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자원봉사, ‘얼마나 했나’를 넘어…“지역사회 필요에서 출발해 함께 설계해야”

‘2026 CSR 포럼’서 기업 자원봉사 설계 원칙 제시
글로벌 기업 사례로 본 지역사회 공동 설계·비영리 인프라 투자·직원 학습

“숫자만으로는 전체 이야기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자원봉사의 힘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참여시켰느냐가 아니라, 그 봉사의 결과로 개인과 기업, 지역사회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느냐에 있습니다.”

슈 카터 카일 포인트 오브 라이트(Points of Light) 선임고문은 2일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2026 CSR 포럼–기업자원봉사 임팩트: UN Volunteers의 GIVE를 중심으로’에서 영상 발제를 통해 유엔자원봉사단(UNV)의 작년 보고서를 인용하며 이같이 말했다.

한국자원봉사문화와 더나은미래가 공동 주최한 이번 포럼은 올해로 4회째를 맞았다. 기업 CSR 실무자와 자원봉사 관계자 등 140여 명이 참석했다. 올해는 UNV가 제시한 ‘글로벌 자원봉사 참여지수(GIVE)’를 중심으로 기업 자원봉사의 임팩트를 살펴봤다.

이날 발표에 참여한 포인트 오브 라이트는 조지 H.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설립한 미국의 대표적인 자원봉사 전문기관이다. 기업과 비영리, 지역사회의 자원봉사와 시민 참여를 지원해 왔으며, 한국에서는 한국자원봉사문화가 파트너 기관으로 활동한다.

2일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2026 CSR 포럼’에서 포인트 오브 라이트는 기업 자원봉사가 지역사회와 공동의 목표를 세우고 이를 함께 설계·점검하기 위한 여섯 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한국자원봉사문화

카일 고문은 자원봉사의 성과를 숫자로 측정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고 짚었다. 데이를 수집하고 의미 있게 전달하려면 시간과 자원, 조직의 역량이 필요한 데다, 서류상 좋아 보이는 결과가 반드시 긍정적인 지역사회 임팩트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기업 자원봉사가 지향해야 할 방향으로 ‘목적 있는 자원봉사(purposeful volunteerism)’를 제시했다. 더 많은 사람을 모으고 봉사시간을 늘리는 데 앞서 “공동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지역사회와 어떻게 함께할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는 관점이다. 이를 실제 활동에 적용하고 점검할 수 있도록 여섯 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 지역사회가 필요한 봉사를 묻고 파트너와 설계한다

목적 있는 자원봉사의 출발점은 기업이 하고 싶은 활동이 아니라 지역사회가 필요로 하는 활동이다. 조슬린 넬슨 포인트 오브 라이트 수석디렉터는 기업이 프로그램을 설계할 때 기업의 목적과 지역사회의 우선순위가 만나는 지점을 찾아야 한다며, “이 프로젝트가 실제로 필요한가”, “시의적절한가”, “지역사회가 실제로 우선순위로 정한 문제인가”를 비영리·지역사회 파트너와 함께 확인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지역사회의 필요를 제대로 반영하려면 비영리·지역사회 파트너를 공동 설계자로 참여시켜야 한다. 넬슨 디렉터는 이들이 해당 사회문제와 지역의 필요·강점·우선순위를 가장 잘 아는 만큼, 기업이 정한 활동을 전달받는 ‘수혜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활동 전부터 양측이 원하는 성과와 의사결정 방식, 예산, 장기 협력 가능성 등을 함께 논의하는 방식이다.

비영리와의 공동 설계에는 그에 맞는 자원 투입도 필요하다. 자원봉사 활동을 준비하고 운영하는 비영리 직원의 시간과 전문성도 실제 비용이며, 자원봉사 관리 인력과 시스템 역시 자원 투입의 일부로 본다. 넬슨 디렉터는 “좋은 자원봉사 참여는 공짜가 아니다”라고 짚었다.

글로벌 보험사 메트라이프(MetLife)는 비영리 파트너의 과제 해결에 인력과 재정을 함께 투입하는 ‘Skills for Impact’를 운영한다. 비영리 파트너가 재무 모델링이나 예산, 임팩트 분석 등 조직 운영상의 과제를 제시하면 메트라이프가 해당 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직원을 연결해 해결책을 함께 만든다. 2025년에는 직원 16명이 17개 비영리단체를 대상으로 18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참여 기관에는 활동을 통해 마련한 해결책을 실제로 실행하고 개선할 수 있도록 각각 5000달러(약 700만 원)의 추가 지원금도 제공했다.

◇ 한 번의 봉사가 다음 행동으로 이어지도록

기업 자원봉사는 한 차례 참여로 끝나서는 안 된다. 직원이 봉사의 목적과 자신의 역할, 지역사회의 맥락을 이해한 상태에서 참여하도록 준비하는 과정이 핵심이다. 글로벌 IT 기업 타타컨설턴시서비스(TCS)는 이를 위해 직원이 사회문제를 이해하고 지역사회 활동을 주도할 수 있도록 돕는 9개월 과정 ‘Leaders with Purpose’를 운영한다. 참가자들은 비영리 경영과 거버넌스, 사회문제 등에 대한 교육과 멘토링을 받고 실제 지역사회 프로젝트에도 참여한다. 이날 발표에 따르면 2019년 이후 340명 이상이 과정을 수료했다.

글로벌 물류기업 UPS 직원들은 인신매매 의심 정황을 살피는 교육을 받고, 비영리단체 TAT와 함께 이동식 교육 전시관 ‘Freedom Drivers Project’를 운송·운영하며 인신매매 예방 자원봉사에 참여한다. /TAT

봉사활동을 직원의 일상 업무와 동떨어진 경험으로 두지 않고, 사회문제에 대한 이해로 연결하는 것도 핵심 원칙이다. 왜 이 일이 중요한지, 비영리의 미션과 회사의 사회적 임팩트 방향이 무엇인지까지 이해하도록 하는 취지다.

글로벌 물류기업 UPS는 직원들이 업무 중 인신매매 의심 정황을 접할 수 있다는 운송 현장의 특성을 인신매매 예방 활동과 연결했다. 직원들에게 신고 방법 등을 교육한다. 직원들은 비영리단체 ‘트러커스 어게인스트 트래피킹(TAT)’과 함께 이동식 인신매매 교육 전시관 ‘Freedom Drivers Project’를 운송·운영하는 자원봉사에도 참여한다. 이날 발표에 따르면 관련 교육을 받은 UPS 직원은 23만5000명 이상이다.

마지막으로 봉사활동 이후의 학습과 성찰도 강조했다. 넬슨 디렉터는 “봉사활동에 참여한 비영리와 직원은 어떤 경험을 했는지, 지역사회로부터는 무엇을 들었는지 살펴야 한다”며 “피드백은 또 하나의 성과 지표를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실제 활동을 개선하는 데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의 역할은 자원봉사 프로그램을 많이 만드는 데 그치지 않는다. 윤영미 한국자원봉사문화 사무총장은 “기업이 직원들에게 활동 기회를 얼마나 많이 제공했는가보다, 직원들이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조건을 얼마나 잘 만들었는가에 주목해야 한다”고 전했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댓글 작성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더나은미래 특별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