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는 지금 ‘자본의 고층건물’을 짓고 있다

지난 8월 마지막 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AVPN 글로벌 콘퍼런스에 다녀왔다. 아시아 최대 규모의 임팩트 금융·필란트로피 네트워크가 주최한 이번 행사에는 3일간 2300명이 참여했고, 100개가 넘는 세션이 열렸다. 주제는 ‘아시아를 위한 실행 설계도(A Blueprint for Action in Asia)’였다. MYSC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함께 마지막 날 ‘측정 가능한 임팩트를 위한 자본 구조화’ 세션을 진행했다.

콘퍼런스 기간 동안 인도 중앙정부와 주정부 관계자, 기업재단, 개발금융기관, 그리고 인도 1세대 임팩트 투자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분야는 저마다 달랐지만, 하나로 꿰어보니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인도는 지금 다양한 층위의 자본이 몰려드는 초고층 건물, 마천루를 짓고 있었다.

◇ 리스크는 어디에나 있지만

“High risk, high impact.” 세션의 오프닝에서 필자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에게 익숙하고 오래 써온 표현이지만, 사실은 절반의 진실에 가깝다. 리스크는 어디에나 있지만 임팩트는 어디에나 있지 않기 때문이다. 위험을 감수한다고 해서 임팩트가 자동으로 따라오는 것은 아니다. 투자와 지원이 현장의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지는 마지막 구간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나는 이것을 임팩트 생태계가 오랫동안 직면해 온 또 하나의 ‘라스트마일(last-mile)’ 문제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제안한 개념이 ‘자본의 고층건물(High Architecture)’이다. 하단의 High Risk와 상단의 High Impact를 연결하는, 혼합금융과 성과기반금융으로 구성된 건물에 대한 비유다.

위험과 가장 가까운 1층에는 정부와 공공기관의 촉매 자본이 들어온다. 양허적 조건으로 투입되어 다른 투자자가 감당하기 어려운 초기 위험을 흡수하거나 완화하는데, 이를 위험 완화(de-risking)라고 부른다. 1층이 만든 안전망 위, 2층에는 손실을 먼저 부담해 다른 자본의 진입을 촉진하는 후순위 자본(Subordinated Capital)이 올라간다. 이 역할은 주로 공공·자선 자본이나 위험 감수 성향이 높은 임팩트 자본이 맡는다.

3층에는 시장 수익을 기대하는 상업 자본이 들어올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리고 이 각 층을 연결하는 구조재가 있다. 돈이 어떤 활동(activities)에 쓰였는지가 아니라, 그 결과 실제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검증하고 그 성과에 지불하는 성과기반금융(Outcome-Based Financing)이다. 즉 성과기반금융은 또 하나의 층이 아니라, 공공자본과 민간자본, 투자자와 현장을 ‘검증된 성과’와 ‘구매 가능한 성과 단위’라는 공통 언어로 연결하는 새로운 건축 구조재에 가깝다. 처음 방문한 인도는 이 변화를 만드는 자본의 고층건물이 곳곳에서 올라가고 있는 나라였다.

◇ 1층: 정부가 앵커로 내려오다

인도 정부는 2017~2018년 회계연도부터 주요 사업의 예산과 함께 기대 산출물과 성과, 측정지표와 목표치를 담은 ‘산출·성과 모니터링 프레임워크’를 의회에 제출하기 시작했다. 모든 지표가 사회 변화를 온전히 포착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공공재정이 ‘얼마를 투입했는가’에서 ‘무엇이 달라졌는가’로 이동할 제도적 기반은 이미 마련되어 있다.

올해 인도의 기술개발·기업가정신부(Ministry of Skill Development and Entrepreneurship)와 국가기능개발공사(NSDC)는 ‘Skills Outcomes Fund’를 새롭게 내놓았다. 규모는 530크로어, 한화로 약 850억 원이다. 저소득층 청년 20만 명을 대상으로 ‘직업훈련 이수’가 아니라 취업, 고용 유지, 지속 가능한 생계 성과에 자금을 연동한다. 인도 정부는 이를 세계 최대 규모의 직업역량 분야 성과기반금융 프로그램으로 설명한다.

주정부도 1층으로 내려오고 있다. 마하라슈트라주 혁신기관 MITRA는 주정부가 분야별 투자 목표를 정하고 전문 운용사를 경쟁 방식으로 선정하는 멀티 GP 구조를 제시했고, 콘퍼런스 현장에서 10억 달러 규모의 준국가 기후 투자 파이프라인과 첫 거래들을 발표했다. 사회문제의 해결은 좋은 의도를 가진 몇몇 조직의 노력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정부가 위험을 자신의 책임으로 받아들이고 예산과 제도를 움직일 때 비로소 규모가 만들어진다. 인도에서 임팩트를 위한 ‘자본의 고층건물’ 1층은 정부가 놓고 있다.

