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대학교에서 사회혁신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이번 학기에 들은 수업은 ‘사회적 가치의 경제학’이었다. 사회문제 해결의 성과를 경제학적으로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사회적 가치는 어떤 방식으로 측정되고 보상될 수 있는가를 다루는 수업이었다.
수업을 들으며 한 가지 생각이 더 명료해졌다. 우리는 탄소를 줄인 성과를 측정하고 거래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사회적기업이 창출한 사회성과 역시 측정하고 보상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청년이 첫 경력을 얻도록 만든 성과는 왜 측정하고 보상할 수 없을까.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청년들이 졸업 후 첫 일자리를 얻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11개월에 달한다. 어렵게 첫 직장에 들어가도 평균 근속기간은 1년 7개월 남짓에 불과하다. 첫 일자리를 얻는 데는 1년 가까이 걸리지만, 정작 첫 경력은 2년을 채우지 못하고 마무리되는 셈이다. 이 짧은 통계 숫자 뒤에 있는 청년의 낙담과 불안을 우리는 더 깊이 들여다봐야 한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하다. 이 사회에 내 자리가 과연 있을까?” 서른 살, 첫 직장에 들어가기 몇 년 전 일기장에 적어두었던 문장이다. 서른이 되도록 직장을 갖지 못한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나 역시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 청년 실업이 아니라 ‘첫 경력 사다리의 붕괴’
청년 고용 문제는 단지 일자리 수의 부족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본질은 청년이 ‘첫 경력’을 얻는 난이도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졌다는 데 있다.
첫 직장은 단지 월급을 받는 곳이 아니다. 직무를 배우고, 조직 안에서 일하는 감각을 익히며, 무수한 실수와 피드백을 통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공간이다. 이때 쌓인 1~3년의 경험은 이후 커리어를 지탱하는 기초 체력이 된다.
그러나 지금의 노동시장은 이 첫 기회를 쉽게 내어주지 않는다. 기업은 당장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경력직을 원한다. 특히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에게 한 명의 채용은 생존이 걸린 결정이다. 청년을 채용하면 교육훈련 비용과 조직 적응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 애써 키워놓은 인재가 더 나은 조건을 찾아 떠날 가능성도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처음부터 검증된 경력자를 찾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 된다.
정부도 다양한 청년고용 지원정책을 운영해왔다. 대표적으로 일정 기간 인건비를 보조하는 방식이 있다. 분명 필요한 정책이다. 그러나 6개월이나 1년 남짓한 지원만으로 청년이 온전한 경력을 형성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모두가 이 합리적 선택을 좇을 때 사회는 어떻게 될까. 청년은 첫 경력을 쌓을 기회를 잃고, 기회가 없으니 다음 채용에서도 밀린다. 기업은 다시 “쓸 만한 경력자가 없다”고 말한다. 이 악순환은 개인의 불운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
1990년대 이후 사회 진입기에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지 못해 평생 불안정한 고용과 저소득에 머물게 된 일본의 ‘취업빙하기 세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나는 이 현상을 ‘청년 실업’이 아니라 ‘첫 경력 사다리의 붕괴’라고 부르고 싶다.
취업이 늦어진다는 것은 단지 몇 달치 소득이 줄어드는 문제가 아니다. 경력 형성과 소득 경로, 자산 축적이 도미노처럼 지연된다는 뜻이다. 이는 결국 주거, 결혼, 출산 등 생애주기 전반의 지연과 포기로 이어진다. 첫 사다리의 붕괴는 그다음 사다리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가 어떻게든 피해야 할 시나리오다.
◇ 기업도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렵다
기업 입장에서도 인재를 직접 키우지 않고 외부 수혈에만 의존하면 내부 인재 파이프라인이 마르게 된다. 조직은 점차 노화되고, 새로운 감각과 질문을 받아들이는 힘을 잃는다. 청년을 키우는 일은 비용이지만, 동시에 기업과 산업 생태계를 살리는 투자다.
문제는 이 투자의 부담이 지금은 개별 기업, 특히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에게 과도하게 전가되어 있다는 점이다. 결국 지금의 구조는 청년에게는 첫 경력 진입 지연을, 기업에게는 육성 비용 부담을, 사회에는 장기적인 인재 손실과 미래 산업 인재 부족이라는 과제를 남긴다.
그래서 질문의 패러다임을 바꿔볼 필요가 있다. “청년을 몇 명 채용했는가”가 아니라 “청년이 첫 일자리에서 실제로 경력 자산을 형성했는가”를 물어야 한다. 그리고 그 성과의 혜택을 함께 누리는 사회가 함께 보상하는 구조를 만들 수는 없을까.
