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여전히 따뜻한 法] 억눌린 자에게, 자유를

변호사로서 걸음을 뗀 지 10년이 되었다. 재단법인 사랑샘의 노인·홈리스 공익전담변호사에서 법무법인(유한) 동인의 공익전담변호사까지, 처음부터 오롯이 공익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특별한 사명감 보다는, 그저 좋은 일을 하고 싶다는 소박하고 순진한 동기가 10년이라는 제법 긴 시간을 이끌어왔다는 것이 감회가 새롭다.

필자가 속한 동인 공익위원회는 사회적경제, 난민·이주민, 아동·청소년, 장애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공익활동을 하고 있다. 모든 분야가 나름의 어려움과 고충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홈리스’가 제일 막막하게 느껴진다. 길거리 노숙인, 쪽방촌 거주민에게 발생하는 법률문제는 채무, 민사, 형사, 가사 모든 영역을 아우르는데 그들의 애달픈 인생사만큼이나 법적인 해결도 녹록지 않다. 특히 홈리스 명의를 도용한 대포차, 대포폰, 사업자등록 문제는 예전부터 제기되어 왔지만 사회적으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런 문제의식에 공감한 다른 공익변호사님들과 뜻을 모아 홈리스법률지원단을 조직하여 2019년도에 소송을 제기했다. 명의를 도용 당한 홈리스분들을 대리해 과세 처분의 무효를 구한 것이다. 필자가 맡은 A씨는 어린 시절부터 신경계 질환으로 사회생활에 어려움이 많았다. 가정에서 보호 받지 못하고 오히려 가족 간 극심한 갈등을 견디다 못해 고향을 떠나 무작정 서울로 향했다. 영등포역에서 노숙을 하던 A씨는 돈을 벌게 해 주겠다는 말에 속아 인천으로 향했고, 명의범죄단의 감시 속에 협박과 폭행에 못 이겨 A씨 명의로 사업자등록, 핸드폰 가입, 자동차 등록을 하게 되었다.

3개월 만에 범죄단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지만, A씨에게는 2700만 원의 채무와 세금이 남았다. 다행히 파산 제도를 통해 일반 채무는 면책이 되었으나, 체납된 세금은 해결할 길이 없었다. 대포차가 자산으로 잡혀 한동안은 기초생활수급자로 정부의 지원도 받을 수 없었다.

A씨가 여러 고시원을 전전했기 때문에 6개 구청을 상대로 해야 했지만, 절차 진행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위 구청 중 1곳만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다행히 구청은 A씨의 안타까운 사정을 감안하여 자동차세를 직권취소하는 것으로 첫 소송이 마무리되었다.

재작년에는 다시 A씨를 대리하여 다른 구청들을 상대로 자동차세부과처분의 무효확인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앞의 소송과 달리 피고들의 입장은 완강했다. 원고 대리인의 조정 신청을 받아 들여, 재판부에서는 원고의 장애, 생계 어려움 등 고려했을 때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실익이 없으므로 자동차세 부과처분을 취소하도록 하는 권고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피고들은 법무부장관의 불수용 지휘에 따라 이의를 제기했다. “자동차등록원부상 소유자로 등록된 자가 실제로는 소유자가 아니라는 사정만으로는 자동차세 납세의무를 면하지 못한다”며 “A씨에게 자동차세를 부과한 것이 무효라고 할 정도로 중대하고 명백하다고 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좋은 결과를 장담하기 어려웠으나, 다행히 법원은 A씨의 손을 들어주었다. 원고의 명의가 도용되었음을 인정하여 “피고들의 처분에는 중대한 하자가 존재”한다고 보았으며, “납세의무자인 원고에게 피고들의 처분에 따른 불이익을 감수시키는 것이 현저하게 부당하다”고 하여 피고들의 처분을 무효로 판단한 것이다.

홈리스 명의도용 문제는 예전부터 지속적으로 해결을 촉구해 왔음에도, 현재까지도 의미 있는 개선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혹자는 명의도용으로 인해 세금고지서를 받더라도 이미 자력이 없는 홈리스들에게는 무시해도 되는 문제라고 치부할 수 있고, 실제로 기초생활수급자인 이들에게는 세금의 부과가 실질적인 불이익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불이익 여부를 떠나, 범죄피해자인 홈리스에게 오히려 국가가 체납자라는 이름으로 옥아맨 족쇄를 푸는 것은 인간존엄과 진실 규명의 문제로서 당위성을 가진다.

법원의 판결로 마침내 A씨는 15년 만에 범법자라는 오명을 벗었다. 필자의 변호사 경력보다 긴 시간 동안, 매달 날아오는 독촉고지서를 보며 움츠러들었던 A씨의 마음이 마침내 자유를 찾았다.

위 사건을 마무리하며, 발생한 법률문제로 인생이 한 부분이 또는 전체가 억눌린 이에게 자유를 되찾아 주는 것이 변호사의 사명이라는 나름의 소회를 가진다. 공익변호사에게는 소외된 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와 역할이 주어졌음을 실감하며, 앞으로의 10년도 새롭게 각오를 다져본다.

김광훈 법무법인(유한) 동인 변호사

로펌공익네트워크는 로펌의 공익활동 활성화를 위해 2016년에 결성되어 현재 국내 12개 주요 로펌(법무법인 광장, 김앤장 법률사무소, 법무법인 대륙아주, 법무법인 동인, 법무법인 로고스, 법무법인 바른, 법무법인 세종, 법무법인 원, 법무법인 율촌, 법무법인 지평, 법무법인 태평양, 법무법인 화우)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본 네트워크는 로펌이 서로 힘을 합쳐 로펌 및 변호사의 공익활동을 활성화하고 로펌의 사회적 책임을 다할 방법을 지속적으로 모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여전히 따뜻한 法> 시리즈를 통해 변호사들의 프로보노 활동을 생생히 알리고, 법률가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전함으로써 공익활동의 가치가 우리 사회 전반에 확산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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