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여전히 따뜻한 法] 법의 문턱 밖에 선 아이들

법무법인(유) 로고스는 보다 책임 있는 이웃사랑 실천과 체계적인 사회공헌을 위해 2011년 11월 17일 사단법인 ‘희망과동행’을 설립했다. 지난 10여 년 동안 다문화, 한부모 가정, 청각장애 청소년 등 취약계층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멘토링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꾸준히 활동해왔다. 그리고 2024년 8월, 주무관청이 법무부로 이관된 이후에는 법률 지원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단계의 공익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여름, 우리는 오랜 파트너십을 맺어온 지방자치단체 및 산하 기관과 함께 법률구조지원 활동을 재개했다. 이 과정에서 필자가 처음 만나게 된 한 청소년이 있었다. 외국인 어머니의 품에 안겨 갓난아기 때 한국에 들어온 아이였다. 한국인 아버지와 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고, 국적도 한국, 모국어도 한국어였다. 어린이집부터 중학교까지 공교육을 받았고, 친구들도 모두 한국인이었다. 그 누구도 이 아이를 ‘외국인’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그저 대한민국에서 자라온 ‘한국 아이’였다.

그러나 부모의 이혼과 함께 상황은 급변했다. 어머니가 국적을 취득하지 못한 상태에서 아버지가 제기한 친생부인 청구가 법원에서 인용되면서, 아이의 기본증명서와 가족관계증명서 등 신분 기록이 모두 폐쇄됐다. 우리나라 국적법은 원칙적으로 혈통주의를 따르며, 친생부인 인용 판결에는 소급효가 인정된다. 판례는 없지만, 이 경우 아이는 ‘처음부터 한국인 아버지와 혈연관계가 없었던 것’으로 법적으로 간주되면서 국적 취득의 효력까지 사라진다. 하루아침에 ‘한국인 청소년’이 ‘불법 체류 외국인’으로 변한 것이다.

이름은 남아 있었지만, 사회가 인정하는 신분은 사라졌다. 다니던 학교는 교과서를 반납한 뒤 떠나야 했고, 살던 공공임대주택 역시 더는 거주할 수 없게 됐다. 국적법, 다문화가족지원법, 공공주택특별법 어디에서도 이 상황을 바로잡을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미성년자인 아이는 국적 회복이나 귀화를 스스로 신청할 수 없었고, 외국인으로 등록되지 않았으므로 사회복지 혜택에서도 완전히 배제됐다. 법적 지위가 ‘공중에 떠버린’ 상태였다.

다행히 법무부가 시행 중인 ‘국내 장기체류 아동 교육권 보장을 위한 체류자격 부여 방안’(현재 2028년 3월 31일까지 연장)의 적용대상에 해당함을 확인했다. 아이는 학업을 위한 체류자격(D-4)을, 어머니는 기타(G-1) 체류자격을 부여받으며 학교와 거주지를 지킬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제도는 한시적 조치다.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거나 성인이 되는 순간 체류자격은 종료된다. 이후 스스로 출국하지 않으면 불법체류자가 된다. 그때를 대비해 어떤 절차를 준비해야 하는지 안내해줄 전문가를 찾기도 쉽지 않다. 현장에서 해당 제도의 존재조차 모르는 학교, 행정기관, 지원기관도 적지 않다. 외국인 아동이라도 초·중·고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기본 원칙조차 충분히 알려지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유엔아동권리협약 제8조는 아동이 이름, 국적, 가족관계 등 법률적으로 인정된 신분을 보존할 권리가 있음을 명확히 규정한다. 신분이 불법적으로 박탈된 경우, 국가는 이를 신속하게 회복시키기 위한 보호와 원조를 제공해야 한다고도 명시한다. 이는 특정 국가의 정책이 아니라, 인간(Human Being)으로서의 기본 권리다. 그러나 현실에서 어른들의 사정으로 법적 신분을 잃은 아이는 스스로 이를 되찾을 방법이 없다.

국적을 박탈당한 아이든, 출생등록조차 이루어지지 못한 아이든, 이 신분 공백을 회복할 제도적 장치는 여전히 미비하다. 감사원 조사에 따르면 출생신고 없이 남겨진 외국인 아동은 4천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헌법재판소는 2023년 모든 아동에게 출생등록될 권리가 있음을 인정하며 관련 법률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고, 2025년 5월 31일까지 법 개정을 명했다. 그러나 국회 논의는 아직 계류 중이며, 그 사이에도 아이들은 ‘법적 존재로 인정받지 못한 채’ 하루를 버티고 있다.

아동은 스스로 권리를 주장하기 어렵다. 결국 어른이 지켜주지 않으면, 아동의 권리는 손쉽게 무너진다. 그러나 반대로 말하면, 누군가 곁에서 손을 내밀 때 아이의 삶은 다시 이어질 수 있다. ‘희망과동행’이라는 이름처럼, 우리는 아이들의 희망을 지키는 동행자가 되고자 한다. 법이 아이들의 일상을 이어주는 울타리가 될 수 있도록, 그리고 아동의 권리가 제도 속에서 실제로 보장될 수 있도록 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많은 아이들이 ‘따뜻한 법’을 필요로 하고 있다. 우리는 그 따뜻함을 지켜내고 싶다.

홍예지 법무법인 (유)로고스 변호사

로펌공익네트워크는 로펌의 공익활동 활성화를 위해 2016년에 결성되어 현재 국내 12개 주요 로펌(법무법인 광장, 김앤장 법률사무소, 법무법인 대륙아주, 법무법인 동인, 법무법인 로고스, 법무법인 바른, 법무법인 세종, 법무법인 원, 법무법인 율촌, 법무법인 지평, 법무법인 태평양, 법무법인 화우)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본 네트워크는 로펌이 서로 힘을 합쳐 로펌 및 변호사의 공익활동을 활성화하고 로펌의 사회적 책임을 다할 방법을 지속적으로 모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여전히 따뜻한 法> 시리즈를 통해 변호사들의 프로보노 활동을 생생히 알리고, 법률가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전함으로써 공익활동의 가치가 우리 사회 전반에 확산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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