◇ 2층과 3층: 촉매 자본의 증거 위에 국내 자본을 쌓다

인도의 성과기반금융은 2015년 세계 최초의 교육 분야 개발성과연계채권(DIB)인 ‘에듀케이트 걸스(Educate Girls)’에서 시작됐다. 이어 2021년 출범한 스킬 임팩트 본드는 130크로어, 약 13억 루피 규모로 21개 주에서 3만4000명 이상을 훈련했고, 참여자의 74%가 여성이었다. 교육 인원이나 수료증이 아니라 실제 취업과 고용 유지에 자금이 연동됐고, 이 경험이 올해 530크로어 규모의 ‘Skills Outcomes Fund’로 이어졌다. 자선자본과 개발금융이 먼저 위험을 감수하고 현장에서 데이터를 만들면, 그 증거 위에 정부가 규모를 얹는 순서다. 이렇듯 촉매 자본의 성공은 그 자본이 계속 남아 있는 데 있지 않고, 자신보다 더 큰 자본을 불러들이는 데 있다. 혼합금융에서는 이를 민간자본 유입(crowding-in) 효과라고 부른다.

3층에서는 인도 국내 자본이 움직이고 있다. 25년째 인도에서 임팩트 투자를 해온 아비슈카르의 창업자 비닛 라이는 2017년 운용자금의 거의 전부가 외국 자본이었지만, 2025년에는 국내 자본 비중이 60%까지 높아졌다고 전했다. 그중 절반 이상은 민간 자본이었다.

◇ 새로운 건축 구조재: 검증된 성과의 자산화

필자가 진행한 세션의 마지막 파트에서는 ‘검증된 임팩트 자산(Verified Impact Asset)’을 다뤘다. KOICA의 혁신적 기술 프로그램(CTS)을 통해 케냐에서 사업하는 기업 두 곳, 인도에서 사업하는 기업 한 곳이 무대에 올랐다. 머쉬앤(Mush&)은 농업 부산물로 균사체 기반 식품소재를 개발하고, 바딧(Bodit)은 인공지능으로 가축의 건강과 생산성을 관리한다. 태그하이브(Tag Hive)는 인도 출신 창업가가 한국에 설립한 기업으로, 일선 학교의 교육 수준을 높이는 솔루션을 제공한다. 세 기업은 성과기반금융 플랫폼인 Common Good Marketplace를 통해 각자의 성과를 측정·검증하고, 이를 성과기반 보조금 또는 구매 가능한 ‘검증된 임팩트 자산’으로 연결하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작은 스타트업이 만들어낸 사회적 성과는 그 기업의 보고서 안에 머문다. 측정 비용은 발생하지만, 측정 결과가 새로운 자본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검증된 성과를 구매 가능한 자산으로 구조화하면 달라진다. 성과 측정은 비용이 아니라 다음 자본을 부르는 인프라가 되고, 작은 기업의 성과도 공공기관과 재단, 기업과 투자자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공통의 거래 단위가 된다.

세션 오프닝에서 필자는 인도와 한국을 “혼합금융과 성과기반 혁신의 최전선에 있는 두 나라”라고 소개했다. 인도가 성과기반금융을 국가 재정체계에 내재화하며 규모화의 여정에 나섰다면, 한국은 KOICA와 스타트업이 현장 단위에서 같은 구조를 실험하고 있다.

◇ 인도가 우리에게 묻는 것

한국은 어디쯤 와 있는가. KOICA의 실험이 있다. 정부의 성과예산도 있다. 임팩트 투자자와 사회적기업, 사회성과보상사업의 경험도 축적되어 있다. 그러나 이들을 하나의 자본 스택으로 연결하는 로드맵과, 그 로드맵을 공동으로 설계할 연합은 아직 선명하지 않다. 한국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금융상품 하나가 아닐 수 있다. 이미 존재하는 공공예산, 정책금융, 자선자본, 임팩트 투자, 기업의 사회공헌, 그리고 현장의 성과를 하나의 구조, 즉 ‘자본의 고층건물’ 안에 배치하는 일이다.

고층건물은 혼자 짓지 못한다. 1층을 놓는 공공, 2층에서 먼저 위험을 부담하는 촉매·후순위 자본, 3층으로 올라올 국내 민간자본, 그리고 검증된 성과를 구매하겠다고 약속하는 정부와 기업, 자선재단이 필요하다. 세션을 마무리하며 나는 이를 다시 한번 정리했다. High risk, High impact만으로는 부족하다. High risk, High architecture, High impact가 필요하다. 저 아래의 위험과 저 높은 곳의 임팩트 사이를 이어주는, 자본의 고층건물 말이다.

김정태 엠와이소셜컴퍼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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