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돗물이 끊기면 물의 소중함을 안다. 기름값이 오르면 자동차를 덜 타야 하나 고민한다. 그런데 전기는 조금 다르다. 버튼을 누르면 불이 켜지고, 충전기를 꽂으면 휴대전화가 충전된다. 그 전기가 어디에서 와서, 얼마나 많은 자원이 투입되고 어떤 과정을 거쳐 내 방까지 왔는지는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에너지 문제의 가장 큰 어려움은 바로 이것인지 모른다. 에너지는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 되지만, 그 존재와 가치는 쉽게 보이지 않는다.
이솝우화에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 이야기가 있다. 한 농부에게 매일 황금알 하나를 낳는 거위가 있었다. 그는 그것으로도 만족하지 못해 거위 배를 갈랐지만, 황금은 없었다. 결국 매일 얻을 수 있었던 황금알마저 잃은 것이다. 어릴 때는 이 이야기를 ‘욕심부리지 말라’는 교훈으로 읽었다. 환경 일을 오래 하다 보니 이제는 조금 다르게 읽힌다. 우리는 황금알의 가격은 알면서도,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가치는 잊고 사는 게 아닐까.
전기도 그렇다.
전기요금 고지서에는 내가 이번 달에 사용한 전력량과 요금이 나온다. 그러나 그 전기를 만들기 위해 어떤 자원이 필요했는지, 전기가 얼마나 먼 거리를 이동해 왔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환경비용이 발생했는지는 적혀 있지 않다.
더구나 이제 에너지는 전등과 에어컨 뒤에만 숨어 있지 않다. 아침에 마시는 커피 한 잔에도 에너지가 들어 있다. 원두를 재배하고 가공하고 운반하고, 물을 끓이기까지 에너지가 필요하다. 수돗물 한 컵에도 취수와 정수, 펌프와 하수처리의 에너지가 숨어 있다. 옷 한 벌, 택배 상자 하나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손가락 끝에도 에너지가 흐른다. 검색하고, 자료를 클라우드에 저장하고, 영상을 보고, AI에게 질문한다. 화면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순간 어딘가에서는 서버가 작동하고 데이터가 이동하며 냉각장치가 돌아간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세계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가 2024년 약 415TWh에서 2030년 약 945TWh로 두 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다. AI가 이러한 증가를 이끄는 중요한 요인으로 꼽힌다. 디지털 기술이 일상이 되면서 ‘보이지 않는 에너지 소비’의 시대가 본격화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얼마 전 흥미로운 경험을 했다.
전국 초·중·고 청소년 4954명과 에너지에 관해 이야기했다. 에코나우가 환경교육주간을 맞아 진행한 ‘대한민국 청소년 에너지행동 공모전’에 참여한 아이들이었다. 처음에는 ‘전등을 끈다’, ‘에어컨을 덜 튼다’ 같은 답이 많을 것으로 생각했다.
교육을 받은 뒤 아이들이 발견한 것은 뜻밖에도 보이지 않는 에너지였다. 64.3%가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사용할 때도 에너지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에 공감했고, 59%는 ‘일상 속 모든 순간에 에너지가 쓰인다는 사실을 잊고 살았다’고 답했다.
더 흥미로운 변화는 그다음이었다.
에너지에 대해 배운 아이들은 전기만 이야기하지 않았다. 친환경 제품을 선택하고, 물을 아끼겠다고 했다.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물건을 다시 쓰고 제대로 분리배출하겠다고 했다. 전기를 가르쳤는데 세상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나는 이것이 에너지교육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동안 에너지 문제를 주로 ‘무엇으로 만들 것인가’의 문제로 다뤄왔다. 석탄과 같은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고 태양광과 풍력을 확대하며, 전력망을 확충하고 효율 높은 기술을 개발한다. 물론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에너지 전환에는 또 하나의 질문이 필요하다. ‘우리는 그 귀한 에너지를 어디에, 왜, 얼마나 사용할 것인가.’
IPCC는 제6차 평가보고서에서 생활방식과 소비, 이동 등에서 사람들의 선택과 행동이 달라질 경우, 2050년 건물·육상교통·식품 분야의 온실가스를 기준 전망보다 40~70% 줄일 잠재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나는 이 숫자가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힘이 새로운 기술이나 거대한 발전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선택에도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효율이 높은 냉장고를 개발해도 더 큰 냉장고로 바꾸고 김치냉장고와 와인냉장고를 하나씩 더 들이면 절감 효과는 줄어든다. 자동차의 연비가 좋아져도 더 큰 차를 사고, 더 많이 운전하면 마찬가지다.
그래서 에너지 전환은 기술의 문제인 동시에 선택의 문제다.
지난 8월, 공모전에 참여한 아이들 가운데 대표들이 국회에 모였다. ‘대한민국 청소년 에너지행동 포럼’에서 자신들의 실천을 이야기하고, 4,954명의 생각을 담은 ‘청소년 에너지행동 선언’을 직접 읽었다. 나는 선언문 가운데 한 문장이 오래 남았다.
“내 하루 전부가 에너지와 이어져 있음을 기억하겠습니다.”
거창한 문장이 아니다. 그러나 어쩌면 우리가 에너지 문제를 풀기 위해 가장 먼저 배워야 할 문장인지 모른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게 되는 순간 선택은 달라진다.
물을 틀 때 그 물을 깨끗하게 만들고 우리에게 보내는 데 쓰인 에너지를 떠올리고, 새 옷을 살 때 그것을 만들고 운반한 에너지를 생각하고, AI에 무심코 질문을 던질 때조차 그 뒤에서 돌아가는 데이터센터를 한 번쯤 상상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 에너지 전환의 시작이다.
다시 황금알을 낳는 거위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우리는 황금알을 포기하고 살 수 없다. 문명도 산업도 AI도 에너지 없이는 움직일 수 없다. 그렇다고 더 많은 황금알을 얻기 위해 거위를 지치게 해서도 안 된다. 중요한 것은 황금알을 쓰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디에서 오는지,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알고 쓰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 만난 4954명의 아이들을 ‘에너지 절약을 배운 학생’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 보이지 않던 것을 보기 시작한 사람들. 어쩌면 미래의 에너지 전환은 발전소보다 먼저, 그런 사람을 만드는 일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하지원 에코나우 대표
필자소개
‘사람을 통해 세상을 바꾼다’는 모토 아래 누적 33만 명의 환경 교육을 실천해 온 전문가입니다. 2009년 설립한 에코나우는 국내 유일의 유엔환경계획(UNEP) 파트너 기관입니다. 2025년 환경 교육의 대중화와 기후 위기 대응에 이바지한 공로로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훈했습니다. 현재 EU 기후행동 친선 대사 및 국가기후시민회의 자문단장으로 활동 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