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엘니뇨’에 세계 물가 비상…신흥국 성장·아프리카 경제 흔든다

고유가 겹치면 내년 세계 물가상승률 0.3%p 상승 전망
아프리카 경제 손실 100억~200억 달러…피해국 GDP 1~2% 감소

강력한 엘니뇨로 내년 세계 물가상승률이 기존 전망보다 0.3%p 높아지고 아프리카 경제가 최대 200억 달러(약 29조4000억 원) 손실을 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농업과 어업의 피해가 식품 가격과 금리, 성장률과 국가 재정으로 번질 수 있다는 분석이 잇따른다.

엘니뇨는 적도 중·동부 태평양의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높아져 세계 강수와 기온 분포를 바꾸는 현상이다. 미국 해양대기청(NOAA)에 따르면 지난 7월 중·동부 적도 태평양의 넓은 해역에서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1℃ 이상 높았고, 남미 연안에 가까운 해역은 편차가 2.7℃에 달했다. NOAA는 올해 10~12월 엘니뇨가 ‘매우 강한’ 단계에 이를 확률을 81%로 내다봤다. 엘니뇨 상태가 2027년 이른 봄까지 이어질 확률은 97%로 제시했다.

2026년 강하게 발달한 엘니뇨로 세계 곳곳에서 폭우와 가뭄, 고온 현상이 이어지며 농업·어업과 식품 물가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Unsplash

◇ 식량값 올라 세계 물가·금리까지 압박

JP모건은 지난 24일(현지시각) 발표한 분석에서 매우 강한 엘니뇨가 세계 식품 물가상승률을 정점 기준 약 0.7%p 끌어올릴 수 있다고 봤다. 식품 물가 충격은 기상이변이 발생한 뒤 4~8개월 사이 가장 크게 나타날 것으로 추산했다.

고유가까지 겹치면 세계 식품 물가상승률의 상승 폭은 정점 기준 1.3~1.5%p로 확대될 수 있다. 유가 상승이 농기계와 운송에 쓰이는 연료뿐 아니라 비료 생산과 식품 포장·냉장 비용까지 밀어 올리기 때문이다.

JP모건은 이 같은 식품·에너지 가격 충격으로 내년 세계 전체 물가상승률이 기존 전망보다 0.3%p 높아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물가 둔화가 예상보다 더뎌지면 각국 중앙은행의 금리 인하 시점도 늦춰질 가능성이 있다.

신흥국은 가계 지출에서 식료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농업이 날씨 변화에 민감해 엘니뇨 충격이 전체 물가로 빠르게 번질 수 있다. 물가 부담이 길어지면 금리 인하가 늦어지고 성장과 국가 재정에도 부담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국가별로는 충격의 경로가 다르다. JP모건은 몬순 의존도가 높은 인도와 농업·식품 가격 변동에 취약한 인도네시아, 브라질, 콜롬비아의 위험이 특히 크다고 봤다. 한국과 대만도 식품 가격 상승에 취약한 국가로 평가했다.

다만 세계 곡물 재고와 아시아의 쌀 재고가 비교적 안정적이고, 최근 식품 물가상승률이 과거 주요 엘니뇨 발생 당시보다 낮다는 점은 완충 요인으로 꼽혔다. 실제 물가 상승 폭은 엘니뇨의 강도와 지속 기간, 국제유가와 식량 재고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 재정 취약한 아프리카에 더 큰 충격…부채 부담도 가중

강력한 엘니뇨로 아프리카의 농업·어업 생산이 줄고 식량 가격이 오르면서 성장률과 국가 재정까지 압박받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Magnific

지난 26일(현지시각) 로이터에 따르면 앤서니 뇽 아프리카개발은행(AfDB) 기후변화·녹색성장국장은 강력한 엘니뇨로 아프리카 경제에 100억~200억 달러(약 14조7000억~29조4000억 원)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뇽 국장은 피해가 큰 국가의 국내총생산(GDP)이 평균 1~2% 감소하고, 어업 생산성도 1~4% 줄어들 수 있다고 추산했다. AfDB가 지난 5월 제시한 올해 아프리카 경제성장률 전망치 4.2%에는 매우 강한 엘니뇨 가능성이 반영되지 않았다. 엘니뇨가 현실화하면 당시 전망보다 성장 여건이 더 나빠질 수 있다는 의미다.

재정 여력이 부족한 국가는 재난 복구를 위해 보건·교육·인프라 예산을 전용하거나 추가 차입에 나설 수 있다. 뇽 국장은 이 과정에서 부채 부담이 불어나는 상황을 ‘기후재정 함정’이라고 설명했다. 빚을 내 건설한 도로와 발전소가 재난으로 파괴돼도 기존 채무는 남고, 복구를 위해 다시 돈을 빌려야 하는 구조다.

그는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식량 부족과 옥수수 가격 상승으로 피해 지역에서 대규모 인구 이동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대응 비용도 크게 늘어날 수 있다. 뇽 국장은 아프리카에 향후 12개월간 당초 약 500억 달러(약 73조4800억 원)의 기후적응 재원이 필요했지만, 강력한 엘니뇨가 발생하면 300억~500억 달러(약 44조1000억~73조5000억 원)가 추가로 들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이에 따라 향후 12개월간 아프리카에 필요한 기후적응·대응 재원이 최대 1000억 달러(약 147조원)에 이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로이터는 유엔 추산을 인용해 개발도상국에 공급되는 국제 공공 적응금융이 실제 수요에 크게 못 미친다고 전했다. 피해에 취약한 국가일수록 조기경보와 방재 인프라에 투자할 재원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뇽 국장은 “절벽 아래에 구급차를 세워두는 것보다 절벽 위에 울타리를 치는 편이 싸다”고 말했다. 강력한 엘니뇨가 식량 가격과 금리, 성장률과 국가 재정까지 흔들 수 있는 만큼 선제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조기경보와 농업·수자원·방재 인프라에 미리 투자해야 경제적 손실과 부채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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