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훈 서울시립대학교 세무학과 교수
[박훈의 나눔과 세금] 세상을 바꾸는 기부와 세금

“내 돈이 어디로 갔나요?” 기부하는 사람들이 달라지고 있다. 예전에는 연말에 모금함에 봉투를 넣고 잊어버리는 것이 미덕이었다면, 요즘 기부자는 묻는다. 내가 낸 돈이 무엇을 바꾸었느냐고. 공익법인들도 이 물음에 답하려 애쓴다. 사업의 성과를 측정하고, 수혜자의 삶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보여 주는 연구가 하나둘 나오고 있다. 기부가 ‘착한 일’에서 ‘투자’로 옮겨 가는 중이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 세금은 왜 기부를 거들어야 하나 세법도 기부를 거든다. 봉급생활자가 기부하면 세액공제를 받고, 개인사업자나 법인은 기부금을 일정 한도 안에서 경비로 인정받아 소득세나 법인세가 줄어든다. 공익법인에 출연한 재산은 일정 요건을 갖추면 상속세나 증여세 과세가액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런데 이 지원을 늘리자고 하면 곱지 않은 시선이 따라온다. 좋은 일 하겠다는 사람에게 왜 나라가 세금까지 깎아 주느냐, 공익법인은 결국 절세 창구가 아니냐는 것이다. 이런 시각을 무조건 편견이라 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그런 사례가 없지 않았고, 상속세 및 증여세법이 공익법인에 한 회사의 주식을 일정 비율 넘게 출연하면 세금을 매기는 것도 그 때문이다. 세제 혜택은 결국 국가가 받을 세금을 덜 받는 것이다. 그러니 혜택을 유지하고 넓히려면 정부와 국회를 설득해야 한다. 말로 하는 설득에는 한계가 있다. 국가가 못 하거나 서툰 일을 공익법인이 해내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가장 확실한 근거다. ◇ 5년짜리 정부, 1년짜리 예산 국가가 서툰 일이 무엇인지는 구조를 보면 보인다. 대통령의 임기는 5년이고 예산은 1년 단위로 짜인다. 복지예산은 한번 늘리면 줄이기 어렵고, 줄이면

[박훈의 나눔과 세금] 살던 집을 기부하는 법

올여름 가장 뜨거운 세금 이야기는 단연 집이다. 8월 초 발표된 세제개편안은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의 틀을 ‘주택 수’에서 ‘가격과 실거주’ 중심으로 바꾸겠다고 한다. 집은 사고파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라는 것이다. 방향이 옳으냐를 따지기 전에, 요즘 집은 갖고 있어도 고민이고, 팔아도 고민이고, 물려줘도 고민이다. 그런데 집을 두고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더 있다. 사회에 내어주는 일, 기부다. ◇ 집 한 채뿐인 재산, 기부는 왜 어려운가 우리 국민의 가계 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7할이 넘고, 그 한가운데에 집이 있다. 유산기부 상담 현장에서도 “현금은 없어도 집 한 채는 있다”는 분들을 자주 만난다. 평생 모은 재산이 지금 살고 있는 집 한 채면, 나눔 역시 그 집으로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런데 정작 기부 통계에서 집은 손에 꼽을 만큼 드물다.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제도 곳곳의 문턱에 그 마음이 걸려 넘어지기 때문이다. 문턱은 먼저 기부하는 쪽에 있다. 다행히 개인이 집을 기부하면 기부금액은 처음 산 값이 아니라 기부할 때의 시세로 인정받는 것이 원칙이다. 문제는 혜택을 담는 그릇이 작다는 데 있다. 기부금 세액공제는 그해 소득의 일정 비율까지만 허용되고, 넘치는 금액은 10년까지만 이월된다. 평생 모은 재산이 집 한 채인 은퇴한 어르신을 생각해 보자. 시세 10억 원의 집을 기부해도 연금 소득이 많지 않으니 실제 공제받는 금액은 선의의 크기에 한참 못 미치고, 10년을 기다려도 다 쓰지 못한 혜택은 그대로 사라진다. 큰 기부일수록 대접이