◇ 청년 채용의 사회성과 보상, ‘공공형 SPC’의 상상
이는 완전히 새로운 상상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고 보상해온 민간의 실험이 있다. SK가 추진해온 ‘사회성과인센티브’(SPC)가 대표적이다. 사회적기업이 창출한 사회적 가치를 화폐 단위로 측정하고, 그에 비례한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방식이다. 가치를 말로만 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측정하고 가격을 매겨 보상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청년 고용에도 이와 같은 접근을 적용해볼 수 있다.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이 청년을 생애 첫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3년 동안 고용을 유지하며, 직무훈련과 역량개발을 지원해 독립적인 경력자로 성장시키는 데 성공했다면 이를 사회성과로 인정하는 것이다.
단순 채용 건수가 아니라, 한 청년이 노동시장에 안정적으로 안착하도록 만든 성과에 대해 가칭 ‘청년경력형성크레딧’(Youth Career Formation Credit)을 발급하는 구조다.
중요한 것은 청년 개인이 거래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거래되는 것은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이 창출한 검증 가능한 인재육성 성과다. 한 명의 청년이 첫 정규직 일자리에서 3년의 경력 자산을 형성하도록 만든 사회적 기여를 하나의 가치 단위로 인정하자는 것이다.
◇ ‘청년경력형성크레딧’은 어떻게 작동할까
크레딧의 가치는 공공비용 절감 효과, 세수 증가 효과, 기업의 훈련투자 보전 효과 등을 종합해 산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1크레딧당 약 1000만~1500만 원 수준의 사회적 가치로 평가하는 방식도 검토할 수 있다. 발급된 크레딧은 대기업, 공공기관, 민간재단 등이 구매할 수 있도록 하되, 구매 즉시 소각하도록 설계해야 한다.
이 크레딧이 대기업의 직접 고용을 대체하는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대기업은 자체 청년 채용을 유지하면서, 공급망과 산업 생태계 안에서 청년들이 첫 경력을 얻도록 돕는 추가적 사회적 책임 차원에서 크레딧 구매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가 이 크레딧 구매 실적을 대기업의 동반성장지수 평가, ESG 공시 인센티브, 세제상 우대와 연계해준다면 민간 참여는 훨씬 현실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일자리를 거래 가능한 사회성과로 만들 때는 안전장치도 필수적이다. 먼저 추가성(Additionality)의 원칙이 필요하다. 원래 채용할 인원을 채용하고 크레딧만 받는 일을 막기 위해, 최근 3년 평균 청년 채용 규모를 초과한 채용이나 업계 평균 이상의 고용 유지 성과를 달성한 경우에만 크레딧을 인정해야 한다.
고용의 질(Job Quality)도 보장해야 한다. 임금체불, 부당해고, 직장 내 괴롭힘 등이 발생한 기업은 참여 단계에서 배제해야 한다. 단순히 고용 유지 기간만 볼 것이 아니라 임금상승률, 직무역량 향상도, 교육훈련 수준 등을 함께 평가해야 한다. 청년을 오래 붙잡아 두는 기업이 아니라, 청년을 실제로 성장시키는 기업이 보상받아야 한다.
취약청년 승수(Multiplier) 시스템도 필요하다. 성과 달성이 쉬운 청년만 채용하는 역작용을 막기 위해 가중치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지역에서 지역 청년을 고용한 경우 1.2배의 크레딧을 부여하고, 사회적기업이 취약청년을 고용한 경우 1.5배의 크레딧을 제공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사회성과 거래가 또 다른 배제의 장치가 되지 않도록 설계해야 한다.
◇ 모든 상상을 동원해야 최우선 순위가 된다
얼마 전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청년 고용 상황 개선을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두겠다”고 말했다. 어떤 정책이 최우선 순위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기존의 접근을 더 열심히, 더 많이 반복한다고 상황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기는 어렵다. 최우선 순위라면 과거에는 생각하지 않았던 상상과 특단의 조치도 필요하다.
‘청년경력형성크레딧’에서 거래되는 것은 청년이 아니라 사회적 기여다. 일자리를 ‘크레딧’화한다는 표현에 거부감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거래되는 것은 청년의 노동력이나 미래가 아니다. 청년의 첫 경력 형성을 가능하게 한 기업과 생태계의 사회적 기여다.
우리는 이미 탄소를 감축한 성과를 측정하고 거래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환경성과만 사회성과가 아니다. 한 청년이 노동시장에 안착해 3년의 경력을 쌓고, 평생의 삶을 꾸려갈 기반을 얻는 것 역시 그에 못지않은 사회적 가치다.
‘사회적 가치의 경제학’이 가르쳐준 것은 가치가 측정될 수 있다는 사실만이 아니다. 사회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을 보상하는 방식에 따라 사람들의 행동도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청년 고용을 비용으로만 보면 보조금의 대상이 되지만, 가치로 보면 우리 사회가 함께 투자해야 할 미래 자산이 된다.
청년 채용의 난제를 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보조금만이 아니라, 청년을 키운 성과를 가치로 인정하는 새로운 ‘경제학’일지 모른다.
김정태 엠와이소셜컴퍼니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