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점수 밖의 ‘맥락’을 본다…대출 거절된 청년을 다시 보는 금융

카카오뱅크·사회연대은행 ‘프로젝트 다시, 봄’
대출 거절 청년의 부채 배경·상환 계획 살펴…연 1% 대출 지원

“숫자를 먼저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부채가 생긴 이유를 물으며 공감대를 만든 뒤 전체 대출 내역을 함께 확인합니다.”

카카오뱅크와 함께만드는세상 사회연대은행이 운영하는 금융위기청년 지원사업 ‘프로젝트 다시, 봄’의 심사위원 고영완 신용상담사는 대출 심사 방식을 이렇게 설명했다. 신용점수와 소득만으로 대출 여부를 판단하기보다 왜 빚이 생겼고 앞으로 어떻게 갚아 나갈지를 대화를 통해 함께 살핀다. 대출보다 채무조정이 적절하다고 판단되면 다른 제도를 안내하기도 한다.

카카오뱅크와 함께만드는세상 사회연대은행은 기존 금융에서 대출이 거절된 청년을 대상으로 연 1%의 저금리 대출과 재무상담을 지원하는 ‘프로젝트 다시, 봄’을 운영하고 있다. /사회연대은행

프로젝트 다시, 봄은 기존 금융에서 대출이 거절된 청년에게 연 1%의 저금리 자금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카카오뱅크가 재원을 마련하고 사회연대은행이 심사와 대출, 상담을 맡는다. 작년 9월 시작해 1643명이 신청했고, 이 가운데 219명에게 대출이 실행됐다. 현재 생계비는 최대 300만 원을 24개월, 고금리 대환대출은 최대 500만 원을 36개월에 걸쳐 상환한다.

핵심은 저금리 자금 지원을 넘어 고금리·다중채무의 악순환을 끊고, 청년이 다시 안정적인 금융생활로 돌아오도록 돕는 것이다.

◇ 계속 대출에서 밀려나는 청년, 이어지는 악순환

사업의 출발점은 카카오뱅크 대출비교서비스였다. 여러 금융회사의 상품을 비교해도 어느 곳에서도 대출을 받지 못하는 이용자가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카카오뱅크는 대출 부결 이후에도 병원비나 생활비가 필요한 청년들이 고금리 대출이나 불법사금융으로 밀릴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김미래 카카오뱅크 ESG팀 매니저는 “대출 부결 안내 화면이 그들이 마주할 낭떠러지가 아니길 바랐다”며 “상품과 서비스뿐 아니라 제도권 금융 밖으로 내몰리는 청년까지 사회공헌을 통해 포용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비대면 금융에서는 개인이 금융위기에 놓인 사정을 직접 들여다보기 어려운 만큼, 부채가 생긴 배경과 앞으로 금융생활을 이어갈 가능성을 함께 살피는 방식이 필요했다고 했다.

실제 신청자들의 부채 배경에는 가족 부양과 생계비 누적, 실직·임금체납 등에 따른 소득 단절이 두드러졌다. 사회연대은행에 따르면 약 22%는 가족을 부양하거나 가족의 채무를 떠안으며 빚이 늘어난 경우였다. 신청자의 65%는 사업 신청 전 대부업체나 불법사금융 이용을 시도했고, 25%는 공과금, 18%는 월세 등 주거비를 연체한 경험이 있다.

이 과정에서 소액대출을 반복해 받는 간격이 짧아지고, 돌려막기와 더 높은 금리의 대출로 이어지는 패턴도 나타났다. 사회연대은행은 1400여 건의 신청 사례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이런 흐름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참여자들은 평균 약 5건의 다중채무를 보유했고, 대환 대상자의 기존 채무 금리는 가중평균 약 15.8%였다. 한 30대 남성은 직장 경영난으로 퇴사한 뒤 생활비와 월세를 마련하려 소액대출을 받기 시작했다. 재취업했지만 고금리 이자 탓에 원금을 줄이기 어려웠다. 프리랜서와 일용직을 오가던 20대 남성은 소득이 끊길 때마다 대출과 카드 리볼빙으로 생활비를 메웠다. 부모의 병원비와 가족 부양으로 채무가 늘어난 사례도 있다.

