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투자 8.9조 ‘역대 최대’…초기 스타트업은 ‘죽음의 계곡’

스타트업얼라이언스, 2026 국정감사 정책자료집 발간

올해 상반기 국내 벤처투자액은 8조8676억 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그러나 자금은 인공지능(AI)·딥테크와 성장 단계 기업에 집중되고, 초기 스타트업 상당수는 후속 투자를 받지 못한 채 문을 닫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투자 시장의 외형적 회복이 스타트업 생태계 전반의 회복으로 이어졌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2026 국정감사 정책자료집’을 7일 발간했다. 이번 자료집은 국정감사를 앞두고 스타트업 생태계가 당면한 주요 현안을 국회와 공유하고, 정책·입법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마련됐다. 자료집에는 스타트업이 창업한 뒤 투자와 실증을 거쳐 성장하고, 기업공개(IPO)나 인수합병(M&A)을 통해 투자금을 회수한 후 재창업에 나서기까지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제도적 병목이 담겨있다.

자료집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신규 벤처투자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4.3% 증가한 8조8676억 원으로, 상반기 기준 역대 최대였다. 다만 투자 증가분 상당 부분은 AI와 로보틱스 분야에 몰렸다. 이들 분야의 투자액은 2조6850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85.2% 늘어 전체 투자액의 34.3%를 차지했다. 100억 원 이상 공개 투자 사례에서도 딥테크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이 93%에 달했다.

초기 투자도 금액만 보면 회복세다. 업력 3년 이하 스타트업 643곳에 1조8282억 원이 투자돼 전년 동기보다 각각 28.9%, 56.4% 증가했다. 그러나 전체 벤처투자에서 초기기업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2년 26.9%에서 지난해 16.6%로 낮아졌다.

후속 투자로 넘어가는 길목에서는 이른바 ‘죽음의 계곡’이 더욱 뚜렷했다. 지난해 1월부터 7월까지 폐업을 신고한 스타트업 가운데 92%는 마지막 투자 단계가 시드 또는 시리즈A 등 초기 단계였다. 이 가운데 약 69%는 시드 투자를 받은 뒤 시리즈A로 넘어가지 못하고 폐업했다. 업력을 기준으로도 폐업 기업의 약 69%가 창업 3년 이하였다.

보고서는 초기 투자와 성장 자금을 별개의 문제로 다루는 현재의 정책 방식만으로는 이러한 공백을 해소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초기 투자자가 후속 투자에 참여하기 어려운 요인을 점검하고,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이 초기기업의 사업화와 성장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일반지주회사 CVC의 외부자금 출자 한도를 현행 40%에서 50%로, 해외투자 한도를 20%에서 30%로 높이고 다른 운용사와 공동으로 펀드를 운용하는 ‘Co-GP’를 허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해당 내용을 담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1년 넘게 국회에 계류돼 있다.

투자금 회수 경로가 IPO에 치우친 점도 생태계의 약점으로 꼽혔다. 올해 상장을 준비하는 기업은 86곳으로 2021년의 역대 최다 기록인 89곳에 근접했지만, 성장한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한 대형 M&A 사례는 여전히 제한적이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는 매물 정보를 연결하는 플랫폼과 거래구조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해외 전략적 투자자와의 연결 채널을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AI 스타트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데이터 규제도 주요 과제로 다뤘다. 국내 AI 스타트업 101곳을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48.5%가 가장 큰 법·제도적 걸림돌로 개인정보보호법을 꼽았다. 개인정보보호법이 데이터 수집과 활용을 제약한다는 응답은 71.3%에 달했다. 저작권법이 데이터 활용을 제한한다는 응답도 62.4%였다.

자료집은 하나의 학습데이터에 개인정보와 저작물이 함께 포함돼 두 법률의 기준을 모두 통과해야 하는 ‘이중 법적 관문’이 형성됐다고 분석했다. AI 개발 목적의 개인정보 활용 특례를 마련하는 동시에, 텍스트·데이터 마이닝(TDM)에 사용할 수 있는 저작물의 범위와 권리자 보호 기준을 법률로 명확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내 스타트업의 해외 이전을 단순한 ‘생태계 이탈’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제언도 나왔다. 올해 4월 기준 미국에 본사를 둔 한국계 스타트업은 193곳으로, 이 가운데 16.6%는 한국에서 창업한 뒤 미국으로 본사를 옮긴 ‘플립’ 기업이었다. 전체의 약 66%는 프리시드나 시드 단계 기업이었다. 보고서는 해외에서 확보한 자본과 기술, 인재가 국내 연구개발과 고용으로 다시 연결되도록 국외 창업기업의 지원 요건을 현실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료집은 이 밖에도 ▲AI기본법과 개별 규제 간 정합성 확보 ▲플랫폼 규제 입법 재검토 ▲스타트업 핵심인력의 근로시간 제도 개선 ▲폐업 이전 단계부터 지원하는 재도전 체계 구축 ▲지역 산업현장을 활용한 AX 실증 확대 등을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리걸테크와 비대면진료, 피지컬 AI, 디지털금융 분야에서는 기술이나 사업자의 명칭이 아닌 실제 기능과 위험 수준에 따라 규율하는 방식으로 전환할 것을 제안했다.

이기대 스타트업얼라이언스 공동대표는 “투자 규모와 창업기업 수를 늘리는 것을 넘어 창업부터 실증·성장·회수·재도전까지 전 과정이 원활하게 이어지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며 “기업 규모와 실제 위험에 비례하는 정교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유현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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