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UNGC ‘2025 코리아 리더스 서밋’
AI 전환 충격, 누가 감당하나…“노동·산업 재설계 시급”
“인공지능(AI) 전환은 단순한 기술 경쟁이 아니라 노동과 산업 구조 자체를 다시 설계해야 하는 과제입니다.”
리 키옐가르드 국제노동기구(ILO) 국장은 지난 20일 서울 그랜드하얏트에서 열린 ‘코리아 리더스 서밋 2025’에서 이렇게 전했다. UNGC(유엔글로벌콤팩트) 창립 25주년을 맞아 열린 이번 행사는 AI 시대 기업의 지속가능성 전략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으며, 국제기구 고위 관계자와 국내외 전문가, 기업·기관 대표 등 6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날 토크콘서트의 핵심 화두는 ‘정의로운 기후·AI 전환’이었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AI·기후·에너지 전환이 동시에 진행되는 다중 전환기 속에서 “기술 변화 속도는 앞서가는데 노동시장·지역사회·취약계층의 대응은 따라가지 못하는 구조적 격차”가 가장 큰 위험이라고 진단했다.
◇ “AI 속도는 폭주, 노동 전환은 제자리”
전문가들은 AI가 단순 자동화를 넘어 직무 구조·평가 방식·숙련 체계를 재편하는 속도가 “전례 없이 빠르다”고 입을 모았다. 반면 재교육·직무 이동·사회안전망 등 제도적 기반은 여전히 과거 틀에 머물러 있어 전환 비용이 노동자 개인에게 과도하게 떠넘겨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흥준 서울과기대 교수는 한국의 산업 구조가 AI 충격을 더 증폭시킨다고 설명했다. 발전·자동차·철강 등 다단계 하청이 많은 산업 특성상 한 사업장의 변화가 수많은 하청 노동자의 생계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정의로운 전환의 성패는 결국 노사정 사회적 대화에 달려 있다”며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했다.

오계택 한국노동연구원 본부장은 AI 전환을 “여러 산업 충격이 한꺼번에 몰아치는 다중 충격기”라고 규정했다. 그는 “일자리가 사라지는 만큼 새로운 일자리도 생기지만, 그 이동 비용을 노동자에게만 떠넘기는 방식은 지속될 수 없다”며 직무 재설계와 재교육(업스킬링·리스킬링) 확대, 노사정 대화의 제도화를 제안했다.
류정혜 국가 AI전략위원회 공동의장은 AI가 불러오는 ‘일의 구조’ 변화에 주목했다. 그는 최근 글로벌 기업들의 구조조정 사례를 언급하며 “AI 전환은 특정 직무를 대체하는 문제가 아니라 ‘일의 구조’ 자체를 바꾸는 변화”라고 진단했다. 특히 중간 숙련직의 재편 압력이 커지면서 “노동을 통한 기존 소득 구조가 흔들리고 있다”며 새로운 분배 논의와 사회적 일자리 확대 필요성을 강조했다.
◇ 기술이 아니라 ‘경로 부재’가 위험…이동 사다리 설계해야
기술 혁신과 고용 안정성의 충돌은 토론에서도 핵심 쟁점이었다. 성종은 마이크로소프트 엘리베이트스킬 한국 총괄 디렉터는 AI를 “조종사가 아니라 부조종사(Co-pilot)”라고 비유하며 기술 자체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AI를 자기 도구로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느냐가 전환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답했다. 이어 “AI 시대의 진짜 위험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기술을 습득하지 못해 뒤처지는 구조”라고 역설했다.

전문가들은 AI 시대의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서는 결국 ‘경로 설계’가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박정민 오스테드 한국 대표는 재생에너지 공급망 전환 사례를 언급하며 “새 산업은 새 일자리를 반드시 만들지만, 문제는 기존 인력이 그 일자리로 이동할 ‘경로’를 시장이 자동으로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역사회·교육기관·기업이 함께 참여하는 전환 설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은경 UNGC 한국협회 실장은 “정의로운 전환은 결국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전환을 뜻한다”며 “전환 충격이 가장 먼저 닿는 취약계층을 앞줄로 끌어올리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 노동시장의 경직성과 양극화 문제도 함께 짚었다.
한편, 이날 행사에서는 책임 있는 AI 원칙, 지속가능금융·공급망 전략, 기후 대응 방안 등도 논의됐으며 국내외 기업들의 ESG 실천 사례가 공유됐다. 유연철 UNGC 한국협회 사무총장은 폐회사에서 “AI 시대의 지속가능성은 결국 ‘사람’이 변화의 중심에 설 수 있도록 만드는 데서 출발한다”며 “정부·기업·시민사회가 함께 전환 비용을 줄이고 이동 경로를 설계해야 정의로운 전환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김규리 더나은미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