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 끝난 뒤에도 작동하게”…필란트로피, 시스템을 바꿔라[AVPN 2026]

“일회성 기부에서 전략적 필란트로피로 전환해야”  
록펠러재단 ‘시스템 전환’·타타스틸재단 ‘주민 주도’ 강조

사회문제가 날로 복잡해지면서, 단순한 시혜에 머물던 전통적 기부 방식이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26일 인도 뉴델리 바라트 만다팜에서 열린 ‘2026 AVPN 글로벌 콘퍼런스’ 둘째 날, ‘현상 유지를 넘어선 자선 활동(Philanthropy Beyond the Status Quo)’ 세션에 패널로 참석한 전문가들은 “필란트로피의 역할이 전략적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AVPN은 43개 시장에서 700개 이상의 자금 제공기관과 혁신 조직, 중개기관이 참여하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사회적 가치 플랫폼이다. 이번 콘퍼런스는 지난 25일 ‘아시아 실행의 청사진(A Blueprint for Action in Asia)’을 주제로 개막했다.

이날 패널토론은 AVPN의 로버트 로젠(Robert Rosen) 수석고문이 진행했다. 로젠 고문은 “사회문제의 규모에 비해 필란트로피의 대응은 여전히 개별 사업과 단기 성과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하며 논의의 문을 열었다.

◇ 마중물 자금으로 거대 자본 결합…‘시스템 전환’ 이끄는 록펠러재단 

디팔리 칸나(Deepali Khanna) 록펠러재단 아시아 수석부사장은 파편화된 지원을 넘어선 ‘시스템 자체의 전환’을 강조하며 재단의 사례를 소개했다. 대표적인 예가 록펠러재단이 창립 100주년을 맞은 2013년 출범시킨 ‘100개 기후탄력도시 네트워크(100 Resilient Cities)’다. 이 프로젝트는 기후변화와 급격한 도시화 등에 대응하기 위해 전 세계 100개 도시를 선정하고, 최고회복력책임자(CRO) 채용과 위기 대응 전략 수립을 직접 지원했다. 총 1억6000만 달러(약 2216억 원)가 투입돼 80명 이상의 최고회복력책임자가 채용·훈련됐고, 참여 도시들은 50여 개의 전략과 1800여 개 실행 과제를 마련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와 기업, 필란트로피 자금 6억5500만 달러(약 9073억 원) 이상이 추가로 유입됐다.

재단이 주도한 이 사업은 이후 46개국 100여 개 도시가 참여하는 비영리조직 ‘회복력 도시 네트워크(Resilient Cities Network)’로 확장됐다. 초기 지원기관이 물러난 뒤에도 참여 도시와 현지 조직이 사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구조를 전환한 것이다. 이 네트워크는 폭염·홍수·감염병과 불평등, 노후 인프라 등 도시가 직면한 위기에 공동 대응하기 위해 각 도시의 최고회복력책임자를 연결하고, 관련 해법과 전문기관·자금을 공유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칸나 부사장은 전 세계 에너지 빈곤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출범한 ‘사람과 지구를 위한 글로벌에너지연합(GEAPP)’도 소개했다. 록펠러재단과 이케아재단, 베이조스어스펀드가 각 5억 달러(약 6925억 원)를 출자해 만든 이 연합체는 세 기관의 마중물 자금으로 정부와 개발금융기관, 민간 투자자의 자본을 끌어들이는 구조다. 인도의 대규모 상업용 배터리 에너지 저장장치(BESS)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시에라리온 여성 6000여 명에게 태양광 냉동고를 보급해 소득을 늘리는 등의 성과를 내고 있다. 칸나 부사장은 “수십 년이 걸릴 문제를 거대 민간 자본과 결합해 단기간에 스케일업하는 것이 현대 자선 활동이 해야 할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 조직은 인도의 대규모 상업용 배터리 에너지 저장장치(BESS)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시에라리온 6000여 명의 여성에게 태양광 냉동고를 보급해 소득을 증대시키는 등의 성과를 내고 있다. 칸나 부사장은 “수십 년이 걸릴 문제를 거대 민간 자본과 결합해 단기간에 스케일업하는 것이 현대 자선 활동이 해야 할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 타타스틸재단 “일방적 지원 아닌 지역 자생력 키워야” 

소라브 로이(Sourav Roy) 타타스틸재단 CEO는 규모를 키우는 과정에서 지역사회의 주도권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타타스틸재단이 사업에 앞서 주민들과 별도의 협의 과정을 거친다고 소개했다. 재단이 준비한 지원책을 먼저 제시하는 대신, 주민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와 해결하고 싶은 문제, 자녀 세대에 바라는 변화가 무엇인지부터 묻는 방식이다. 특히 위기 상황에서는 주민이 필요한 지원을 직접 표현하고, 여러 대안 가운데 해법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

주민 참여도 한 차례 의견을 듣는 절차로 끝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사업의 우선순위와 실행 방법, 성과를 판단하는 기준까지 지역사회와 함께 정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로이 CEO는 “재단의 역할은 주민에게 무언가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가 가진 지식과 자원을 연결해 스스로 문제를 풀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데 있다”고 했다.

이 같은 접근은 타타스틸재단이 2014년부터 운영해온 원주민 공동체 플랫폼 ‘삼바드(Samvaad)’에서도 확인된다. 재단이 의제를 정하는 대신, 원주민들이 언어와 문화, 전통 치유, 리더십, 공동체의 미래를 직접 논의하고 해법을 함께 설계하도록 만든 플랫폼이다. 2021년 행사에는 인도 87개 부족 공동체 주민 4000여 명이 참여했으며, 디지털 접근이 어려운 주민을 위해 110개 지역에서 공동체 상영과 토론도 함께 진행됐다.

로이 CEO는 “기업재단이 보유한 기술과 인력, 공급망, 사업 실행 능력 역시 지역의 필요에 맞게 활용해야 한다”며 “기업의 해법을 그대로 이식하기보다 정부와 시민사회, 현지 조직을 연결하고, 주민이 사업을 이어갈 수 있는 역량과 플랫폼을 구축해야 지속 가능한 변화가 가능하다”고 제언했다.

한편 AVPN 콘퍼런스는 오는 27일까지 혼합금융과 보건 임팩트, 성평등, 경제적 포용, 기후행동을 주요 의제로 논의를 이어간다. 인공지능(AI)과 정책, 임팩트투자, 종교 기반 기부를 활용해 새로운 형태의 자본과 혁신을 끌어낼 방안도 함께 모색할 예정이다.

인도 뉴델리=조유현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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