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사·기빙플러스 ‘무한대 프로젝트’
재고 의류 재사용·재활용해 일자리·공익기금 조성
업사이클링 옷장과 방한 의류, 청년 22명에 전달
판매되지 못한 패션 재고가 취약계층 일자리 창출을 위한 공익기금으로 전환되고, 일부는 은둔·고립 청년을 위한 옷장으로 재탄생했다. 패션·뷰티 플랫폼 무신사와 자원순환 공익재단 기빙플러스가 패션 재고에 새로운 쓰임을 부여해 취약계층의 자립을 돕는 ‘무한대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 EU 의류 폐기 규제 강화…수명 긴 가구로 자원순환
유럽연합은 지난해 10월 발효한 개정 폐기물기본지침을 통해 회원국에 섬유·신발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 도입을 의무화했다. 이에 따라 의류를 생산한 기업은 2028년 4월까지 수거·분류·재사용·재활용 비용을 부담하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 올해 7월 19일부터는 에코디자인규정(ESPR)에 따라 대기업이 팔리지 않은 의류와 신발을 폐기하는 행위도 금지됐다. 이런 흐름 속에서 패션업계는 남은 재고의 새로운 활용처를 찾아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무한대 프로젝트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옷을 다시 옷으로 만들면 폐기 시점이 빠르게 돌아오지만, 가구처럼 사용 기간이 긴 물건으로 바꾸면 자원의 수명을 늘릴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해 패션 자원으로 옷장을 만드는 방식을 택했다.
◇ 11개 브랜드, 5만8000여 점 기부로 시작
이번 프로젝트에는 무신사 자체 브랜드(PB)인 무신사 스탠다드와 사운즈라이프를 비롯해 일오공칠, 맥우드건, 어반스터프, 플리즈노팔로우 등 11개 브랜드가 참여해 의류 5만8000여 점을 기부했다.
기부된 의류는 기빙플러스를 통해 두 갈래로 순환됐다. 재사용할 수 있는 옷은 기빙플러스의 자원순환 나눔가게에서 판매해 취약계층 일자리와 공익사업 기금을 조성하는 데 활용했다. 재사용하기 어려운 옷은 선별 작업을 거친 뒤, 섬유 재생 패널 제작 기술을 보유한 세진플러스를 통해 고밀도 패널로 만들어졌다. 화학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고 열과 압력만으로 섬유를 압축한 패널로, 단열·흡음·내구성을 갖췄으며 포름알데히드 등 유해물질이 검출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무신사 측은 이를 통해 약 9972㎏의 탄소배출량을 줄였다고 자체 분석했다. 이는 30년생 소나무 1160그루를 심는 것과 비슷한 효과라는 설명이다.
윤형덕 무신사 관계자는 “입점 파트너 브랜드들의 참여로 재고 의류의 자원화와 나눔의 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었다”며 “재고 자원화에 어려움을 겪던 중소 브랜드들과 함께 ESG 활동을 전개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 검은 문 열면 다채로운 색…김하늘 작가의 ‘반전 옷장’
완성된 패널은 업사이클링 디자이너 김하늘 작가의 손을 거쳐 옷장으로 만들어졌다. 김 작가는 폐마스크를 녹여 만든 의자 ‘스택 앤 스택’을 국립현대미술관과 스웨덴 뤼스카 박물관 등에 선보이고, 나이키·현대백화점 등과 협업하며 이름을 알린 청년 작가다.
김 작가는 프로젝트 기획 초기인 지난 5월 은둔 경험 당사자들이 만든 ‘은둔고수 드래프트’ 행사에 참석해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를 가구 디자인에 반영했다. 그는 “당사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겉으로는 어두워 보일 수 있지만, 내면에는 각자 다른 모습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며 “이런 점을 반영해 검은색 문을 열면 안쪽 선반마다 파랑·빨강·노랑 색상이 나타나도록 디자인했다”고 말했다.
◇ “사흘 전부터 청소했어요” 고립 청년 움직인 옷장

완성된 옷장은 무신사가 마련한 방한 의류와 함께 지난 1일부터 이틀간 전달됐다. 지원 대상자 발굴에는 서울시 25개 자치구 주거상담소와 청년 지원기관인 안무서운회사, 경기도미래세대재단, 서울기지개센터 등이 참여했다. 이들 기관은 주거·생활 여건과 지원 필요성 등을 고려해 청년들을 추천했다. 지원 대상은 서울 강북·도봉·은평구 등에 거주하는 은둔 경험 청년과 자립을 시작한 장애청년 등 15가구 22명이다.
첫 전달 장소는 은둔 경험이 있는 청년들이 함께 생활하며 사회 복귀를 준비하는 셰어하우스 ‘안무서운하우스’였다. 이곳을 운영하는 유승규 안무서운회사 대표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은둔청년들이 머무는 공간에 놓인 옷장이 앞으로도 다양한 분야에서 청년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했다.
이밖에도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옷장을 지원받은 청년 다수는 원가족과의 관계 단절 등의 이유로 고립 기간이 길어진 경우였다. 은평구에 사는 전유진(가명·33) 씨는 성인이 된 뒤 가족과 연락이 끊긴 채 기숙사가 있는 공장에서 7년간 일했다. 퇴사 후 약 3년간 고립생활을 이어가던 중 지역 사회복지관의 안내로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전 씨는 “몇 달째 쌓인 빨래와 배달 용기를 치울 엄두를 못 냈는데, 옷장이 온다는 소식에 사흘 전부터 청소하며 오랜만에 몸을 움직였다”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생애 첫 독립을 시작한 장애청년에게도 옷장이 전달됐다. 뇌병변 전신지체장애가 있는 정성희(31) 씨는 유년 시절부터 장애인 공동생활시설에서 지내다 한 달 전 장애인 탈시설을 지원하는 굿잡자립생활센터를 통해 장애인 임대주택에 입주해 독립했다. 정 씨는 “처음으로 저만의 공간에서 옷장을 갖게 된 것이 감사하고 기쁘다”고 소감을 전했다.
윤은남 기빙플러스 ESG마케팅실장은 이번 사업의 의미로 서로 다른 주체의 자원과 전문성을 연결한 점을 꼽았다. 그는 “무신사와 입점 브랜드의 재고 자원, 기빙플러스의 자원순환 인프라, 청년 작가의 디자인 역량, 청년 지원기관의 현장 경험을 결합한 프로젝트”라며 “패션 자원순환을 사각지대에 놓인 청년의 자립을 돕는 매개로 확장해 환경·사회문제에 대한 새로운 해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조유현 더나은미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