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행은 옷이나 노래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모금에도 유행이 있다. 한 세대 전 나눔의 상징은 거리의 빨간 모금함과 ARS 전화 한 통이었다. 지금은 결제하고 남은 잔돈이 자동으로 기부되고, 기부자가 현금 대신 주식이나 가상자산을 내밀며, 어디에 기부할지 AI에게 물어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모금의 방식이 이렇게 빠르게 바뀌는 동안, 세금은 그 변화를 따라가고 있을까.
◇ 가볍게, 자주 하는 기부
첫 번째 흐름은 기부가 일상 속으로 들어왔다는 점이다. 결제 금액의 끝자리를 반올림해 차액을 기부하고, 걸음 수만큼 적립하고, 클릭 한 번으로 참여한다. 미국의 ‘기빙튜즈데이’는 하루 동안 수조 원 규모의 온라인 기부를 모으는 연례행사가 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물건을 사면 수익 일부가 기부되는 ‘착한 소비’가 젊은 세대의 기부 입문 통로가 되었다.
다만 세금의 눈으로 보면 이 가벼운 기부가 늘 가볍게 처리되는 것은 아니다. 기부금영수증이 있어야 연말정산에서 세금을 돌려받는데, 굿즈처럼 물건값과 기부금이 섞여 있으면 기부인지 소비의 대가인지가 불분명해 영수증 발급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마음과 소비가 섞인 새로운 기부 방식은 아직 제도의 경계선 위에 서 있는 셈이다.
◇ 현금이 아니라 자산을 기부하는 시대
두 번째 흐름은 자산 기부의 확산이다. 미국에서는 주식과 가상자산을 현금화하지 않고 그대로 기부하는 방식이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기부 채널로 꼽힌다. 한 가상자산 기부 플랫폼이 2025년 한 해 처리한 기부만 1억 달러를 넘는다.
배경에는 세금이 있다. 1000만 원에 산 주식이 3000만 원이 되었을 때, 팔면 차익 2000만 원에 세금이 붙지만 미국에서는 팔지 않고 공익단체에 직접 기부하면 그 세금 없이 현재 가치인 3000만 원 기준으로 공제를 받는다. 파는 것보다 기부하는 쪽이 유리해지는 것이다. 영국의 ‘기프트 에이드(Gift Aid)’는 기부자가 1파운드를 내면 그가 이미 낸 소득세 일부인 25펜스를 국가가 단체에 보태주는 제도다. 사실 우리에게도 이를 참고한 ‘기부장려금’ 제도가 2016년부터 있다. 기부자가 자신이 돌려받을 세액공제 상당액을 단체가 대신 받도록 신청하는 방식인데, 아는 기부자가 드물어 사실상 잠들어 있다. 제도가 있다고 유행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상황을 하나 더 보자. 가상자산 소득에 대한 과세는 시행이 거듭 미뤄져 왔고 언제 어떻게 시작할지 논의가 진행 중이지만, 과세가 시작되면 자산 자체를 기부하려는 수요가 커질 것이다. 상속·증여 국면의 평가 규정과 공익법인 실무 가이드라인은 마련되기 시작했지만, 정작 기부하는 사람에게 어느 시점의 가격으로 얼마의 혜택을 줄지는 세법에 또렷이 적혀 있지 않다. 기부자의 선의가 먼저 도착했는데 제도가 아직 마중을 나가지 못했다.
◇ AI에게 기부처를 묻는 기부자들
세 번째 흐름은 AI다. 해외에서는 비영리단체 대부분이 이미 모금 문안 작성이나 기부자 발굴에 AI를 쓴다. 더 주목할 변화는 기부자 쪽이다. 사람들이 검색창 대신 AI에게 기부할 곳을 묻기 시작했고, AI의 답변에 오르지 못한 단체는 기부자를 만날 기회 자체를 잃는다.
여기서 세금은 뜻밖의 역할을 맡는다. AI가 추천의 근거로 삼는 것은 결국 공개된 정보다. 그중 상당 부분은 공익법인이 세법에 따라 해마다 국세청에 제출하고 공개하는 결산서류다. 성실하게 공시한 단체일수록 AI의 추천을 받고, 추천은 기부로 이어진다. 부담스러운 규제로 여겨졌던 공시 의무가 AI 시대에는 기부자를 만나게 해주는 모금의 기반이 되는 것이다.
◇ 답례품이 이끄는 기부, 고향사랑기부제
네 번째 흐름은 우리 곁에 있다. 일본의 고향납세를 참고한 고향사랑기부제는 원하는 지역에 기부하면 세금을 돌려주고 특산품까지 답례로 주는 제도다. 10만 원을 기부하면 10만 원 전액이 세금에서 돌아오고 3만 원 상당의 답례품이 더해진다. 시행 3년 만에 모금액이 두 배 이상 늘었고, 기부금의 90% 이상이 비수도권으로 흘러가 지역 재정을 보태고 있다. 올해부터는 10만 원 초과 구간의 환급 비율도 크게 높아졌다. 세제가 유행을 뒤따라간 것이 아니라, 세제가 새로운 기부의 유행을 만들어낸 드문 사례다.
◇ 유행은 빠르고 세법은 신중하다
돌아보면 세금은 기부 앞에서 두 얼굴을 보인다. 자산 기부의 세금 부담을 덜어주는 미국, 기부자가 낸 세금을 단체에 얹어주는 영국, 기부액을 돌려주고 답례품까지 주는 고향사랑기부제에서는 기부를 키우는 조력자다. 반면 대가가 섞여 영수증을 받기 어려운 굿즈형 기부, 처리 기준이 아직 정비되지 않은 가상자산 기부, 만들어 놓고도 알리지 못한 기부장려금 앞에서는 문지기가 된다.
세계의 방향은 전자를 향한다. 미국은 고액 기부자 위주로 설계되어 있던 기부 공제를 올해부터 보통의 월급쟁이에게도 일정 한도까지 열어주었다. 종전에는 지출을 일일이 신고하는 소수만 공제받을 수 있어 대다수 직장인은 기부해도 혜택이 사실상 없었는데, 이제는 그들도 혜택받는다. 같은 개정에서 고액 기부 공제에 문턱을 새로 두기는 했지만, 보통 사람의 기부까지 세금이 응원하겠다는 방향만큼은 분명하다.
세제 혜택은 기부의 동기가 아니라 조력자여야 한다는 것이 이 칼럼의 오랜 지론이다. 다만 조력자에게도 자격이 필요하다. 돕는 이는 상대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잔돈으로, 자산으로, AI의 추천으로 기부하는 시대에 세법이 지난 시대의 문법으로만 말한다면, 그 선의의 상당 부분은 제도 바깥에서 길을 잃을 것이다. 세법의 신중함은 미덕이지만, 신중함이 더딤의 다른 이름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모금의 유행이 바뀔 때, 세제가 반걸음 뒤가 아니라 반걸음 앞에서 기다려주기를 바란다.
박훈 서울시립대학교 세무학과 교수
필자 소개
서울시립대학교 세무학과 교수이자 대외협력부총장으로, 상속세제와 기부세제 분야를 연구하는 세법학자입니다. 서울대학교 법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세법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일본 도쿄대학교와 미국 UC 버클리에서 연구 활동을 했습니다. 한국세법학회 회장 등 학계 주요 학회를 이끌며 조세제도 연구와 납세자 권익 보호에 힘써 왔고, 국세청 납세자보호관(개방직 국장)과 조세심판원 비상임심판관 등을 지내며 정책 현장에서도 활동했습니다. 이러한 공로로 납세자의 날에 2023년 홍조근정훈장을 수훈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