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들이 맡을 준비됐다”…빌 게이츠-엡스타인 논란에 선 그어
2034년까지 가족재단 4곳에 전 재산 이전…운용 역량 시험대
워렌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이 남은 재산 약 1400억 달러(약 207조1600억 원)를 자녀들이 운영하는 가족재단에 맡기기로 했다. 20년 가까이 이어온 게이츠재단 기부도 함께 마무리된다. 버핏은 빌 게이츠와 고(故) 제프리 엡스타인 논란과는 무관하며, 자녀들에 대한 신뢰에 따른 결정이라고 밝혔다. 세계 최대 규모의 개인 기부금이 가족재단으로 향하면서 이들 재단이 막대한 자산을 어떻게 집행할지도 관심을 모은다.
지난 14일(현지시각) 공개된 연례 기부 계획에 따르면 약 1400억 달러 규모의 버크셔 해서웨이 잔여 지분은 수전 톰프슨 버핏 재단과 셔우드재단, 하워드 G. 버핏 재단, 노보재단 등 네 가족재단에 배분된다. 버핏은 다음 날인 15일 CNBC와의 인터뷰에서 이 같은 결정을 설명하며 “자녀들이 맡을 준비가 됐다”고 말했다. 버핏 사후에는 세 자녀가 만장일치로 기부 대상을 결정하도록 했다.

◇ 20년 게이츠재단 기부 마침표…남은 재산은 가족재단으로
버핏은 2006년 전 재산의 99%를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약속하며, 당시 약 440억 달러(약 65조1100억 원) 규모의 버크셔 해서웨이 주식을 게이츠재단과 가족재단 4곳에 기부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가운데 약 85%는 게이츠재단에 배정됐다.
이후 버핏은 매년 버크셔 주식을 출연해 지금까지 게이츠재단에 470억 달러(약 69조5500억 원) 이상을 기부했다. 그러나 지난해 사후에는 게이츠재단 기부를 중단하고 남은 재산을 가족재단에 맡기겠다고 밝힌 데 이어, 올해는 생전 남은 기부까지 가족재단으로 돌리기로 하면서 20년 가까이 이어진 기부 계획을 바꾸게 됐다.
이번 발표를 두고는 빌 게이츠와 제프리 엡스타인의 관계를 둘러싼 논란이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해석이 잇따랐다. 게이츠는 과거 미성년자 성착취 혐의로 수감 중 사망한 금융인 엡스타인과 여러 차례 만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을 빚었다. CNBC 인터뷰에서 엡스타인 논란과의 연관성을 묻는 질문을 받은 버핏은 게이츠가 사람을 잘못 판단한 것은 사실이지만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며, 이번 결정을 엡스타인 논란과 연결하는 해석에는 선을 그었다.

버핏은 기부처를 바꾼 이유로 자녀들에 대한 신뢰를 들었다. 그는 “아이들이 이제는 이 일을 맡을 준비가 됐다”며 “아이들이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는지 잘 알고 있고, 아이들이 운영하는 재단의 세금 신고서(Form 990)조차 들여다본 적이 없다”고 전했다.
◇ 가족재단 4곳에 1400억 달러…운용 자산 26배 뛴다
버핏은 현재 1400억 달러가 넘는 버크셔 해서웨이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앞으로 2034년까지 남은 재산을 가족재단에 순차적으로 이전할 계획으로, 버크셔 해서웨이 주가가 오르지 않는다고 가정해도 연간 최소 170억 달러(약 25조1600억 원)를 기부하는 셈이다. 이는 지난해 게이츠재단과 가족재단에 기부한 약 70억 달러(약 10조3600억 원)를 크게 웃도는 규모다.
이번 기부에서는 장녀 수지 버핏이 이사장을 맡고 있는 수잔 톰슨 버핏 재단에 약 45억 달러(약 6조6600억 원) 상당의 버크셔 해서웨이 B주 900만 주가 배분된다. 수지 버핏이 운영하는 셔우드재단과 장남이 이끄는 하워드 G. 버핏 재단, 막내 피터 버핏 부부가 운영하는 노보재단에는 각각 약 5억 달러(약 7400억 원) 상당의 B주 100만 주가 돌아간다.
수잔 톰슨 버핏 재단은 여성 생식보건과 대학 장학사업 등을 지원한다. 셔우드재단은 영유아 교육과 공교육 혁신, 하워드 G. 버핏 재단은 글로벌 식량안보와 농업 개발, 분쟁지역 복구, 노보재단은 여성·소녀의 권리 증진과 원주민 공동체 지원 등을 각각 중점 사업으로 한다.
현재 네 가족재단의 합산 자산은 약 54억 달러(약 7조9900억 원)다. 버핏이 남은 재산을 모두 이전하면 운용 자산은 현재의 약 26배로 늘어나게 된다.
◇ 사상 최대 개인 기부 계획…집행 역량이 새 과제

버핏이 선택한 가족재단들이 사상 최대 규모의 개인 기부 자산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집행할 수 있을지가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 게이츠재단은 직원 2200여 명을 두고 지난해 약 85억 달러(약 12조5800억 원)를 집행한 반면, 버핏이 선택한 네 가족재단은 대부분 직원 수십 명 규모다. 가장 규모가 큰 수잔 톰슨 버핏 재단도 직원 수는 100여 명에 그친다.
이에 뉴욕대 금융접근이니셔티브의 티머시 오그든 전무는 미국 비영리 전문 매체 크로니클 오브 필란트로피에 “게이츠재단이 완벽했던 것은 아니지만 평균 이상의 역량을 갖춘 기관이었다”며 “이제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 막대한 자산이 앞으로 어떻게, 그리고 지금처럼 효과적으로 쓰일 수 있느냐”라고 짚었다.
버핏의 이번 발표를 두고 기부금의 집행 시점과 실제 사회에 쓰이는 규모를 둘러싼 우려도 나온다. 크로니클 오브 필란트로피는 이번 발표가 자금이 실제 자선단체에 전달되는 일정과 재단 기금에 장기간 머물 가능성을 모두 열어뒀다고 분석했다. 레이 메이도프 보스턴칼리지 자선 및 공익포럼 공동 설립자는 “가장 큰 걱정은 이 돈 가운데 실제로 얼마나 많은 자금이 사회에 흘러가느냐는 점”이라고 말했다.
버핏은 생전 게이츠재단에 기부한 자금은 1년 안에 집행하도록 조건을 달았다. 또 2010년 ‘기빙 플레지’ 서약에서는 자신의 유산이 정리된 뒤 10년 안에 기부 재산을 모두 집행하고, 재단 기금에는 자금을 남겨두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이번 발표에서는 자녀들이 2034년 말까지 자신의 버크셔 해서웨이 주식을 처분하기 바란다고만 밝혀 실제 기부금 집행 시점은 제시하지 않았다.
한편 발표 직후 빌 게이츠는 성명을 통해 “워렌 버핏은 역대 가장 위대한 자선가 중 한 명이자 나의 소중한 친구”라며 “지난 20년간 게이츠재단을 향한 그의 지원은 전례 없는 규모였으며,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생명을 구하는 데 기여했다”고 이야기했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