 스케일딥으로의 전환이 스케일아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법과 제도, 사회 규범과 인식의 변화는 단숨에 이뤄지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사각지대도 생긴다. 따라서 취약계층에게 필요한 제품과 서비스를 확산하려는 스케일아웃 노력 또한 필수적이다. 결국 스케일아웃·스케일업·스케일딥은 상호보완적 관계이며, 세 전략을 적절히 조합해야 임팩트의 규모화를 앞당길 수 있다.

◇ 네 번째 축, ‘스케일 어크로스(Scale Across)’

스케일아웃·스케일업·스케일딥은 사회혁신 조직이 임팩트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그러나 사회문제가 점점 더 복합적이고 상호연결적으로 진화하는 오늘날, 이 세 가지 축만으로는 임팩트 규모화의 전 과정을 설명하기 어렵다.

이에 필자는 네 번째 축, ‘스케일 어크로스(Scale Across)’를 제안한다. 스케일 어크로스는 사회문제를 개별 조직의 사업 단위로만 다루지 않고, 문제 해결에 필요한 사회적 가치사슬(Value Chain) 전반에서 구조적 공백을 메우고 연결성을 높이는 접근을 의미한다.

사회적 가치사슬이란 사회문제가 발생하거나 해결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요인과 주체들이 맞물려 작동하는 연쇄적 구조를 말한다. 오늘날의 사회문제는 단일 주체가 단일 해법으로 풀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따라서 조직은 자신의 사업 영역을 넘어,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가치사슬의 인접 단계를 함께 다루며 시너지를 만들어야 한다.

이런 접근은 조직 내부에서 직접 추진될 수도 있고, 가치사슬 전반에 걸친 다른 조직과의 협업을 통해 구현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빌 앤 멀린다 게이츠 재단(Bill & Melinda Gates Foundation)은 말라리아 근절을 위해 백신 연구·생산·운송 체계·현지 보건 인프라 등 관련 가치사슬을 유기적으로 다루며 문제의 근본 구조를 바꿔가고 있다.

이처럼 사회적 가치사슬 전반의 다양한 요소를 ‘가로로 연결(Scale Across)’하고 확장해 접근하는 시도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가 스케일아웃·스케일업·스케일딥 전략과 맞물릴 때, 보다 규모 있고 지속가능한 임팩트가 가능해질 것이다.

이호영 임팩트리서치랩 공동대표·한양대 겸임교수

필자 소개

임팩트를 측정·평가하는 전문 기관인 (주)임팩트리서치랩에서 공동대표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한양대학교에서 겸임교수로 재직하며 대학생들에게 지속가능경영과 소셜벤처 창업, 임팩트 측정에 대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대학교 재학 시절 취약계층 청년들에게 무료 식권을 전달하는 비영리단체 ‘십시일밥’을 설립했고, 현재는 자립준비청년들에게 무료 주거지를 제공하는 비영리단체 ‘십시일방’을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