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바꾸는 비영리 생태계의 미래는?

[인터뷰] 마리야 랄리치 구글닷오알지(Google.org) 아시아·태평양 총괄 
자금·기술·인력 결합하는 ‘촉매적 지원’ 강조 
“오픈소스로 유지 부담 나누고, 정부·재단·기업 함께 투자해야” 

“앞으로 5년 안에 단일 기부자가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던 ‘사후 보충형(gap-filling)’ 자선 모델은 다자간 협업 모델로 진화해야 합니다.” 

마리야 랄리치(Marija Ralic) 구글닷오알지(Google.org) 아시아·태평양 총괄이 전망하는 미래 필란트로피의 핵심은 ‘함께 투자하는 것(Funding Together)’이다. 사업비만 지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술 기업과 정부, 학계, 비영리 조직이 자본과 기술, 인력을 결합해 문제 해결의 전 과정에 동참하는 방식이다. 

AI의 등장은 이런 변화를 가속하고 있다. 비영리 조직이 AI를 활용하면 더 많은 사람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지만, 기술 도입·유지 비용과 전문 인력이 부족하면 그 혜택이 대형 기관에만 집중될 수 있다. 막대한 운영비와 데이터 관리 부담을 감당하지 못해 사업이 중단될 위험도 크다. 

이에 랄리치 총괄은 필란트로피가 세 가지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영리 조직에 자금과 전문성을 함께 제공하고, 오픈소스와 디지털 공공재로 유지 부담을 생태계가 나누며, 다자간 자본과 데이터를 융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르비아의 청년 비영리 조직 AIESEC과 마이크로소프트 필란트로피를 거쳐 2019년 구글에 합류한 그는 현재 구글닷오알지의 아태지역 필란트로피를 이끌고 있다. <더나은미래>는 랄리치 총괄과 서면 인터뷰를 진행해 AI가 바꾸는 비영리 생태계의 미래를 물었다. 

―기존의 자금 지원 방식만으로는 오늘날의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기존의 필란트로피는 자원을 보충하는 ‘안전망’ 역할을 해왔고, 이는 지금도 필요하다. 하지만 오늘날 직면한 문제들은 개별 기관이 단독으로 해결하기에는 규모가 너무 크고 복잡하다. AI 역시 기술 개발비만 쥐여주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기술을 현장에 적용하고 넓은 지역으로 확산하려면 지역사회의 두터운 신뢰를 받는 풀뿌리 조직, 기술 전문가, 공공서비스로 확장할 정부가 힘을 합쳐야만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 수 있다.” 

―그렇다면 AI 시대의 필란트로피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달라져야 하나.

“세 가지 핵심 원칙으로 재편돼야 한다. 첫째는 일회성 프로젝트가 아닌 핵심 운영 시스템에 AI를 도입하도록 돕는 ‘기술에 투자(Fund Technology)’, 둘째는 복잡한 과제에 여러 기관이 자금과 전문성을 결합하는 ‘함께 투자(Fund Together)’, 셋째는 기술을 통해 조직의 장기적인 문제 해결 역량을 끌어올리는 ‘미래를 위한 투자(Fund for the Future)’다.” 

자금과 기술, 전문 인력을 결합한 대표적 사례가 인도의 AI 병충해 진단 도구 ‘코튼에이스(CottonAce)’다. 병충해로 수확량의 절반을 잃던 영세 목화 농가를 위해 와드와니AI(Wadhwani AI)가 기술을 고안할 때, 구글닷오알지는 200만 달러(약 26억 원)의 초기 자금과 9명의 전문 인력을 6개월간 투입해 솔루션을 함께 만들었다. 통신이 불안정한 지역에서도 보급형 스마트폰으로 작동하게 설계된 이 도구 덕분에 농가의 살충제 비용은 최대 38% 줄고 수익은 최대 26% 증가했다. 이후 인도 농업부가 공식 채택하며 50만 명 이상의 농민에게 보급됐다.  

―이러한 지원에서 필란트로피 자본은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하나.

“다른 주체가 선뜻 감수하기 어려운 초기 위험을 먼저 떠안는 ‘촉매 자본(Catalytic Capital)’의 역할을 해야 한다. 가능성이 입증되지 않은 단계에서 실험할 기반을 제공하고, 효과가 확인되면 정부나 후속 자본이 참여할 다리를 놓아주는 것이다. 필란트로피는 직접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가 아니라, 다양한 주체가 함께 움직이도록 만드는 촉매자가 돼야 한다.” 