[박훈의 나눔과 세금] 모금에도 유행이 있다, 세금은 그 유행을 아는가

유행은 옷이나 노래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모금에도 유행이 있다. 한 세대 전 나눔의 상징은 거리의 빨간 모금함과 ARS 전화 한 통이었다. 지금은 결제하고 남은 잔돈이 자동으로 기부되고, 기부자가 현금 대신 주식이나 가상자산을 내밀며, 어디에 기부할지 AI에게 물어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모금의 방식이 이렇게 빠르게 바뀌는 동안, 세금은 그 변화를 따라가고 있을까. ◇ 가볍게, 자주…현금을 넘어선 기부 첫 번째 흐름은 기부가 일상 속으로 들어왔다는 점이다. 결제 금액의 끝자리를 반올림해 차액을 기부하고, 걸음 수만큼 적립하고, 클릭 한 번으로 참여한다. 미국의 ‘기빙튜즈데이’는 하루 동안 수조 원 규모의 온라인 기부를 모으는 연례행사가 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물건을 사면 수익 일부가 기부되는 ‘착한 소비’가 젊은 세대의 기부 입문 통로가 되었다. 다만 세금의 눈으로 보면 이 가벼운 기부가 늘 가볍게 처리되는 것은 아니다. 기부금영수증이 있어야 연말정산에서 세금을 돌려받는데, 굿즈처럼 물건값과 기부금이 섞여 있으면 기부인지 소비의 대가인지가 불분명해 영수증 발급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마음과 소비가 섞인 새로운 기부 방식은 아직 제도의 경계선 위에 서 있는 셈이다. 두 번째 흐름은 자산 기부의 확산이다. 미국에서는 주식과 가상자산을 현금화하지 않고 그대로 기부하는 방식이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기부 채널로 꼽힌다. 한 가상자산 기부 플랫폼이 2025년 한 해 처리한 기부만 1억 달러를 넘는다. 배경에는 세금이 있다. 1000만 원에 산 주식이 3000만 원이 되었을 때, 팔면 차익 2000만 원에 세금이 붙지만 미국에서는 팔지 않고 공익단체에

[박훈의 나눔과 세금] 돌잔치가 사라진 시대, 출산을 축하하는 법

한때 아기의 첫 생일상에는 으레 금반지가 올랐다. 한 돈짜리 앙증맞은 금반지에 “건강하게 자라라”는 덕담을 얹어 건네던 풍경이다. 그러던 것이 금값이 천정부지로 뛰면서, 금반지는 슬그머니 봉투 속 현금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요즘은? 아예 돌잔치를 건너뛰는 집이 부쩍 늘었다. 축하할 아기가 줄어든 탓도 있고, 번거롭게 사람을 부르지 않으려는 분위기 탓도 있다. 새 생명을 맞이하는 방식이 이렇게 조용히 변해왔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저출산이라는 큰 숙제 앞에서 우리가 정작 놓치고 있는 것은 ‘돈을 얼마나 더 줄 것인가’가 아니라 ‘아이의 탄생을 어떻게 함께 기뻐할 것인가’인지도 모른다. 아이가 태어나면 온 동네가 떡을 돌리고, 일가친척과 이웃이 너나없이 축하를 건네던 그 온기 말이다. 2024년 초, 한 기업이 직원에게 자녀 한 명당 1억 원의 출산장려금을 주겠다고 발표해 화제가 됐다. 그런데 반가움도 잠시, 이 돈에 2천만 원이 넘는 세금이 붙을 처지였다. 축하의 돈에 세금이 따라붙는 묘한 상황. 결국 정부가 서둘러 법을 고쳐 회사가 주는 출산지원금을 비과세로 돌렸다. 기업의 통 큰 결단이 제도 개선으로 이어진, 흐뭇한 장면이었다. 그런데 이 비과세는 ‘회사가 직원에게’ 줄 때만 통한다. 같은 축하금이라도 누가 주느냐에 따라 세금의 운명이 갈린다. 새 식구를 축하하며 5천만 원을 건넨다고 치자. 아기의 할아버지·할머니가 갓 부모가 된 자녀에게 보태면 세금이 한 푼도 없다. 그런데 가까운 친구나 이웃이 똑같은 마음으로 건네면 500만 원 가까운 증여세가 매겨진다. 삼촌·이모가 줘도 수백만 원의 세금을 피하기 어렵다. 같은

