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연한 기회로 공익위원회 소속이 되어 활동을 시작한 지 어느덧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혼 및 가사사건을 수행하며 자연스럽게 가정폭력 피해자, 위기 아동·청소년 등 법의 보호가 절실한 이들을 접하게 되었다. 사건들을 경험할수록 반복해서 마주하게 되는 사실이 있다.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사람일수록 법의 도움이 더욱 절실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들은 법에 가장 늦게 도달한다는 점이다.
가정폭력 피해자 상담 과정에서 한 피해자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남편이 몸만 나가라고 하는데, 정말 그래야 하나요?” 짧은 질문이었지만, 그 안에는 단순한 법률 문제를 넘어선, 오랜 시간 누적된 두려움과 무력감이 담겨 있었다. 현행법상 재산분할을 통한 보호장치가 마련되어 있음에도, 피해자는 자신이 그러한 권리를 요구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낯설어하고 있었다. 결국 법률 지원은 단순히 법률을 해석하고 설명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자신의 삶을 지킬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기도 하다.
또 다른 사건에서는 미성년 남매가 어머니의 카드 빚으로 집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하면서, 아이들의 주거 안정과 재산 보호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아이들은 아버지로부터 상속받은 주택에서 할머니와 함께 생활하고 있었으나, 어머니의 채무로 인해 지분이 경매에 넘어갔고, 이후 경락인이 공유물분할소송을 제기하면서 삶의 터전을 잃을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소송 과정에서 현물분할 원칙이라는 법리를 강조하는 한편, 미성년자의 생활 기반과 주거 안정이라는 가치 역시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는 점을 함께 주장했다. 다행히 아이들의 지분 상당액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사건을 마무리할 수 있었지만, 그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아이들은 소송을 통해 지급받은 금액을 보증금으로 공공임대주택 입주를 지원하려 했지만, 미성년자는 임대주택 지원 자격이 되지 않아 할머니 명의를 빌릴 수밖에 없었다. 만약 할머니에게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긴다면, 아이들은 친족 간 상속 분쟁이라는 또 다른 불안에 놓일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소송을 통해 확보된 재산이 이후에도 안전하게 보호될 수 있는지,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안정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었다.
공익 사건을 수행하면서 자주 느끼는 것은, 판결문 하나로 삶이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법은 중요한 안전망이지만, 모든 상처와 불안을 해소할 수는 없다. 공익변호사의 역할 역시 소송을 수행하거나 법률 자문을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제도가 현실 속에서 실제로 작동할 수 있도록 연결하고, 법의 언어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의 삶을 다시 제도 안으로 끌어오는 일에 가깝다. 결국 공익이란 거창한 선언 이전에, 가장 취약한 순간의 사람을 사회가 끝내 외면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정유진 법무법인(유한) 대륙아주 공익위원회 변호사
로펌공익네트워크는 로펌의 공익활동 활성화를 위해 2016년에 결성되어 현재 국내 12개 주요 로펌(법무법인 광장, 김앤장 법률사무소, 법무법인 대륙아주, 법무법인 동인, 법무법인 로고스, 법무법인 바른, 법무법인 세종, 법무법인 원, 법무법인 율촌, 법무법인 지평, 법무법인 태평양, 법무법인 화우)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본 네트워크는 로펌이 서로 힘을 합쳐 로펌 및 변호사의 공익활동을 활성화하고 로펌의 사회적 책임을 다할 방법을 지속적으로 모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여전히 따뜻한 法> 시리즈를 통해 변호사들의 프로보노 활동을 생생히 알리고, 법률가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전함으로써 공익활동의 가치가 우리 사회 전반에 확산되기를 기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