인도의 보건 인력용 AI 도구 ‘헬스바니(HealthVaani)’도 구글닷오알지의 250만 달러(약 33억 원) 자금과 기술 지원이 투입돼 같은 구조로 개발됐다. 일상 언어로 질문하면 공식 보건 지침을 안내해주는 이 도구 덕분에 도입 초기 보건 인력의 53%가 업무 효율이 높아졌다고 답했으며, 현재 인도 정부의 공공보건 인프라와 통합이 추진되고 있다. 

―AI 도입이 소규모 조직과의 기술 격차를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큰데.

“단순히 기술에 접근하게 해준다고 형평성이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비용, 역량, 인프라라는 세 가지 장벽을 융합적으로 걷어내야 한다. 도구를 제공하는 동시에 조직의 준비도를 진단하고 실습형 기술 코칭이 병행돼야 한다. 최신 기술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실제 해당 지역사회에 가장 접근하기 쉬운 해결책인지 살피는 검증도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는 1만 개 비영리 조직을 대상으로 디지털 진단과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인도네시아의 에듀파머스(Edufarmers)는 낯선 자체 앱을 강요하는 대신 현지 농민에게 친숙한 메신저 왓츠앱(WhatsApp) 안에 AI 농업 전문가를 구축해 70여 종의 병충해 진단을 지원하며 격차를 줄이고 있다. 

―비영리 조직이 AI 유지보수와 운영비의 무게를 견디려면 어떤 접근이 필요한가.

“AI는 한 번 만들고 끝나는 기술이 아니다. 막대한 장기 운영비가 조직을 짓누르지 않도록, 사업 초기부터 장기 운영 계획과 재원 다각화 방안을 촘촘히 짜는 ‘설계 단계의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by Design)’이 필수적이다. 유지보수 부담을 분산시키기 위해 AI 모델과 데이터셋을 오픈소스 기반 ‘디지털 공공재(Digital Public Goods·DPG)’로 개방해 시민 기술 커뮤니티나 학계가 함께 보완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동남아시아 1300여 개 언어의 다양성을 온전히 반영하지 못하는 글로벌 AI 모델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지원한 ‘프로젝트 아쿠아리움(Project Aquarium)’이 대표적 모범 사례다. 구글닷오알지는 100만 달러(약 13억 원)를 지원해 현지 언어 데이터를 공동 수집·개방함으로써, 개별 비영리 단체가 파편적으로 데이터를 구축하는 비용을 줄이고 튼튼한 공공 인프라를 활용하도록 도왔다. 

―‘함께 투자하는 것’은 기존의 기관 간 협업과 무엇이 다른가.

“단순히 여러 기관이 사업에 이름표만 같이 올리는 수준을 벗어나, 공통의 난제를 풀기 위해 자본과 기술, 데이터를 실질적으로 공유하는 것이다. 각 단체가 분절된 개별 도구를 맴도는 대신 공통의 기반을 지어야 한다.” 

실제로 범지구적 재난 대응에도 다자간 협업이 속속 적용되고 있다. 구글닷오알지는 무어 재단, 베조스 어스 펀드 등과 함께 2700만 달러(약 362억 원) 이상을 공동 투입해 글로벌 AI 산불 감지 위성 체계 ‘파이어샛(FireSat)’을 구축 중이며, 아시아개발은행 등 7개 기관과 5000만 달러(약 671억 원) 규모의 연합체를 꾸려 AI 악용 온라인 사기 탐지 도구에도 공동 투자하고 있다. 

―향후 5년, 좋은 필란트로피를 평가하는 기준은 무엇이 될까.

“단순히 기부금 액수만으로 훌륭한 필란트로피를 판가름하는 시대는 끝났다. 자금과 첨단 기술을 얼마나 지혜롭게 엮어냈는지, 그 결실이 생태계 전체의 문제 해결 능력을 얼마나 끌어올렸는지가 핵심 기준이 될 것이다. 미래 사회공헌의 진정한 경쟁력은 기부 사업의 개수가 아니라, 이러한 융합적 연대와 생태계를 얼마나 굳건하게 축조하느냐에 달려 있다.” 

조유현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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