[박훈의 나눔과 세금] 기부에도 국경이 있다

국경을 넘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검역을 통과하지 못한 과일, 비자를 받지 못한 사람, 그리고 놀랍게도 세제 혜택을 받지 못한 기부가 그렇다. 좋은 마음은 국경이 없다고들 한다. 그런데 세금은 다르다. 세 혜택에는 꽤 뚜렷한 국경이 있다. 독립운동가 백범 김구 선생의 차남인 김신 전 공군참모총장은 생전에 해외 대학들에 거액을 기부했다. 한미 우호와 독립운동의 역사를 알리겠다는, 누가 봐도 뜻깊은 기부였다. 그런데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이 해외 기부를 둘러싸고 후손들에게 세금 문제가 생겼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유는 단순했다. 해외 대학은 우리 세법상 ‘공익법인등’으로 인정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부의 진정성이 아니라, 기부처의 세법상 지위가 과세 여부를 갈랐다. 애국적 기부가 사후적으로 상속세 부담 문제로 되돌아온 셈이다. 무언가 꺼림칙하지 않은가. 우리 세법은 기부금 혜택을 ‘공익성이 확인된 단체’를 중심으로 설계한다. 법인세법과 소득세법은 기부금을 특례기부금·일반기부금 등으로 나누고, 세제 혜택이 인정되는 기부처와 요건을 정하고 있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도 공익법인등에 대한 출연재산의 과세상 취급을 별도로 규정한다. 탈세와 우회 증여, 자금 유출을 막기 위해서다. 나쁜 의도를 걸러내는 장치인 건 맞다. 그런데 선의로 이루어진 해외 기부까지 그 테두리 밖으로 밀려난다면 기부자로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다. 착한 일을 했는데 나쁜 일을 한 것처럼 취급받는 느낌이랄까. 다만 여기서 오해를 하나 풀고 가야 한다. 해외 단체에 대한 기부라고 해서 무조건 세제 혜택 밖에 있는 건 아니다. 예컨대 우리나라가 가입했거나 법령상 공익성이 인정되는 일정한 국제기구에 대한 기부는 세법상 혜택의

[박훈의 나눔과 세금] 미래를 위한 기부 조기교육

아이에게 경제를 가르치는 부모는 많다. 그런데 기부를 가르치는 부모는 얼마나 될까. 세금은 국가가 걷는 것이지만, 기부는 스스로 내어주는 것이다. 그 차이가 작은 것 같아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 세금은 의무이고 기부는 선택이다. 그래서 기부는 교육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기부 문화는 지난 수십 년간 꾸준히 성장해 왔다. 재난이 닥칠 때마다 국민은 놀라운 연대감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일상적이고 지속적인 기부, 특히 미래 세대를 위한 ‘유산 기부’나 ‘계획 기부’에 대해서는 여전히 낯설게 느끼는 이들이 많다. 더 큰 문제는 기부를 하려는 마음이 있어도 가족의 반대에 부딪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실제로 유산 기부의 현장에서는 유류분 제도와 유언의 방식 문제가 자주 발목을 잡는다. 어느 대학에서는 백억 원대 규모의 기부 약정이 기부자 사망 후 유족의 문제 제기로 무산된 사례도 있었다. 생전에 뜻을 세워두었더라도, 법적 절차와 가족 간의 합의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 뜻은 실현되기 어렵다. 기부는 개인의 결심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가족이 함께 동의하고, 제도 안에서 설계될 때 비로소 완성된다. 우리의 세법은 기부에 여러 혜택을 마련해 뒀다. 개인이 공익법인 등에 기부할 경우 소득세 신고 시 기부금에 대한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고, 공익법인에 재산을 출연할 경우 상속세·증여세 과세가액에서 제외되는 혜택도 있다. 나아가 유산 기부를 활성화하기 위한 이른바 ‘유산기부 세액공제’ 법안이 현재 국회에서 개정 논의 중에 있어, 제도적 기반은 조금씩 넓어지고 있다. 그러나 제도가 아무리 잘 갖추어져 있어도, 기부하겠다는 마음이 먼저 자라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세금 혜택은 기부의 동기가 아니라 조력자여야 한다. 요즘 어린이 경제교육, 세금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설 명절이 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기사가 있다. 아이가 받은 세뱃돈으로 통장을 만들어주고, 주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