‘프로젝트 다시, 봄’ 신청자의 65%는 대부업체나 불법사금융 이용을 시도한 경험이 있었다. 대출 참여자들은 평균 약 5건의 다중채무를 보유했으며, 대환 대상자의 기존 채무 금리는 가중평균 약 15.8%였다. /Magnific

◇ 신용점수 밖의 ‘맥락’을 본다

사회연대은행은 신용정보와 소득, 기존 채무 등 정량정보로 상환 가능성을 먼저 살핀 뒤 유선 심사를 진행한다. 여기서는 부채가 생긴 이유와 현재 현금흐름, 상환 계획, 부양가족, 금융 행동 등을 함께 본다. 김세권 함께만드는세상 부장은 “빚을 갚으려면 상환 여력뿐 아니라 갚으려는 의지도 중요하다”며 “돈을 주는 사람의 입장에서만 판단하지 않고 신청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는 데서 심사를 설계했다”고 말했다.

유선 심사는 금융권 근무와 신용상담 경험을 갖춘 전문가들이 맡는다. 약 10년간 금융상담과 코칭해 온 손은정 심사위원은 “과거의 실수를 인정하고 되풀이하지 않으려 노력하는지,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고 있는지를 살핀다”고 말했다. 단순히 갚겠다는 말보다 가계부를 쓰거나 신용카드 대신 체크카드를 이용하는 등 이미 금융 습관을 바꾸고 있는지도 판단 기준이 된다.

대화를 거치며 판단이 달라지기도 한다. 취업을 준비하며 아르바이트를 하던 한 신청자는 소득만 보면 상환 여력이 부족해 보였지만, 유선 심사에서 곧 만기가 돌아오는 저축을 활용한 구체적인 상환 계획이 확인됐다. 심사 과정에서는 개인별 재무상담도 함께 이뤄진다. 자신의 전체 부채나 금리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신청자와 대출 내역을 정리하고 어떤 빚부터 갚을지 순서를 점검한다. 새 대출이 오히려 부담을 키울 가능성이 크면 대출 대신 채무조정을 안내한다.

사회연대은행은 이번 사업을 위해 AI를 활용한 신청·심사 시스템도 새로 개발했다. 본인인증으로 금융정보를 자동으로 불러오고 심사에 필요한 정보를 구조화해, 심사위원이 서류 확인보다 신청자의 상황과 상환 계획을 파악하는 데 집중하도록 했다.

사회연대은행은 정량정보를 확인한 뒤 유선 심사를 통해 부채 발생 배경과 상환 계획, 금융 행동 등을 함께 살핀다. /카카오뱅크 인스타그램 갈무리

◇ 고금리 부담 줄자 금융생활도 달라졌다

사업 초기이지만 참여자들의 부채 구조와 금융 행동에는 조금씩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카카오뱅크는 일부 참여자들이 고금리 대출을 대환하면서 이자 부담을 덜었고, 신용점수도 개선되는 모습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상환 중인 한 20대 여성은 지원 이후 카드 장기대출과 돌려막기에 이용하던 단기카드대출 일부를 갚았다. 그는 “면접관님의 따뜻함에서 다시 한번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고 전했다. 약 2개월 만에 대출금을 모두 갚은 한 30대 남성은 회사 사정으로 줄었던 소득이 회복되면서 조기 상환했다. 그는 “대출 신청 시 사유를 적는 과정에서 자신의 상황을 돌아보게 됐고 좀 더 책임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갑작스럽게 실직해 연체 가능성이 생기자 먼저 기관에 연락해 상황을 알리거나, 형편이 나아진 뒤 예정된 금액보다 더 갚고 싶다고 문의한 참여자도 있었다. 아직 장기적인 상환 성과를 판단하기에는 이르지만, 사회연대은행은 이 같은 사례를 금융생활 회복의 초기 신호로 본다.

상환된 돈은 다시 다른 금융위기청년의 대출 재원으로 쓰인다. 카카오뱅크의 기부금을 일회성으로 소진하지 않고 대출과 상환을 반복해 지원을 이어가는 구조다. 이들은 내년에는 대출을 받지 못한 신청자를 다른 지원제도와 연결하는 체계를 보완하고, 개인 상황에 따라 상환 일정을 보다 유연하게 조정하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이다.

사회연대은행은 장기적으로 신청자와 대출자의 데이터를 축적해 기존 신용평가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상환 가능성을 확인한다는 목표다. 신청 당시의 신용·부채 상태뿐 아니라 이후 상환과 금융생활의 변화를 추적해, 어떤 청년이 다시 안정적인 금융생활로 돌아갈 수 있는지를 살피고자 한다.

사업이 향하는 지점도 여기에 있다. 김세권 함께만드는세상 부장은 “분명히 갚을 수 있는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안 물어봤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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